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잎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 끝에 지름 2센티미터 남짓한 흰 꽃이 눈을 이고 피어 있습니다. 손끝이 시린 추위 속에서 코끝을 먼저 붙드는 것은 의외로 짙은 향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장면을 그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으로만 기억하지만, 매화 한 송이 안에는 향과 방어가 같은 화학 골격을 공유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꽃에서 달콤한 쓴 아몬드 향을 내는 분자가, 덜 익은 매실 씨앗이 청산을 내며 자신을 지킬 때 함께 나오는 분자와 사실은 똑같은 벤즈알데하이드라는 사실입니다.


자두가 아니라 살구를 닮은 겨울 꽃
매화의 정식 학명은 Prunus mume로, 장미과에 속합니다. 영어권에서는 흔히 ‘Japanese apricot’이나 ‘plum blossom’이라 부르고 열매를 ‘plum(자두)’으로 옮기지만, 분류학적으로 매실나무는 자두가 아니라 살구 계열에 더 가깝습니다. Prunus 속 안에서도 살구가 속한 무리에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매실은 자두의 일종’이라는 말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원산지는 중국 남부 양쯔강 일대이며, 이후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지로 퍼졌습니다. 자생지에서는 해발 1,700미터에서 3,100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지에서도 자랍니다. 나무는 대개 4미터에서 10미터까지 자라고, 꽃은 지름 2에서 2.5센티미터로 흰색, 분홍색, 붉은색이 있으며 품종에 따라 매우 강한 향을 냅니다.
개화기는 동아시아를 기준으로 대체로 1월부터 2월 말까지, 한겨울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는 점입니다. 잎이 돋기 전 헐벗은 가지에서 꽃만 가득 피기 때문에, 눈을 인 채 피는 모습이 유독 도드라져 보입니다. 열매인 매실은 지름 2에서 3센티미터로, 익으면 껍질이 노랗게(때로는 붉은 기가 돌게) 변하며 6월에서 7월에 익습니다. 신맛이 매우 강해 날것으로는 잘 먹지 않습니다.
눈 속에 피지만 ‘유일한 겨울 꽃’은 아닙니다
매화는 미국 농무부 기준 zone 6 정도의 추위까지 견디는 내한성을 지닙니다. 브루클린 식물원의 안내에 따르면 뉴욕시보다 북쪽의 겨울은 견디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한성이 있다고 해서 꽃봉오리까지 서리에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봉오리가 열린 시점에 강한 서리가 닥치면 꽃이 상해 ‘타 버린’ 것처럼 됩니다. 흥미롭게도 바람을 막아 주는 아늑한 자리에 심으면 오히려 꽃이 너무 일찍 피어 서리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매화를 두고 흔히 ‘눈 속에 피는 유일한 꽃’이라 말하지만, 이는 과장입니다. 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에 피는 목본은 여럿 있습니다. 노란 실 같은 꽃을 피우는 풍년화, 은은한 향의 납매, 그리고 동백 등이 매화와 비슷하거나 더 이른 시기에 꽃을 냅니다. 매화는 ‘가장 이른 축에 드는’ 꽃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추위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이 성질 때문에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 곧 추운 겨울을 함께하는 세 벗의 하나로 꼽혀 왔습니다. 다만 이는 인내와 희망을 담은 문화적 상징이지 식물학적 사실은 아니므로, 상징과 사실은 구분해 읽는 편이 좋습니다.

향기의 화학: 쓴 아몬드 향의 정체
매화 향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꽃에서 공기 중으로 날아오르는 휘발성분을 분석해 보면, 향의 대부분은 페닐프로파노이드와 벤제노이드라 불리는 방향족 화합물 무리입니다. 여러 품종을 조사한 연구에서 이들이 전체 휘발성분의 약 85에서 90퍼센트를 차지했고, 나머지 지방산 유도체나 테르페노이드는 소수에 그쳤습니다.
구체적인 성분과 함량 범위는 품종마다 크게 달랐습니다. 재스민을 닮은 꽃향을 내는 벤질 아세테이트가 1.55에서 61.26퍼센트, 쓴 아몬드와 체리를 연상시키는 벤즈알데하이드가 5.34에서 46.46퍼센트, 은은한 벤질 알코올이 5.13에서 57.13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정향처럼 매콤한 유제놀은 0.87에서 6.03퍼센트, 카비콜과 신나밀 알코올 같은 성분도 함께 검출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가지 방향족 분자의 비율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만으로 품종마다 향의 결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추워야 향이 더 진해진다’는 말은 확인된 근거가 없습니다. 매화의 진한 향은 추위 자체가 아니라 이런 방향족 성분의 종류와 양에서 비롯됩니다.

