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누군가는 꼭 이렇게 말합니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잖아.” 너무 자주 들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법령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국화는 벚꽃”이라고 못 박은 조항은 없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일본에는 법으로 지정한 국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상식처럼 되뇌던 문장 하나가, 실은 법적 사실이 아니라 문화적 통념이었던 셈입니다. 이 오해의 매듭을 하나씩 풀다 보면 벚꽃을 둘러싼 역사와 유전학의 뜻밖의 진실과 만나게 됩니다.


일본에는 법으로 정한 ‘국화’가 없다
흔히 “일본의 국화는 벚꽃”이라 하지만, 이는 법으로 규정된 지위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꽃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두 가지가 기능합니다. 하나는 국화(菊, chrysanthemum)로, 황실과 국가를 대표하는 사실상의(de facto) 상징입니다. 다른 하나가 벚꽃(桜, sakura)으로, 법적 지위 없이 국민 정서에 뿌리내린 비공식 문화 상징입니다. 둘 중 어느 것도 ‘국화(國花)’로 법제화된 적은 없습니다 (Nippon.com).
국가 상징으로서 더 공식에 가까운 쪽은 오히려 국화입니다. 열여섯 장의 꽃잎을 두른 국화 문장(菊花紋章)은 일본 황실의 문장이자 사실상의 국가 표지입니다. 이 문양은 고토바 천황(재위 1183~1198)이 개인 문장으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고, 문장으로서는 13세기부터 사실상 쓰였으나 법적으로 확립된 것은 1926년에 이르러서입니다 (영문 위키백과). 오늘날에도 국화 문장은 일본 여권 표지, 일부 주화, 재외공관 정문 등에 새겨져 있습니다. 정작 그 국화조차 나라시대(710~794)에 약용 식물로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니, ‘국가의 꽃’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만들어진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벚꽃이 상징이 된 것은 ‘태고부터’가 아니다
벚꽃이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을 상징했다는 인상도 사실과 다릅니다. 꽃을 감상하는 하나미(꽃놀이)의 기원은 나라시대까지 올라가지만, 초기에 사람들이 완상하던 꽃은 벚꽃이 아니라 매화였습니다. 이는 당시 강했던 중국 문화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러다 헤이안시대(794~1185)에 이르러 감상의 대상이 매화에서 벚꽃으로 옮겨 갔습니다 (영문 위키백과).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벚꽃 하나미는 사가 천황이 812년 교토의 신센엔(神泉苑)에서 연 연회로, 『니혼코키(日本後紀)』에 전합니다. 831년에는 궁정의 공식 연중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즉 벚꽃이 일본을 대표하는 꽃으로 국민적 상징이 된 것은 헤이안 이후, 특히 에도시대와 근대를 거치며 굳어진 결과이지 태곳적부터의 일이 아닙니다. 짧게 만개했다가 미련 없이 지는 벚꽃의 생리는 삶의 덧없음, 이른바 모노노아와레(사물의 애상)를 상징하게 되었고, 무사 문화에서는 절정의 순간에 지는 명예로운 죽음의 은유로 쓰였습니다.

전 세계의 소메이요시노는 사실상 ‘한 그루의 분신’이다
우리가 오늘날 가장 흔히 보는 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Prunus × yedoensis ‘Somei-yoshino’)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심긴 수많은 소메이요시노가 실은 단 한 그루의 원목에서 비롯된 클론이라는 사실입니다. 소메이요시노는 서로 다른 종이 만난 잡종인 데다 스스로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하는 자가불화합성을 지녀 씨앗으로는 번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접목과 꺾꽂이로만 불려 왔고, 결과적으로 세계의 소메이요시노는 유전적으로 사실상 같은 개체입니다 (영문 위키백과).
자가불화합성은 식물이 근친 수분을 피해 건강한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도록 하나님이 심어 두신 정교한 장치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접목이라는 방법으로 이 장치를 우회해, 한 그루의 유전형을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복제해 온 것입니다. 다만 ‘모든 소메이요시노가 완벽히 동일하다’는 말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2024년 시라사와 연구진이 DNA Research에 발표한 연구는 46개 시료에서 684개의 체세포 돌연변이를 찾아내, 오랜 접목 과정에서 미세한 유전적 편차가 쌓였음을 보였습니다 (PubMed). 흥미롭게도 이는 단일 클론 기원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증합니다. 연구진은 그 돌연변이를 추적자 삼아 번식 계보를 복원했고, 도쿄 우에노공원의 한 그루가 원조 조상에 가장 가깝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부모종은 모계 쪽 에도히간(올벚) 계통과 부계 쪽 오시마벚으로, 2019년 발표된 정밀 게놈(약 690.1메가베이스, 약 95,076개 유전자) 분석도 이 교배를 뒷받침합니다 (Oxford DNA Research).
소메이요시노는 에도에서 만들어진 인공 재배품이다
그렇다면 그 ‘한 그루’는 어디서 왔을까요. 소메이요시노의 발상지는 에도, 곧 오늘날 도쿄의 소메이(染井) 마을로, 지금의 도시마구 고마고메 일대에 있던 원예업자들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연구(이와사키, 1991)는 1720년에서 1735년경 인공 교배로 이 품종이 성립했다고 추정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재 기록은 1775년 고이시카와 식물원의 것입니다 (영문 위키백과).
이름이 붙은 것은 훨씬 뒤입니다. 1900년 후지노 요리나가가 발상지 소메이와 벚꽃 명소인 요시노산의 이름을 따 ‘소메이요시노’라 명명했고, 이듬해인 1901년 마츠무라 진조가 Prunus yedoensis라는 학명을 부여했습니다. 다시 말해 소메이요시노는 야생에서 저절로 퍼진 나무가 아니라, 에도의 정원사들이 빚어낸 원예 품종입니다.

