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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일본의 국화일까? 법에 없는 국화와 한 그루에서 퍼진 소메이요시노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누군가는 꼭 이렇게 말합니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잖아.” 너무 자주 들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국가 상징을 직접 정한 법률인 1999년의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면, 정해 둔 것은 국기와 국가 두 가지뿐입니다. 꽃에 관한 조항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벚꽃은 어떻게 ‘일본의 꽃’이 되었을까요? 오늘날 거리마다 심긴 소메이요시노는 어디에서 왔고, 제주 한라산의 왕벚나무와는 어떤 관계일까요? 법, 역사, 유전학의 순서로 차근차근 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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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배경 앞으로 뻗은 가지에 흰 꽃잎과 분홍빛 꽃받침의 소메이요시노 꽃이 줄지어 핀 모습
활짝 핀 소메이요시노 꽃가지(일본 오사카 나가이 식물원, 2026년 4월). 세계 곳곳의 소메이요시노는 한 그루에서 접붙이기로 퍼진 클론입니다. 사진: Laitche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일본에는 법으로 정한 ‘국화’가 없습니다

1999년 8월 13일에 공포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은 단 두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조는 “국기는 일장기로 한다”, 제2조는 “국가는 기미가요로 한다”입니다(일본 e-Gov 법령 검색). 국화를 정한 조항은 이 법에도, 다른 법에도 없습니다. 일본 매체 Nippon.com도 일본에는 법으로 정한 국화도, 국가 문장도 없다고 설명합니다. 벚꽃은 국민이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꽃으로, 국화(菊)는 황실 문장으로 저마다 일본을 대표해 왔을 뿐입니다.

공식 문서에 더 가까이 있는 꽃은 오히려 국화입니다. 열여섯 장 꽃잎의 국화 문양은 고토바 천황(재위 1183~1198)이 개인 문장으로 삼으면서 황실의 상징이 되었다고 전합니다(Nippon.com). 1869년 태정관 포고가 ‘열여섯 장 겹꽃 국화’를 황실 문장으로 정했고, 1871년에는 황족이 아닌 사람의 국화 문양 사용을 금했습니다. 1926년 황실의제령은 이를 다시 성문화했습니다(일본어 위키백과 ‘국화 문장’). 오늘날 일본 여권 표지에 들어간 것은 이 문장을 단순화한 ‘열여섯 장 홑겹 국화’이고, 일본 정부가 표장으로 쓰는 것은 국화가 아니라 오동잎 문양(五七桐)입니다(영문 위키백과 ‘Imperial Seal of Japan’). 그 국화조차 나라 시대(710~794)에 약용 식물로 중국에서 들어온 꽃입니다(Nippon.com). ‘나라의 꽃’은 법이 아니라 오랜 관습과 쓰임이 만든 이름인 셈입니다.

밝은 바탕 가운데 노란 꽃잎 열여섯 장이 둥글게 둘러싼 국화 문장 도안
일본 황실의 국화 문장을 나타낸 도안. 꽃잎 열여섯 장이 가운데 원을 둘러쌉니다. 도안: Philip Nilsson · 퍼블릭 도메인 · 출처 Wikimedia Commons

처음 사랑받은 꽃은 벚꽃이 아니라 매화였습니다

벚꽃이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을 상징했다는 인상도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꽃을 감상하며 즐기는 하나미(花見, 꽃놀이)는 나라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처음 사람들이 즐긴 꽃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매화였습니다(영문 위키백과 ‘Hanami’). 8세기의 노래 모음집 『만엽집(萬葉集)』에는 벚꽃을 읊은 노래가 43수, 매화를 읊은 노래가 110수가량 실려 있습니다(일본어 위키백과 ‘하나미’). 매화가 어떤 꽃인지는 눈 속에 피는 매화: 향기의 화학과 덜 익은 매실의 방어물질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뻗은 가지에 흰 매화와 붉은 꽃봉오리가 함께 달린 모습
파란 겨울 하늘 아래 핀 흰 매화(일본 요코하마 오쿠라야마 공원, 2016년 2월). 초기 하나미의 주인공은 매화였습니다. 사진: Chihiro H · CC BY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감상의 중심이 벚꽃으로 옮겨 간 것은 헤이안 시대(794~1185)입니다. 역사서 『일본후기(日本後紀)』에는 사가 천황이 812년 교토의 정원 신센엔(神泉苑)에서 꽃 잔치인 ‘화연의 절(花宴の節)’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이 기록에 남은 첫 벚꽃 꽃놀이로 여겨집니다. 831년부터는 천황이 여는 궁중의 정례 행사가 되었습니다(일본어 위키백과 ‘하나미’). 벚꽃이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 된 것은 이렇게 천 년 넘게 쌓인 문화의 결과이지, 법이 정한 일이 아닙니다.