같은 분자, 두 얼굴: 꽃의 향에서 씨앗의 무기로
앞에서 향의 주요 성분으로 벤즈알데하이드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벤즈알데하이드가, 덜 익은 매실 씨앗이 자신을 지킬 때 등장하는 분자와 정확히 같은 화합물입니다. 향과 방어를 잇는 화학적 다리인 셈입니다.
매실을 비롯한 장미과 식물의 씨앗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아미그달린은 ‘사이안생성 배당체’로 불리는데, 분해될 때 사이안화수소, 곧 청산을 내놓는 당 결합 화합물이라는 뜻입니다. 분자식은 C20H27NO11입니다. 살구, 쓴 아몬드, 복숭아, 자두 씨앗에도 저마다 다른 양으로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정교한 방어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식물체 안에서 아미그달린과 그것을 분해하는 효소는 서로 다른 자리에 따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만날 일이 없다가, 벌레가 씹거나 조직이 으깨져 세포가 터질 때에야 비로소 둘이 뒤섞입니다. 그 순간 베타글루코시다아제 같은 효소가 작동해 청산과 벤즈알데하이드를 함께 만들어 냅니다. 조직이 다치지 않으면 독이 생기지 않고, 다치는 순간에만 방어물질이 켜지는 셈입니다.
분해는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1967년의 고전적 연구에 따르면 아미그달린은 먼저 프루나신과 포도당으로, 프루나신은 다시 만델로나이트릴과 포도당으로, 만델로나이트릴은 마지막으로 벤즈알데하이드와 청산으로 쪼개집니다. 각 단계에는 서로 다른 효소가 관여합니다.
여기서 정확히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아미그달린 자체는 독성이 거의 없고, 가수분해되어 청산이 나올 때에야 독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매실 씨앗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는 표현은 부정확합니다. 청산가리(사이안화칼륨)는 별개의 물질이며, 매실 씨앗에 있는 것은 ‘씹히거나 분해될 때 청산을 내는 배당체’입니다.
덜 익은 매실과 가공의 지혜
덜 익은 매실과 씨앗 속에는 이 아미그달린이 특히 문제가 됩니다. 도쿄도의 식품안전 자료는 덜 익은 열매와 씨의 속살에 사이안생성 배당체가 들어 있으며, 효소로 분해될 때 청산이 나와 두통, 현기증, 발한, 경련, 호흡 곤란 같은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매실은 보통 날로 먹지 않고 가공해서 씁니다. 실제로 아미그달린은 잘 익은 열매보다 덜 익은 초록빛 열매에 더 많고, 열매가 익어 갈수록 줄어듭니다. 또 과육보다 씨앗 속에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담그는 매실청은 어떻게 안전해질까요. 1년에 걸쳐 발효를 추적한 연구가 답을 줍니다. 설탕에 절인 지 3개월 된 시점에서 덜 익은 매실로 담근 시럽의 아미그달린은 리터당 약 63밀리그램을 넘어, 잘 익은 매실로 담근 시럽(리터당 42에서 50밀리그램)보다 오히려 높았습니다. 덜 익은 열매일수록 방어물질을 더 많이 남긴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9개월이 지나면 아미그달린은 리터당 3에서 12밀리그램 수준으로 급감했고, 12개월 뒤에는 대체로 리터당 5밀리그램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연구진은 열매의 익은 정도나 산지, 담그는 방법과 무관하게 최소 9개월 이상 숙성하는 것이 아미그달린을 낮추는 핵심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정확한 표현이 필요합니다. 오래 숙성하면 아미그달린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2개월 뒤에도 소량이 남아 있고, 담근 지 얼마 안 된 단기 시럽에는 여전히 상당량이 들어 있습니다. ‘매실청이나 매실주가 독을 완전히 없앤다’는 말은 과장이며, ‘오래 숙성하면 크게 줄어든다’가 정확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입니다. 아미그달린이나 그 유도체 ‘레트릴’, 이른바 ‘비타민 B17’이 암을 치료한다는 주장은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2015년의 한 체계적 문헌 검토는 아미그달린이나 레트릴이 암 환자에게 이롭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믿을 만한 임상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오히려 청산 중독의 위험만 따를 수 있습니다.
눈을 인 매화 한 송이는 이렇게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벌을 부르는 달콤한 향의 한복판에 있는 벤즈알데하이드가, 씨앗에서는 청산과 함께 나오는 방어의 부산물로 다시 등장합니다. 초대와 방어가 같은 분자 골격 안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추위 속에서 가장 먼저 향을 내면서도 제 씨앗을 지킬 줄 아는 이 작은 꽃에서, 우리는 창조주가 심어 두신 정교한 설계의 한 자락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