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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는 어떻게 불 없이 음식을 데울까?

전자레인지 안에는 불꽃도, 달궈진 철판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을 닫고 몇 분만 기다리면 컵 속 물이 김을 내고 식은 밥이 따뜻해집니다. 한편 꺼낸 음식을 한 숟가락 떠 보면 가장자리는 뜨거운데 가운데는 아직 미지근할 때가 많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은 같은 전자레인지 원리에서 나옵니다.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바깥에서 뜨겁게 굽는 기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로 음식 속 물 분자를 흔들어 음식 스스로 열을 내게 하는 기계입니다. 그 전파가 어디까지 들어가고 조리실 안에서 어떻게 겹치는지를 따라가면, 뜨거운 곳과 미지근한 곳이 생기는 이유도 함께 보입니다.

문이 열린 전자레인지 조리실 안에 유리 회전판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 조작 버튼이 있는 모습
문을 연 가정용 전자레인지의 조리실. 바닥의 유리 회전판은 음식을 돌려 마이크로파를 고르게 받게 합니다.
Mk2010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마이크로파를 만드는 심장, 마그네트론

전자레인지가 쓰는 전파는 마이크로파입니다. 가정용 전자레인지는 대부분 2.45GHz, 곧 1초에 24억 5천만 번 진동하는 전자기파를 씁니다. 이 파동의 한 주기 길이(파장)는 약 12.2cm입니다. 대형 산업용 장비에는 파장이 약 32.8cm인 915MHz를 쓰기도 합니다. 2.45GHz가 널리 쓰이는 까닭은 이 주파수가 산업·과학·의료용(ISM)으로 전 세계에서 쓸 수 있는 대역이기 때문입니다. 915MHz는 일부 나라에서만 이 용도로 허용됩니다.

이 마이크로파를 만드는 부품이 마그네트론입니다. 가운데 달궈진 음극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면, 바깥에서 걸어 준 자기장 때문에 곧장 날아가지 못하고 휘어 돌며 바깥쪽 구리 양극으로 향합니다. 양극에는 작은 방(공동)들이 둥글게 늘어서 있어, 전자 무리가 그 입구를 스쳐 지날 때 방의 크기에 맞는 빠른 전기 진동이 생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이크로파는 금속 통로(도파관)를 따라 조리실로 보내집니다.

겹겹이 달린 금속판 사이로 둥근 부품이 보이는 전자레인지용 마그네트론
전자레인지에서 떼어 낸 마그네트론(Witol 2M219J). 이 부품이 조리실로 보낼 마이크로파를 만듭니다.
Raimond Spekking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원통형 구리 양극을 가로로 자른 단면에 방사형 칸막이와 가운데 회색 음극이 보이는 마그네트론
전자레인지용 마그네트론을 축에 수직으로 자른 단면. 지름 약 4cm로, 가운데 회색 부분이 음극이고 둘레의 구리 부분 전체가 양극입니다.
Pingu Is Sumeria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물 분자를 흔들어 열을 만든다

물 분자는 산소 원자 하나에 수소 원자 두 개가 비스듬히 붙은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산소 쪽은 살짝 음전하를, 수소 쪽은 살짝 양전하를 띠는 ‘극성 분자’가 됩니다. 이런 분자는 전기장 속에 놓이면 전기장 방향에 맞춰 몸을 돌리려 합니다.

그런데 마이크로파의 전기장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2.45GHz라면 전기장의 방향이 1초에 약 49억 번 뒤집힙니다. 물 분자들은 방향이 바뀔 때마다 따라 돌려고 하지만 이웃 분자들과 얽혀 있어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하고, 서로 밀치고 부딪히면서 전기장의 에너지를 열로 바꿉니다. 이것을 유전 가열이라고 합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마이크로파가 음식 속 물 분자를 진동시켜 열을 낸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흡수된 에너지는 열로 바뀔 뿐 음식을 방사능 물질로 만들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감자 단면을 확대한 원 안에서 빨간 산소와 흰 수소로 된 물 분자들이 파동 모양의 전기장 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기울어 흔들리는 삽화
마이크로파의 전기장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음식 속 물 분자가 따라 돌며 서로 부딪혀 열을 내는 유전 가열을 표현했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생성 의도: 유전 가열 개념도

흔히 2.45GHz가 ‘물이 공명하는 주파수’라서 쓰인다고들 하지만, 이는 널리 퍼진 오해입니다. 물만이 아니라 음식 속의 극성 분자 전반이 가열에 참여합니다. 게다가 물이 마이크로파를 가장 강하게 흡수하는 주파수는 2.45GHz보다 몇 배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런 주파수를 쓰면 음식의 바깥층이 에너지를 거의 다 먹어 버려 가운데까지 전해질 몫이 남지 않습니다. 너무 세게 흡수되지 않는 주파수라는 점이 오히려 음식 안쪽까지 열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셈입니다.