맑은 하늘 아래 기와지붕 건물과 나무들이 잔잔한 연못 물에 비친 정원 풍경
교토 신센엔의 연못(2011년 1월). 『일본후기』는 812년 사가 천황이 이곳에서 꽃 잔치를 열었다고 전합니다. 사진: 663highland · CC BY 2.5 · 출처 Wikimedia Commons

소메이요시노는 두 종이 만난 한 그루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일본 전역에 가장 널리 심긴 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입니다. 이 나무는 서로 다른 두 종이 만나 생긴 잡종입니다. 어머니 쪽은 에도히간(올벚나무 계통), 아버지 쪽은 이즈 제도에 자생하는 오시마벚나무입니다(Cho & Kim 2019). 2019년 일본 연구진이 해독한 소메이요시노 유전체는 약 6억 9,010만 염기쌍으로, 그 안에서 9만 5,076개의 유전자를 찾았습니다. 두 부모에게서 받은 염색체 세트를 따로 읽어 에도히간 쪽 약 3억 5,010만 염기쌍, 오시마벚나무 쪽 약 3억 4,000만 염기쌍으로 나누어 보이기도 했습니다(Shirasawa 외 2019).

이 나무가 태어난 곳은 에도, 곧 지금의 도쿄 도시마구 고마고메 일대에 있던 소메이(染井) 마을로, 원예업자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언제 생겼는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18세기 전반의 인공 교배로 보는 연구(이와사키, 1991)가 있는가 하면, 에도 시대 말기에 생겼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축에 드는 식재 기록은 1775년 고이시카와 식물원의 것입니다(일본어 위키백과 ‘소메이요시노’). 처음에는 벚꽃 명소 요시노산의 이름을 빌려 ‘요시노 벚나무’로 팔렸습니다. 그러다 1900년 후지노 요리나가가 우에노공원의 벚나무를 조사해 요시노산의 산벚나무와 다른 나무임을 밝히고 ‘소메이요시노’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듬해 마쓰무라 진조가 학명 Prunus yedoensis를 발표했습니다(같은 자료).

잔디밭과 산책로 옆에 선 나무 전체가 흰 꽃으로 뒤덮인 오시마벚나무
흰 꽃으로 뒤덮인 오시마벚나무(Prunus speciosa, 프랑스 파리 식물원). 소메이요시노의 아버지 쪽 종입니다. 사진: Moonik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씨 대신 접붙이기로 퍼진 클론

소메이요시노는 자기 꽃가루로는 씨를 맺지 못하는 ‘자가불화합성’ 종간 잡종입니다(Shirasawa 외 2024). 자가불화합성은 한 그루가 제 꽃가루로 씨를 맺지 않도록 막아, 다른 개체와 꽃가루를 나누며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게 하는 정교한 장치입니다. 다른 벚나무의 꽃가루를 받아 씨가 맺히더라도, 그 씨에서 자란 나무는 부모가 다른 새 개체일 뿐 소메이요시노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품종을 씨가 아니라 접붙이기로 늘려 왔습니다. 1995년의 DNA 지문 분석은 소메이요시노가 단 한 그루에서 비롯된 클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일본어 위키백과 ‘소메이요시노’).

