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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썰면 눈물이 나는 진짜 이유: 세포 속 2단계 효소 릴레이

양파를 썰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이 따끔거리고 저절로 눈물이 고인다. 흔히 “냄새가 독해서”라는 말로 뭉뚱그리지만, 실제로는 양파 세포 안에서 순서대로 작동하는 두 개의 효소가 만들어 내는 매우 구체적인 화학 반응이다. 평범한 채소 한 알을 써는 짧은 순간에, 서로 떨어져 있던 재료들이 만나 특정한 기체 분자 하나를 완성해 내는 과정이 벌어지는 셈이다.

반으로 자른 적양파의 단면
가로로 반을 자른 적양파의 단면 — 겹겹이 쌓인 비늘줄기 조직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진: J.smith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세포 속에 나뉘어 있던 재료

양파 세포 안에는 원래 서로 섞이지 않도록 나뉘어 저장된 두 성분이 있다. 하나는 효소 알리나아제(alliinase)로, 세포 안의 작은 저장낭인 액포(vacuole)에 들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이 효소의 반응 재료가 될 아미노산 유도체 이소알리인(1-프로페닐-L-시스테인 설폭사이드)으로, 액포 바깥의 세포질에 저장되어 있다. 칼이 세포막과 액포막을 찢기 전까지 이 둘은 물리적으로 만날 일이 없다. 칼질은 곧 이 구획을 무너뜨려 두 성분을 한꺼번에 섞어 버리는 사건인 셈이다.

현미경으로 본 양파 표피세포
현미경으로 확대한 양파 표피세포 — 눈물의 재료(전구 물질과 효소)는 이런 세포 안에서 서로 다른 공간에 나뉘어 저장돼 있다. 사진: loganrickert · CC BY 2.0 · 출처 Wikimedia Commons

두 개의 효소가 릴레이로 만드는 기체

세포가 파괴되어 알리나아제가 이소알리인과 만나면, 효소는 이를 분해해 피루브산과 암모니아, 그리고 매우 불안정한 중간 물질인 1-프로펜설펜산을 만들어 낸다. 이런 설펜산 중간체는 반응성이 커서 보통은 스스로 다른 분자와 재결합해 버리는데, 양파에는 바로 이 순간을 가로채는 두 번째 효소가 따로 존재한다. 눈물유발인자합성효소(Lachrymatory Factor Synthase, LFS, EC 5.3.99.12)라 불리는 이 효소가 불안정한 중간체를 붙잡아, 휘발성 기체인 신-프로판티알 S-옥사이드(syn-propanethial S-oxide, 분자식 C3H6OS, 분자량 약 90.14 g/mol)로 재배열하는 것이다. 이 두 번째 효소의 존재는 오랫동안 짐작에 머물러 있다가, 2002년 일본 하우스식품(House Foods Corporation) 연구팀의 이마이(Imai) 등이 Nature 419권 6908호 685쪽(2002년 10월 17일자)에 발표한 짧은 연구서한을 통해 실험적으로 규명되고 이름 붙여졌다. 이전까지는 최루 기체가 알리나아제 반응의 자연스러운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 연구는 알리나아제와 이소알리인만으로는 최루 기체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LFS까지 함께 있어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전구체에서 효소 두 개를 거쳐 최루 기체가 만들어지고 눈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도
양파 세포 속에서 전구체와 두 효소(알리나아제, LFS)가 순서대로 반응해 최루 기체를 만들어 내는 2단계 릴레이 구조(자체 도해). 자체 도해 · PIL(Python) 작도

눈에서 벌어지는 일

이렇게 만들어진 휘발성 기체는 공기 중으로 퍼져 눈 표면을 덮은 눈물막에 닿는다. 대학 화학 교육 자료들에 따르면, 이 기체 가운데 일부가 눈물막의 수분과 반응해 소량의 황산을 형성하며, 이것이 각막의 신경 말단을 자극해 화끈거림과 반사적인 눈물 분비로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다만 이 반응의 정확한 화학양론까지 규명한 1차 연구 문헌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대중과학 수준의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하다.

마늘은 같은 집안인데 왜 덜 우는가

마늘 통과 낱쪽 사진
마늘(Allium sativum) 통마늘과 낱쪽 — 양파와 같은 부추속(Allium) 식물이다. 사진: Ivar Leidus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마늘도 양파와 마찬가지로 알리움속(Allium) 식물이고 같은 알리나아제 효소를 쓰지만, 마늘을 썰 때는 양파만큼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유는 두 채소가 저장해 둔 전구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늘의 전구체는 알리인(2-프로페닐-L-시스테인 설폭사이드)으로, 양파의 이소알리인과는 곁사슬 이중결합의 위치만 다르다. 알리나아제가 알리인을 분해하면 이번에는 2-프로펜설펜산이라는 중간체가 생기는데, 이 중간체는 양파처럼 LFS에 가로채지는 대신 두 분자끼리 자발적으로 결합해 마늘 특유의 향과 건강기능 성분으로 알려진 알리신(allicin)이 된다. 마늘에 이 효소가 “아예 없다”고 직접 실험으로 증명한 논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리뷰 문헌은 마늘에서는 반응이 최루 기체 생성 경로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마늘이 이 효소 활성을 사실상 갖지 않거나 매우 낮은 수준으로만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서술한다.

