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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없는 원소의 무게를 미리 적다: 멘델레예프와 주기율표의 예측

1871년,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를 위해 표에 빈칸을 남기고 그 옆에 원자량·밀도·산화물 성질까지 구체적인 숫자를 적어 넣었습니다. 몇 년 뒤 그 자리를 채울 원소들이 실제로 발견되었고, 훗날 갈륨·스칸듐·저마늄이라 불리게 된 이 원소들의 실측값은 그가 미리 적어 놓은 숫자와 놀랍도록 가까웠습니다. 아직 세상에 없던 물질의 무게를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을까요.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의 초상 사진
1869년 주기율표를 고안한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화학의 원리 1897년판 권두 삽화). 사진: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원소를 줄 세우면 보이는 패턴

19세기 중반 화학자들이 확인한 원소는 60여 종이었습니다. 원자량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일정한 간격마다 성질이 되풀이되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1817~1829년 독일 화학자 요한 볼프강 되베라이너가 칼슘·스트론튬·바륨처럼 원자량이 중간값을 이루는 ‘세 쌍원소’를 찾아내며 이 규칙성을 처음 지적한 바 있습니다. 멘델레예프는 원소마다 이름과 원자량, 성질을 적은 카드를 만들어 책상 위에서 배열을 시험해 보곤 했다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완성된 표를 꿈에서 보고 받아적었다’는 극적인 버전은 그의 사후 동료의 회고에서 비롯된 2차 전언이라 후대에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됩니다.

멘델레예프 혼자만의 발견이 아니었다

원소의 주기성을 처음 알아챈 사람은 멘델레예프가 아니었습니다. 1862년 프랑스 지질학자 드 샹쿠르투아는 원소를 원통에 나선형으로 배열한 ‘텔루르 나선’으로 주기성을 처음 시각화했지만, 지구과학 성격의 학술지에 발표된 데다 핵심 도표가 인쇄에서 누락돼 당대 화학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865년 영국 화학자 존 뉴랜즈는 원자량 순 배열에서 8번째마다 성질이 되풀이된다는 ‘옥타브 법칙’을 발표했고, 1866년에는 런던화학회에서도 발표했지만 게재를 거부당했으며, 원소를 알파벳순으로 배열해 보았느냐는 조롱까지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뉴랜즈는 그로부터 21년 뒤인 1887년에야 왕립학회 데이비 메달로 뒤늦게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871년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에서 물음표로 표시된 미발견 원소 자리
멘델레예프가 1871년에 발표한 개정판 주기율표 –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 자리에 물음표가 남아 있다. 사진: Dmitri Mendeleev (1871 publication)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멘델레예프와 가장 가까운 경쟁자는 독일 화학자 로타르 마이어였습니다. 마이어는 1864년 저서에 28개 원소의 부분표를 실었고, 1870년에는 원자량-원자부피 그래프로 완성도 높은 표를 발표했습니다.

로타르 마이어의 초상 사진
멘델레예프와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인 주기율표를 만든 독일 화학자 로타르 마이어(1883년). 사진: Wilhelm Hornung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다만 이는 멘델레예프가 1869년 2월 17일(구력) 표를 완성하고 동료 멘슈트킨이 3월 6일(구력) 러시아화학회에서 논문을 대독한 뒤였습니다. 마이어는 1868년경부터 비슷한 표를 준비했다고 훗날 술회했지만 멘델레예프의 우선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1882년 왕립학회는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데이비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결정적 차이는 마이어가 미발견 원소의 성질을 구체적으로 예측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훗날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고 돌아보았다고 전해집니다. 멘델레예프를 흔히 ‘주기율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 부르지만, 정확히는 원소의 주기성을 최초로 알아챈 사람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빈칸을 남기고 그 성질을 수치로 예측한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빈칸에 적어 넣은 원소의 무게

멘델레예프의 표가 남달랐던 지점은 여기입니다.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줄 세우다 화학적 성질이 이웃과 들어맞지 않으면, 그는 억지로 채우는 대신 빈칸으로 남겨두고 위아래·양옆 원소의 성질을 근거로 원자량과 밀도, 산화물·염화물 성질까지 구체적인 숫자를 적어 넣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하나’를 뜻하는 접두어 ‘eka-‘를 붙여 eka-알루미늄, eka-붕소, eka-규소라 이름 붙였습니다.

1875년 프랑스 화학자 부아보드랑이 피레네산맥 아연광에서 새 원소를 발견해 조국을 뜻하는 라틴어 ‘갈리아’를 따 갈륨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eka-알루미늄이었습니다. 처음 측정된 밀도 4.7g/cm³는 예측(약 6.0g/cm³)과 크게 어긋났지만, 불순물 혼입 가능성이 제기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재정제 후 측정값 5.9g/cm³는 예측에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 다만 이 경위는 원본 문서 없이 후대의 간접 증언으로만 전해집니다. 1879년에는 스웨덴 화학자 닐손이 희토류 광물에서 스칸듐(eka-붕소)을 발견했고, 예측 원자량 44에 실측값 약 44.96으로 거의 일치했습니다.

