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데 땅은 왜 젖지 않을까?

구름 아래로 비 커튼이 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줄무늬는 하늘 중간에서 희미해지고, 아래쪽에는 맑은 공간이 남습니다. 구름에서 떨어진 물은 모두 땅에 닿을 것 같지만, 내려오는 길에서 모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을 이해하는 열쇠가 미류운(virga)입니다.

핵심은 구름과 땅 사이의 공기입니다. 강수가 구름을 떠난 뒤 건조한 공기층을 지나며 증발하거나 승화하면 지표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늘에서 강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젖는다는 사실 사이에는, 아직 지나야 할 길이 있습니다.

메마른 암석 지형 위로 노을빛 강수 줄무늬가 보이는 하늘
사막 지형 위로 늘어진 강수 줄무늬. 사진가가 ‘Desert Virga’로 소개한 풍경입니다.
John Fowler from Placitas, NM, USA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구름 밑에 달린 꼬리의 정체

세계기상기구(WMO)는 미류운을 구름 밑면에서 내려오는 수직 또는 비스듬한 강수 줄무늬 가운데 지표에 닿지 않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미류운’이라는 이름에 구름이 들어가지만, 적운이나 권운처럼 별개의 구름 종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구름에 덧붙여 기록하는 부가형입니다. 기상청 관측지침에서도 미류운과 영문 virga를 대응해 표기합니다. [1] [9]

멀리서 보면 붓으로 쓸어 내린 자국이나 해파리의 촉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줄무늬가 ‘수증기가 눈에 보이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물방울이나 얼음 입자가 이루는 강수의 흔적입니다. 기체 상태의 수증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2] [5]

푸른 하늘의 두 구름 아래로 희미하게 늘어진 강수 흔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아침 하늘. 두 구름 아래로 섬유 같은 강수 흔적이 늘어져 있습니다.
Rivervictorlauramarie · CC0 · Wikimedia Commons

비는 떨어지는 동안에도 증발합니다

우리는 증발을 흔히 비가 그친 뒤 웅덩이가 마르는 과정으로 떠올립니다. 하지만 물방울은 땅에 떨어진 뒤에야 증발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 아래 공기가 충분히 건조하면 낙하 중인 빗방울에서도 물이 수증기로 바뀝니다. 물방울이 지면까지 살아남지 못하면, 구름에서는 강수가 내려오지만 땅에는 도착하지 않는 상황이 생깁니다. [2] [3]

얼음 입자도 같은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액체 물이 기체가 되는 과정은 증발, 얼음이 액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체가 되는 과정은 승화입니다. 따라서 미류운을 설명할 때 모든 줄무늬를 액체 빗방울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국 기상청은 미류운의 형성에 증발과 승화를 함께 설명합니다. [2]

구름 아래에서 점점 작아지는 물방울이 땅 위의 공중에서 끝나는 개념 삽화
낙하 중인 물방울이 작아져 지면에 닿기 전에 사라지는 증발 과정을 설명한 개념 삽화입니다. 물방울 크기와 낙하거리는 실제 비율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수증기는 그리지 않았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낙하 중 증발을 설명하기 위해 제작.

아래 표는 이 차이를 정리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라진다’는 말은 물질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강수 입자가 보이지 않는 기체 상태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떨어지는 입자 가능한 변화 지표에 닿기 전에 모두 바뀐다면
액체 물방울 증발하여 수증기가 됨 그 물방울은 지면에 비로 도착하지 않음
얼음 입자 승화하여 수증기가 됨 그 얼음은 지면에 고체 강수로 도착하지 않음

물방울의 크기와 구름 아래 환경이 함께 작용합니다

구름이 있다는 것만으로 지상에 내릴 비의 양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 구름 내부의 조건뿐 아니라, 떨어지는 동안 통과하는 공기의 습도와 온도, 구름 밑면에서 지표까지의 거리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의 관측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지상에 비가 도달한 사례와 미류운에 그친 사례를 비교했습니다. 이 표본에서 미류운은 상대적으로 작은 물방울, 더 높은 구름 밑면, 구름 밑면과 지표의 중간 높이에서 추정한 더 낮은 상대습도와 연관됐습니다. 이는 한 건조 지역의 결과이며, 특정 습도나 높이를 전 세계 공통의 발생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7]

이 결과가 알려 주는 관찰의 방향은 명확합니다. 구름에서 출발하는 물만 보지 말고, 그 물이 지나갈 공기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같은 ‘비구름’처럼 보여도 지상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노을빛 고적운 아래로 붉게 비치는 가는 강수 줄무늬
노을빛을 받은 고적운과 그 아래 강수 흔적. 사진의 색만으로 강수 입자가 물인지 얼음인지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GerritR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레이더에는 비가 있는데 창밖은 마른 이유