유전형이 같은 나무들이 같은 기온에 비슷하게 반응한다는 점은 쓸모도 있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오키나와·아마미(히칸자쿠라)와 홋카이도 일부 지점(에조야마자쿠라)을 빼면 대부분의 관측 지점에서 소메이요시노를 벚꽃 개화의 표본목으로 삼습니다(일본 기상청). 같은 조건에서 꽃 피는 날의 개체 차이가 작으니, 지역별 개화일을 이어 ‘벚꽃 전선’을 그리기에 알맞습니다. 온 도시의 벚꽃이 한꺼번에 피는 원리는 벚꽃은 어떻게 온 도시가 한꺼번에 필까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메이요시노의 DNA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024년 일본 시라사와(Shirasawa) 연구진은 일본 각지의 소메이요시노 46그루를 분석해 684개의 단일 염기 돌연변이를 찾았습니다. 그중 71개는 여러 그루에 함께 나타났습니다. 접붙이기로 가지가 옮겨 갈 때마다 돌연변이가 함께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이 공통 돌연변이로 나무들을 묶자 46그루는 여덟 무리로 나뉘었고, 그중 네 무리에 36그루가 몰려 있었습니다. 도쿄 우에노공원에서 채취한 네 그루는 모두 이 네 무리에 속했고, 연구진은 그중 한 그루가 원조 나무에 가장 가깝다고 결론지었습니다(Shirasawa 외 2024). 작은 돌연변이가 오히려 ‘한 그루에서 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족보 역할을 한 셈입니다.

제주 왕벚나무는 한라산 숲에서 따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한국의 왕벚나무 이야기입니다. 1908년 프랑스인 선교사 에밀 타케(Taquet) 신부가 한라산에서 벚나무 표본을 채집했고, 1912년 독일 식물학자 쾨네(Koehne)가 이를 소메이요시노 학명 아래 변종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로 보고했습니다(Cho & Kim 2019). 이름이 소메이요시노에 묶이면서 ‘소메이요시노가 제주에 자생한다’는 오해가 생겨났습니다. 1916년 영국 식물 탐험가 윌슨(E. H. Wilson)은 제주 표본을 살핀 뒤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를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적었고, 1932년에는 일본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가 소메이요시노가 제주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습니다(영문 위키백과 ‘Prunus × nudiflora’). 제주 기원설을 학술적으로 내세운 사람이 일본 학자였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오래된 질문에 답한 것은 21세기의 분자 연구입니다. 2014년 Cho 등은 제주의 야생 왕벚나무가 두 종의 잡종이라는 첫 확실한 증거를 내놓았습니다. 어머니 쪽은 올벚나무(P. spachiana f. ascendens)였고, 아버지 쪽은 벚나무·산벚나무 무리 가운데 하나로 좁혀졌지만 정확히 가려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논문은 재배 소메이요시노가 제주 야생 집단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습니다(Cho 외 2014). 2018년 Baek 등은 야생 왕벚나무의 유전체를 해독해 이 나무가 올벚나무(어머니 쪽)와 같은 숲에 자라는 산벚나무류 P. jamasakura(아버지 쪽) 사이의 1세대 잡종이며, 소메이요시노와 뚜렷이 구별된다고 보고했습니다(Baek 외 2018).

소메이요시노와 제주왕벚나무의 어머니 쪽과 아버지 쪽 계통을 나란히 비교한 도해
두 나무의 계보 비교. 소메이요시노는 에도히간과 오시마벚나무가 한 번 만나 생긴 한 그루를 접붙이기로 늘린 재배 품종이고, 제주왕벚나무는 한라산 숲에서 올벚나무 계통과 벚나무·산벚나무 무리가 여러 차례 자연 교잡해 생긴 야생 개체들입니다. 아버지 쪽 종은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고되었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본문에 인용한 Cho & Kim(2019), Baek 외(2018), Shirasawa 외(2019)의 계통 결과를 한눈에 비교하도록 그린 개념도

2019년 Cho와 Kim은 범위를 넓혀 더 많은 개체를 모으고 네 가지 분자 표지로 다시 분석했습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제주의 야생 왕벚나무는 같은 숲에 사는 올벚나무(어머니 쪽)와 벚나무 계통(아버지 쪽)이 여러 차례, 양쪽 방향으로 자연 교잡해 생겼습니다. 반면 소메이요시노는 재배되던 에도히간과 오시마벚나무가 단 한 번 인공 교잡해 생긴 품종입니다. 두 나무는 서로 다른 과정으로 태어난 별개의 분류군이라는 것입니다(Cho & Kim 2019). 2014년 같은 연구진이 열어 두었던 ‘제주 기원’ 가능성을, 더 많은 자료로 스스로 정정한 셈입니다.

