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태피스트리는 어떻게 실로 그림을 그릴까?

멀리서 보면 커다란 그림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이 온통 실입니다. 태피스트리의 꽃과 옷 주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 글에서 살펴볼 손직조 태피스트리에서는 이미 짜인 천 위에 그림을 더하는 대신, 색실을 엮는 과정에서 천과 이미지가 함께 생깁니다. 비밀은 한 색의 실이 어디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지에 있습니다. [1, 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정원에서 쉬는 유니콘 태피스트리
《정원에서 쉬는 유니콘》. 꽃과 울타리, 유니콘이 실로 짜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태피스트리입니다.
사진·소장 자료: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C0 · Wikimedia Commons · 박물관 기록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이 그림을 받쳐 줍니다

직기에 먼저 팽팽하게 걸어 놓는 기본 실을 경사(warp),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엮이는 실을 위사(weft)라고 합니다. 세워 놓은 틀을 보면 경사는 세로, 위사는 가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눕혀 쓰는 직기도 있으므로, 방향보다 두 실의 역할로 기억하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1, 4]

태피스트리의 기본 짜임은 위사가 경사의 앞뒤를 번갈아 지나는 평직입니다. 여기에 위사를 촘촘히 눌러 쌓으면 바탕 경사가 표면에서 가려집니다. 그림을 보며 알아차리는 색은 주로 위사의 색이고, 그 아래 경사는 전체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위사가 표면을 덮는 ‘위사면 직물’이라고 설명합니다. [2, 3]

위쪽에 경사가 드러나고 아래쪽에는 색 위사가 면을 이루는 직기 개념도
경사와 색 위사의 역할을 구분하기 위한 개념 삽화입니다. 개별 교차점이나 실제 유물의 짜임을 재현한 기술 도면은 아닙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경사와 위사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제작.

빨간 꽃을 짜는 실은 파란 하늘까지 가지 않습니다

가령 파란 바탕에 빨간 꽃 하나를 짠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빨간 실을 천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매번 통과시키면 꽃이 아니라 빨간 줄이 생기겠지요. 태피스트리에서는 그 실이 꽃의 빨간 부분에 필요한 경사만 오가고, 파란 부분은 다른 색 위사가 채웁니다. 이를 불연속 위사라고 합니다. ‘불연속’은 실이 끊어져 망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위사가 천 전체의 폭을 계속 가로지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 4]

이제 꽃잎의 윤곽을 떠올려 보세요. 줄마다 빨간 실이 돌아서는 위치를 조금씩 바꾸면 색면의 폭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그림의 경계는 색면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실이 방향을 바꾼 자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완성품을 보는 새로운 단서가 됩니다.

프레임에 걸린 현대 태피스트리 패널
현대 프레임 직기에 짠 태피스트리 패널.
사진·소장 자료: SEN Heritage Looms – Sophia Tsourinak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두 색 사이의 틈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웃한 색 위사가 서로 이어지지 않은 채 각자의 경사를 감고 되돌아오면 경계에 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슬릿(slit)입니다. 경계를 잇는 방법도 있습니다. 옆 색의 위사끼리 걸어 연결하는 방식이 있고, 두 색 위사가 같은 경사를 번갈아 감는 방식도 있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각각 interlocking과 dovetailing으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3]

여기서 ‘틈은 모두 실수’라고 생각하면 작품을 잘못 읽을 수 있습니다. V&A의 연구는 소장 이집트 직물에서 열린 틈이 볼의 윤곽에 쓰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 작가 한나 뤼겐의 작업에서는 같은 경사를 공유하는 연결 방식이 특징적인 윤곽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특정 작품의 사례이지만, 접합 방식이 구조를 이어 주는 일과 그림을 표현하는 일 모두에 관여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8]

물감을 섞지 않고도 색의 변화를 표현합니다

색면이 있다고 해서 모든 그림이 굵은 블록처럼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르네상스 유럽 태피스트리에서는 서로 다른 색의 가늘고 뾰족한 구역을 맞물리게 배치하는 해칭(hatching)으로 색의 이동이나 음영을 표현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보존 자료에서도 색 구획과 접합 방식을 작품 구조의 중요한 단서로 다룹니다. [4, 9]

사진 속 직물을 볼 때에는 윤곽선 하나를 따라가 보세요. 가까이에서는 서로 다른 색실의 자리들이 보이고, 멀리서는 그것들이 인물과 식물의 형태로 읽힙니다. 다만 한 장의 전체 사진만으로 미세한 접합 기법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작품의 도안과 실제 짜임을 구분해 관찰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푸른 바탕에 여러 색 실로 짠 페루 태피스트리의 인물과 식물 무늬
페루의 인물 장면 태피스트리 일부. 색면의 경계와 짜임이 보입니다.
사진·소장 자료: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C0 · Wikimedia Commons · 박물관 기록