날씨 레이더 화면에 강수 신호가 있는데 실제로는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미류운입니다. 레이더가 상공의 강수를 포착했더라도, 그 아래 건조한 공기층에서 입자가 사라지면 지상에서는 강수를 관측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국 기상청은 이 상황을 상공의 강수와 하층의 건조한 공기 단면으로 설명합니다. [3]

서로 다른 높이를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모순이 풀립니다. 레이더의 강수 신호는 상공에서 일어난 일을, 지상의 관측은 그 물이 끝까지 내려왔는지를 알려 줍니다. 다만 레이더 화면과 창밖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미류운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미류운은 가능한 설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숲이 덮인 산지 너머 어두운 구름 아래로 늘어진 비 커튼
펜실베이니아의 산지 너머로 보이는 비 커튼. 먼 강수의 모습과 관찰자가 서 있는 자리의 날씨는 구분해야 합니다.
Nicholas A. Tonelli from Pennsylvania, USA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사진 한 장으로는 알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홍콩 천문대는 지표에 닿지 않는 강수 흔적인 virga와 지표까지 이어지는 강수 특징인 praecipitatio를 구분해 소개합니다. 구름 밑에서 줄무늬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살피면 두 형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그러나 사진에서 줄무늬가 흐려졌다는 사실만으로 ‘그 자리의 빗방울이 모두 증발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프레이저와 보런은 강수 줄무늬의 밝기 변화가 눈송이의 융해에 따른 광학적 변화로도 나타날 수 있으며, 강수가 아직 지표까지 내려오지 않은 장면일 가능성도 논의했습니다. [8]

미류운의 정의와 사진으로 그것을 판별하는 일은 구분해야 합니다. 구름 아래 흔적을 먼저 보고,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와 해당 위치의 지상 관측을 함께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글에는 출처에서 미류운으로 소개한 사진들과 먼 강수의 모습을 비교하기 위한 펜실베이니아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어느 사진도 그것만으로 당시의 전체 습도 분포나 지상 강수량까지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회청색 하늘의 작은 구름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희미한 강수 꼬리
미국 워싱턴주 켄트에서 촬영되어 미류운으로 소개된 사례. 구름 아래로 가느다란 꼬리가 길게 이어집니다.
Roc0ast3r · CC0 · Wikimedia Commons

비가 닿지 않아도 공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증발은 주변에서 에너지를 가져가므로 공기를 식힐 수 있습니다. 뇌우 아래에서는 이렇게 식은 공기가 하강 기류에 기여하고, 일부 상황에서 강한 돌풍이나 마이크로버스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 기상청의 관측자 지침은 지상 강수가 적은 건조한 다운버스트에서 미류운이나 날리는 먼지가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4]

그렇다고 모든 미류운이 위험한 돌풍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땅에 비가 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뇌우의 영향을 배제해서도 안 됩니다. 미류운은 강수 입자의 지상 도달 여부를 가리키는 말이며, 바람의 세기까지 한꺼번에 판정하는 이름은 아닙니다.

구름과 땅 사이에도 날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류운을 알게 되면 구름 아래의 빈 공간도 새롭게 보입니다. 강수가 구름을 떠났는지, 내려오는 동안 어떤 공기를 지났는지, 지표에 도착했는지를 나누어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름에서 물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물이 반드시 땅을 적시는 것은 아닙니다. 건조한 공기 속에서 물방울과 얼음 입자가 상태를 바꾸는 과정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구름 밑에 가느다란 꼬리가 보인다면, 하늘에서 시작된 물의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살펴보세요.

참고 자료

  1.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 International Cloud Atlas — Virga
  2. UK Met Office — Unusual cloud formations — Virga
  3. NOAA National Weather Service — Why are there echoes on the radar, but no snowfall?
  4. NOAA National Weather Service — Weather Spotter's Field Guide — Downbursts
  5. U.S. Geological Survey — Condensation and the Water Cycle
  6. Hong Kong Observatory — Supplementary Features and Accessory Clouds — Virga
  7. Airey et al., Atmosphere (original research) — Characteristics of Desert Precipitation in the UAE Derived from a Ceilometer Dataset
  8. Fraser & Bohren, Monthly Weather Review (original research) — Is Virga Rain That Evaporates before Reaching the Ground?
  9. 대한민국 기상청 — 지상기상관측지침 (2022.12)

영상으로 보기

YouTube에서 쇼츠 보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