마이크로파는 1cm 안팎만 들어간다

그렇다고 마이크로파가 음식 속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2.45GHz 마이크로파는 대부분의 음식에서 약 1cm 정도만 침투합니다. 음식이 ‘속부터 익는다’는 말과 달리, 실제로는 표면에서 1cm 안팎의 층이 먼저 직접 데워집니다.

그보다 안쪽은 어떻게 따뜻해질까요? FDA는 두꺼운 음식의 경우 바깥층은 주로 마이크로파로 익고, 안쪽은 주로 뜨거워진 바깥층에서 전해지는 열전도로 익는다고 설명합니다. 열전도는 마이크로파보다 훨씬 느립니다. 두툼한 음식을 데우면 겉은 뜨거운데 속이 차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리 뒤 잠시 두거나 중간에 저어 주는 습관은, 바깥층에 모인 열이 안쪽으로 퍼질 시간을 벌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리 회전판 위 반으로 자른 감자 단면에서 바깥 테두리는 주황빛으로 뜨겁고 가운데는 파랗게 차가우며 안쪽을 향한 화살표가 그려진 삽화
마이크로파가 바깥층을 직접 데우고, 그 열이 안쪽으로 천천히 전도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뜨거운 바깥층의 두께는 과장했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생성 의도: 마이크로파 침투 깊이와 열전도 개념도

가운데가 식어 있는 또 다른 이유, 정상파

전자레인지 조리실의 벽은 금속입니다. 금속은 마이크로파를 반사하므로, 도파관에서 나온 마이크로파는 벽 사이를 오가며 되튀는 파동과 겹칩니다. 이렇게 오가는 파동이 겹치면 제자리에서 출렁이는 정상파가 생깁니다. 정상파에는 진동이 가장 큰 곳(배)과 거의 진동하지 않는 곳(마디)이 번갈아 자리합니다. 배가 지나는 곳의 음식은 빨리 뜨거워지고, 마디에 걸친 곳은 좀처럼 데워지지 않습니다.

이 배와 배 사이의 간격은 파장의 절반, 곧 약 6cm입니다. 실제 조리실에서는 여러 방향의 파동이 입체적으로 겹쳐 무늬가 더 복잡해지지만, 뜨거운 점과 미지근한 점이 수 센티미터 간격으로 생긴다는 점은 같습니다. 전자레인지 바닥의 회전판은 음식을 이 무늬 속에서 계속 옮겨 다니게 해 뜨거운 점을 고루 나누어 받게 합니다. 회전판 대신 마이크로파를 반사해 흩뜨리는 금속 날개(스터러)를 쓰는 기종도 있습니다.

회전판을 뺀 전자레인지 안 접시 위 긴 초콜릿에 같은 간격으로 녹은 자국 세 곳이 있고 그 위에 제자리에서 출렁이는 파동이 겹쳐 그려진 삽화
회전판을 멈춘 채 초콜릿을 데우면 정상파의 배가 지나는 자리만 먼저 녹습니다. 녹은 자리 사이의 간격은 파장의 절반인 약 6cm입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생성 의도: 정상파와 초콜릿의 녹은 점 개념도

초콜릿으로 빛의 속도를 재는 실험

이 정상파는 부엌에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영국 개방대학교(Open University)의 과학 교육 자료가 소개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회전판이 돌지 않게 한 채 넓적한 초콜릿을 잠깐 데우면, 초콜릿이 전체가 아니라 몇 군데만 녹습니다. 녹은 자리 사이의 거리가 파장의 절반입니다.

녹은 점 사이가 6cm였다면 파장은 12cm입니다. 여기에 전자레인지 뒷면에 적힌 주파수 2,450MHz를 곱하면 초속 약 29만 4천 km가 나옵니다. 실제 빛의 속도인 초속 약 30만 km와 2%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파도 빛과 같은 전자기파이기 때문에 가능한 계산입니다. 다만 실험할 때는 초콜릿을 아주 짧게 데우고, 금속 그릇은 쓰지 않아야 합니다.