제주 왕벚나무는 전혀 다른 ‘자생 잡종’이다
여기서 한국의 왕벚나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주도에 저절로 자라는 왕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와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별개의 분류군입니다. 조 등(2014)이 American Journal of Botany에 발표한 연구는 분자와 형태 자료로 제주 야생 왕벚이 잡종에서 비롯되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습니다 (American Journal of Botany). 이어 가쓰키 등(2016)은 이를 소메이요시노와 구별해 Cerasus × nudiflora(= Prunus × nudiflora)라는 학명을 제안했습니다 (영문 위키백과).
왕벚의 부모종은 모계 쪽 에도히간(올벚) 계통 — 이 계통은 한국에도 자생합니다 — 과 부계 쪽 산벚 계통입니다. 소메이요시노와 모계 계통은 공유하지만 부계가 다르며, 두 나무는 각자 독립적으로 성립했습니다. 제주의 자생 개체군은 2017년 4월 기준 한라산 일대에 약 194그루가 확인되었고, 해발 165미터에서 853미터에 걸쳐 분포합니다 (영문 위키백과).
‘원조 논쟁’을 유전학이 정리하다
오랫동안 “일본 소메이요시노가 제주 왕벚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퍼져 있었습니다. 20세기 초의 관찰(쾨네 1912, 그리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윌슨 1916)과 제주에 야생 왕벚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유전학의 결론은 이와 다릅니다. 조와 김(2019)이 Frontiers in Plant 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핵 rDNA(ITS·ETS), 엽록체 DNA, RosCOS, PolA1 등 네 가지 분자 표지로 검증한 끝에, 야생 한국 왕벚과 재배 소메이요시노가 서로 독립적으로 기원한 다른 분류군임을 확인했습니다 (PMC). ‘소메이요시노가 제주 왕벚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유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어느 나라가 ‘원조’이고 어느 나라가 ‘도둑’이라는 구도로 몰아가지 않는 일입니다. 과학이 말하는 바는 단순하고 균형 잡혀 있습니다. 제주 왕벚나무는 한국에 실제로 자생하는 진짜 야생 잡종종이고, 소메이요시노는 에도시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일 재배 클론이며, 두 나무는 모계 계통만 공유할 뿐 별개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대중이 흔히 둘을 ‘같은 나무’로 뭉뚱그려 온 오해를, 유전학이 정밀하게 바로잡아 준 셈입니다. 다만 학명의 처리는 아직 데이터베이스마다 갈립니다. 큐 왕립식물원의 POWO는 Prunus × yedoensis Matsum.을 승인명으로 두고 그 자생 범위를 제주도로 표기하는 반면, 앞의 2014·2016년 연구 계열은 제주 야생 개체를 별도의 nudiflora로 분리합니다 (Kew POWO). 그러니 “학명이 하나로 완전히 확정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벚꽃 한 송이 뒤에는 이처럼 통념보다 훨씬 정교한 역사와 계보가 접혀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적 없는 ‘국화’, 매화에서 옮겨 온 상징, 한 그루에서 복제된 클론, 그리고 모계만 나누어 가진 두 나무의 독립된 기원까지 —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은 사람의 성급한 통념보다 언제나 더 섬세하고 질서 있게 짜여 있습니다. 봄마다 무심히 되뇌던 한마디를 잠시 멈추고 그 뒤의 진실을 들여다볼 때, 벚꽃은 더 깊고 정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참고 자료
- Nippon.com — The Chrysanthemum: Flower of Emperors
- Wikipedia — Imperial Seal of Japan
- Wikipedia — Hanami
- Wikipedia — Prunus × yedoensis (Somei-yoshino)
- Wikipedia — Prunus × nudiflora (King cherry)
- Cho & Kim (2019), Frontiers in Plant Science
- Shirasawa et al. (2024), DNA Research
- Phased genome of Cerasus × yedoensis (2019), DNA Research
- Cho et al. (2014), American Journal of Botany
- Kew POWO — Prunus × yedoensis Mats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