저마늄 원소 시료 사진
멘델레예프의 예측대로 성질이 확인된 원소 저마늄의 실물 시료. 사진: James St. John · CC BY 2.0 · 출처 Wikimedia Commons

가장 극적인 사례는 1886년 독일 화학자 빙클러가 은광물 아르기로다이트에서 발견한 저마늄(eka-규소)입니다. 예측치와 실측치를 나란히 놓으면 정밀도가 두드러집니다.

eka-규소 예측값과 저마늄 실측값을 비교한 막대그래프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eka-규소의 성질과 1886년 발견된 저마늄의 실측치 비교 – 원자량·밀도·사염화물 밀도·사염화물 분자부피 네 항목 모두 오차 1% 미만이었습니다(자체 도해). 자체 도해 · PIL(Python) 작도

원자량은 예측 72에 실측 72.32(현대값 72.63), 밀도는 예측 약 5.5에 실측 5.469g/cm³, 사염화물 밀도는 예측 약 1.9에 실측 1.887g/cm³, 분자부피는 예측 113에 실측 113.3으로 거의 정확히 들어맞았고, 내화성 강한 약염기성 산화물이라는 성질도 예측대로였습니다. 이 정밀한 일치가 회의적이던 화학계를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로 돌려세운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맞지 않은 예측들도 있었다

그러나 멘델레예프의 예측이 전부 들어맞은 것은 아닙니다. 1904년판 표에는 태양 코로나 스펙트럼의 정체불명 초록색 선(1869년 개기일식 관측)을 설명하려던 ‘코로늄’과, 발광 에테르에 대응할 초경량 원소의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코로늄은 1930년대 그로트리안과 에들렌이 13번 이온화된 철(Fe XIV)의 스펙트럼선임을 밝히며 정체가 드러났고, 성운에서 새 원소로 여겨졌던 ‘네뷸륨’도 1927년 보엔이 이온화된 산소의 신호임을 규명하며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eka-망가니즈(테크네튬, 1937년 인공 합성 확인)처럼 실증까지 훨씬 오래 걸리거나 갈륨·스칸듐·저마늄만큼 정밀하지 않았던 예측도 여럿이고, 란타넘족의 자리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도 한계로 꼽힙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성공한 예측이 실패보다 우세했다는 것이 과학사학계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원자량의 함정과 모즐리의 답

멘델레예프의 표에는 또 다른 수수께끼가 있었습니다. 그는 원자량 순 배열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화학적 성질이 어긋나면 성질을 우선했습니다. 대표 사례가 텔루륨과 아이오딘입니다. 당시 원자량은 텔루륨 약 128, 아이오딘 약 127로 아이오딘이 더 가벼웠지만, 산소족 성질의 텔루륨과 할로젠족 성질의 아이오딘을 각각 맞는 족에 두려면 원자량 역순으로 배치해야 했습니다.

텔루륨과 아이오딘의 원자량 역전과 원자번호 관계를 보여주는 도표
원자량 순서로는 어긋났던 텔루륨과 아이오딘의 배치가 원자번호 기준으로는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과정(자체 도해). 자체 도해 · PIL(Python) 작도

그는 이 역전이 측정 오차 때문일 것이라 추정했을 뿐 근본 원인은 설명하지 못했고, 훗날 아르곤-포타슘, 코발트-니켈 사이에서도 비슷한 역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44년 뒤인 1913년 영국 물리학자 헨리 모즐리가 풀었습니다.

헨리 모즐리의 초상 사진
특성 X선 연구로 원자번호가 주기율의 진짜 기준임을 밝혀낸 물리학자 헨리 모즐리. 사진: AIP Emilio Segre Visual Archives, W. F. Meggers Gallery of Nobel Laureates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모즐리는 원소의 특성 X선 진동수의 제곱근이 원자량이 아니라 원자번호(핵전하)에 정확히 비례함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텔루륨(원자번호 52)이 아이오딘(53)보다 먼저 놓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설명되었고, 주기율의 진짜 기준이 원자번호임이 확립되었습니다. 멘델레예프는 옳은 순서를 직관으로 알아챘지만 이유는 몰랐고, 그 이유를 물리적으로 밝힌 것은 훗날의 모즐리였습니다.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과 그 옆의 숫자들은,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원소라도 그 성질이 우연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원소들 사이에는 원자번호라는 물리적 질서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원소의 무게조차 미리 헤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자연에 실재하는 정교한 규칙성이 인간의 관찰과 추론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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