흐린 하늘 아래 낮은 나무 울타리 너머 풀밭에 선 연분홍 꽃이 가득 핀 큰 벚나무 한 그루
제주 서귀포 신례리의 왕벚나무 자생지. 한라산 기슭에서 저절로 자란 개체입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 공공누리 제1유형 · 출처 Wikimedia Commons

한라산의 자생 왕벚나무는 드뭅니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한라산 일대를 조사한 결과 173곳에서 194그루가 확인되었고, 해발 165미터에서 853미터 사이에 자라고 있었습니다(영문 위키백과 ‘Prunus × nudiflora’).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1964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국가유산포털).

이름은 아직 정리되는 중입니다

학명도 이 연구 흐름을 따라 바뀌고 있습니다. 2016년 가쓰키(Katsuki) 등은 제주의 야생 왕벚나무를 소메이요시노와 구별해 Cerasus × nudiflora라는 이름을 제안했습니다(영문 위키백과 ‘Prunus × nudiflora’). 영국 큐 왕립식물원의 세계 식물 목록 POWO는 현재 Prunus × nudiflora (Koehne) Koidz.를 한국 자생 잡종의 승인명으로 올려 두었고, Prunus × yedoensis Matsum.은 인공 잡종으로 따로 분류합니다(Kew POWO). 한국에서는 국립수목원이 유전체 비교 연구를 근거로 제주 자생 개체에 ‘제주왕벚나무’라는 국명을 붙이고, 가로수로 심긴 재배 왕벚은 ‘왕벚나무’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다만 기원을 어떻게 볼지를 두고 국내 전문가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2022년에는 이 국명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고, 제주 자생 개체 전체의 유전체를 조사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한라일보 2022). 이름 문제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이 이야기를 어느 나라가 ‘원조’인지 겨루는 구도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연구가 보여 주는 사실은 간결합니다. 제주왕벚나무는 한국 땅에서 저절로 생겨난 야생 잡종이고, 소메이요시노는 에도의 정원사들이 만든 단일 재배 품종이며, 두 나무는 어머니 쪽 계통만 나눠 가진 서로 다른 나무입니다.

벚꽃 한 송이 뒤에는 이렇게 통념보다 훨씬 정교한 이야기가 접혀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적 없는 ‘국화’, 매화에서 옮겨 온 사랑, 한 그루에서 퍼진 클론과 그 족보를 알려 준 작은 돌연변이, 그리고 한라산 숲에서 따로 태어난 나무까지.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은 사람이 서둘러 붙인 이름보다 언제나 더 섬세하게 짜여 있습니다. 다음 봄 벚꽃 아래에서 ‘벚꽃은 일본의 국화’라는 말이 떠오르거든, 잠시 멈추고 그 나무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정정 · 2026-10-03 캡션과 다른 사진 두 장(제주 왕벚나무로 소개한 1931년 영화 홍보물, 흰 매화로 소개한 매실나무 목재 단면)을 실제 피사체 사진으로 바꾸고, 계보 비교 도해와 사진을 더했습니다. 큐 왕립식물원 POWO의 학명 처리를 현재 기록에 맞게 고쳤고(소메이요시노는 인공 잡종, 제주 왕벚나무는 Prunus × nudiflora로 승인), 소메이요시노가 씨를 전혀 맺지 못한다는 표현을 바로잡았습니다. 국화 문장의 법적 경과와 여권 문양, 제주 기원설의 연구사(1932년 고이즈미 주장, 2014년 가능성 제시, 2019년 정정), 소메이요시노의 성립 시기에 대한 이견을 더했고, 확인되지 않은 서술은 덜어 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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