직기는 달라도 색실이 맡은 일은 같습니다

프랑스 고블랭 제작소의 사례에서 고경직기는 위아래 빔 사이에 경사를 세우고, 저경직기는 빔 사이에 경사를 수평으로 펼칩니다. 두 직기는 작업자가 작품과 도안을 보는 방식을 달리합니다. 게티 미술관은 이 차이를 고블랭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으로 제시합니다. [5]

고블랭 제작소의 수평 직기와 작업대
파리 고블랭 제작소의 수평 태피스트리 직기.
사진·소장 자료: David Monniaux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직기 사진을 볼 때 ‘실이 수평이니 위사겠지’ 하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먼저 어느 실이 긴 장력을 유지하며 직기에 걸려 있는지, 어느 실이 그 사이를 오가며 색을 쌓는지 살펴보세요. 완성품에서는 가려져 있던 경사의 역할이 제작 도구 앞에서 다시 드러납니다.

직조공은 실물 크기 도안을 실의 언어로 옮깁니다

전통적인 유럽 대형 태피스트리 제작에는 카툰(cartoon)이라는 실물 크기 도안이 쓰였습니다. 여기서 카툰은 만화가 아니라 작업을 위한 그림입니다. 라파엘의 카툰은 도안 제작과 직조가 연결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V&A는 저경직기에서 도안을 옮기는 과정과 완성 면의 좌우 반전 관계를 설명합니다. [7]

다리와 식물 무늬가 그려진 라파엘로 화파의 태피스트리 카르툰 단편
라파엘로 화파의 태피스트리 도안 단편. 직물 자체가 아니라 부츠와 옷자락, 식물을 그린 준비 그림입니다.
사진·소장 자료: School of Raphael (Raffaello Sanzio or Santi) · CC0 · Wikimedia Commons · 박물관 기록

도안은 완성 천에 붙어 남는 재료가 아닙니다. 직조공이 색과 윤곽을 실로 옮길 때 참조하는 별개의 작업 자료입니다. 어떤 실과 접합 방식을 선택할지는 실제 직조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종이에 그리는 일과 실로 짜는 일에는 서로 다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모든 현대 작가가 반드시 카툰을 쓰거나 전통 공방과 똑같이 작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2, 7]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왜 자수일까요?

이름에 태피스트리가 들어간다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바이외 박물관은 유명한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린넨 바탕에 양모 실로 수놓은 자수라고 설명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천 위에 바늘땀으로 무늬를 더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 설명한 직조 태피스트리에서는 경사와 위사를 엮으며 천과 무늬가 함께 만들어집니다. 두 방식 모두 실로 이미지를 만들지만, 이미지와 바탕의 관계가 다릅니다. [6]

다음에는 그림 속 세 곳을 살펴보세요

태피스트리를 다시 만난다면 먼저 한 색의 가장자리, 다음으로 짜임이 보이는 작은 부분, 마지막으로 전체 그림을 보세요. 가장자리에서는 ‘이 색실은 어디서 돌아섰을까’, 작은 부분에서는 ‘어떤 실이 보이고 어떤 실이 가려졌을까’, 전체에서는 ‘그 선택들이 어떻게 하나의 장면이 되었을까’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태피스트리를 읽는 열쇠는 단순히 ‘실로 만든 그림’이라는 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림을 이루는 실이 천을 이루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색과 색이 만나는 자리마다 제작자의 선택이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성된 이미지를 보고 난 뒤 그 경계로 시선을 돌리면, 감춰졌던 제작 과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고 자료

  1. Victoria and Albert Museum — What is tapestry?
  2.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Making a Tapestry—How Did They Do That?
  3.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 Weaving Structures
  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How Medieval and Renaissance Tapestries Were Made
  5. J. Paul Getty Museum — Woven Gold: Tapestries of Louis XIV — Looms at the Gobelins Manufactory
  6. Bayeux Museum — The Bayeux Tapestry is an embroidery
  7. Victoria and Albert Museum — The story of the Raphael Cartoons
  8. Victoria and Albert Museum — The politics of tapestry: the V&A’s collection and the works of Hannah Ryggen
  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Tapestry Technique and Materials in Islamic Culture

영상으로 보는 태피스트리

YouTube에서 쇼츠 보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