양파 경로와 마늘 경로가 전구체 차이로 서로 다른 산물로 갈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비교 개념도
같은 알리나아제 반응이 전구체 차이로 양파에서는 최루 기체로, 마늘에서는 알리신으로 갈라지는 구조를 비교한 도해(자체 도해). 자체 도해 · PIL(Python) 작도

이 화학을 되짚어 만든 눈물 없는 양파

이 반응 경로가 규명되자, 이를 거꾸로 활용해 눈물이 덜 나는 양파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다만 이름은 비슷해도 계보는 서로 다른 세 갈래로 나뉜다는 점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첫째, 2007~2008년 뉴질랜드 Crop & Food Research의 콜린 이디(Colin Eady) 박사팀이 일본 하우스식품과 함께 RNA 간섭(RNAi) 기술로 LFS 유전자를 침묵시킨 실험실 계통을 만들어 국제 식용 알리움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포장 재배 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계통은 지금까지 상용화된 적이 없다. 둘째, 이와는 완전히 별개로 일본의 한 연구팀은 유전자변형이 아닌 네온이온빔 종자 조사(照射) 방식으로 최루 기체 생성량이 정상 양파보다 약 7.5배 낮은 돌연변이 계통을 육성해 2016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는데, 이 역시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별도의 접근이다. 셋째, 실제로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저자극 품종 ‘수니언(Sunions)’은 이런 유전공학 연구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육종가 릭 왓슨(Rick Watson)이 198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에 걸쳐 재래식 교배와 선발만으로 최루 성분 생성량이 자연히 낮은 계통을 만들었고, 명확히 비유전자변형(non-GMO) 작물로서 미국에서는 2018년부터, 영국(웨이트로즈)에서는 2022년부터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비달리아(Vidalia) 같은 단맛 양파는 육종이나 효소와도 무관하게, 재배지의 저황(低黃) 토양이 양파가 축적하는 황 전구체 총량 자체를 낮추는 환경적 요인으로 순한 맛을 낸다. 조지아대학교 연구진은 이런 순한 정도를 생중량 1그램당 피루브산 5.0마이크로몰 이하(단맛)와 8.0마이크로몰 이상(매운맛)이라는 기준으로 구분해 계량한다. 이 세 갈래는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므로, 시중의 스위트 양파를 유전공학 품종과 같은 것으로 섞어 이해하지 않는 것이 정확하다.

썰 때 눈물을 줄이는 법

도마 위에서 칼로 자른 적양파
도마 위에서 반으로 잘린 적양파 — 칼이 세포벽을 가르는 순간 나뉘어 있던 물질들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사진: Dirk Ingo Franke · CC BY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정밀한 대조실험으로 모두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양파협회 등 여러 요리·과학 매체가 반복적으로 권하는 방법들에는 나름의 화학적 근거가 있다. 자르기 전 냉장고에 약 30분, 또는 냉동실에 10~15분 넣어두면 낮은 온도가 효소 반응 속도와 기체 증발 속도를 함께 늦춘다. 잘 드는 칼을 쓰면 세포 파열을 최소화해 효소와 기질이 섞이는 양 자체가 줄어든다. 흐르는 물 아래나 젖은 도마 위에서 자르면 방출된 기체가 물에 녹아 공기 중 농도가 옅어지고, 황 화합물 농도가 가장 높다고 알려진 뿌리 쪽을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다가 자르는 것도 노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된다. 환기팬을 켜거나 거리를 두는 것, 필요하면 고글을 쓰는 것도 기체가 눈에 닿는 경로 자체를 차단하는 방법이다.

밭에서 자라는 양파 작물
밭에서 자라는 양파(Allium cepa) — 이 화학 방어 체계는 수확되기 전부터 식물 안에 갖춰져 있다. 사진: Wuzyprod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전구체와 효소가 서로 다른 칸에 나뉘어 저장되어 있다가, 세포가 파괴되는 바로 그 순간에만 반응이 시작되는 이 구조는 정교하게 설계된 방어 체계처럼 보인다. 이런 황 화합물은 초식 곤충이나 병원균에 대한 방어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는 채소 한 알 속에도 이렇게 정밀하게 짜인 화학적 정교함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창조물 곳곳에 스며 있는 세심한 설계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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