문이 투명한데 마이크로파는 왜 새지 않을까

조리실은 사방이 금속으로 둘러싸여 마이크로파를 안에 가둡니다. 음식을 들여다보는 문 창에도 촘촘한 금속 그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물 구멍은 마이크로파의 파장 12.2cm보다 훨씬 작아서, 파장이 수백 나노미터에 불과한 가시광선은 통과하지만 마이크로파는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창 너머로 음식을 볼 수 있는데도 마이크로파는 갇혀 있는 이유입니다.

FDA는 전자레인지 표면에서 약 5cm 떨어진 곳에서 새어 나오는 마이크로파를 1제곱센티미터당 5mW 이하로 제한합니다. 또 문의 잠금이 풀리거나 문이 열리는 순간 마이크로파 발생을 멈추는 독립적인 차단 장치를 두 개 갖추도록 요구합니다. 금속 그릇이나 알루미늄 포일을 넣지 말라는 안내도 금속이 마이크로파를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레이더 부품이 부엌으로 오기까지

마그네트론은 원래 부엌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 발전한 부품입니다. 1940년 영국 버밍엄 대학교의 존 랜들과 해리 부트가 금속 블록에 공동을 파낸 공동 마그네트론을 만들었고, 이 장치는 같은 해 9월 말 영국의 기술 사절단(티저드 사절단)을 통해 미국에 전해졌습니다. 작고 강력한 마이크로파 발생기는 레이더 성능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둥근 금속 블록 안에 원형 구멍 여섯 개가 가운데 구멍을 둘러싼 1940년 공동 마그네트론의 흑백 사진
1940년 버밍엄 대학교의 존 랜들과 해리 부트가 만든 초기 공동 마그네트론. 금속 블록에 파낸 원형 공동들이 가운데 음극 공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Science Museum London / Science and Society Picture Library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미국 레이시언사의 기술자 퍼시 스펜서는 마그네트론의 대량생산 방식을 개발해 생산량을 하루 2,600개까지 늘린 인물입니다. 널리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1945년 어느 날, 작동 중인 마그네트론 가까이 있던 그의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았습니다. 그는 이어 마그네트론 앞에 옥수수 알갱이를 두고 팝콘이 튀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레이시언은 1945년 10월 8일 마이크로파로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고, 이 특허(미국 특허 2,495,429, ‘식품 처리 방법’)는 1950년 1월 24일 등록되었습니다. 1947년에 나온 첫 상업용 전자레인지 ‘레이더레인지(Radarange)’는 높이가 약 1.8m, 무게가 약 340kg에 이르는 대형 장비였습니다. 가정 부엌의 조리대 위에 올릴 수 있는 레이더레인지가 495달러에 나온 것은 1967년, 레이시언이 1965년에 인수한 가전업체 아마나를 통해서였습니다.

스테인리스 주방 바닥에 세워진 대형 수랭식 레이더레인지 전자레인지
원자력 상선 NS 서배너호 주방에 1961년 무렵 설치된 수랭식 레이더레인지. 1947년 첫 모델은 아니지만, 초기 전자레인지가 조리대 위가 아니라 바닥에 세우는 대형 장비였음을 보여 줍니다.
Acroterio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전자레인지는 불 없이 음식을 데웁니다. 1초에 수십억 번 방향을 바꾸는 전기장이 음식 속 물 분자를 흔들고, 그 흔들림이 바로 열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파는 1cm 안팎만 들어가고 조리실 안에서는 약 6cm 간격의 뜨거운 점을 만들기 때문에, 가운데가 미지근한 음식은 이 원리가 남긴 자연스러운 흔적입니다. 물 분자가 한쪽은 양전하, 한쪽은 음전하를 띠도록 짜여 있다는 작은 사실이, 오늘 저녁 식탁의 따뜻한 한 그릇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참고 자료

  1. Wikipedia — Microwave oven
  2. Wikipedia — Dielectric heating
  3. Wikipedia — Cavity magnetron
  4.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 Microwave Ovens
  5. IOP Publishing — Physics of the microwave oven (M. Vollmer, Physics Education 39(1):74, 2004)
  6. OpenLearn, The Open University — Measure the speed of light with your microwave
  7. Google Patents — US2495429A — Method of treating foodstuffs (Percy L. Spencer, Raytheon)
  8. MIT Technology Review (1999-01-01) — Melted Chocolate to Microwave
  9. Atomic Heritage Foundation — Percy Spe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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