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흙을 파내고 다시 메우다: 고려 도공이 완성한 상감청자 이야기

학 예순아홉 마리가 푸른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릅니다. 두 겹의 동그라미 안에 있는 학은 하늘을 향해 오르고, 동그라미 밖의 학은 땅을 향해 내려옵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의 표면입니다. 그런데 이 학과 구름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도공이 그릇 표면을 조각칼로 파내고, 그 홈에 다른 색의 흙을 메워 만든 무늬입니다. 흙을 깎아 내고 다른 흙으로 다시 채운다는, 언뜻 번거롭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방법이 어떻게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장식이 되었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9분 해설 영상으로 보기

YouTube에서 보기

몸통 전체에 여러 단의 동그라미가 엇갈려 배치되고 그 안팎에 흰 학과 구름 무늬가 새겨진 청록색 매병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간송미술관, 높이 42.1cm). 몸통에 여섯 단으로 엇갈려 놓인 흑백 두 겹 동그라미 안에는 하늘로 오르는 학을, 동그라미 밖에는 내려오는 학을 새겼습니다.
사진: 영어 위키백과 사용자 Korea history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비색이라 부른다” — 송나라 사신이 감탄한 푸른빛

고려청자는 중국 남방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맑은 청록색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993년에 만든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처럼 초기 청자 가운데에는 갈색을 띠는 것도 있습니다. 가마도 달라졌습니다. 고려 초기 경기·황해도 일대에서는 중국 기술을 받아들인 벽돌가마(전축요)를, 전라도 일대에서는 토기 가마의 전통을 이은 진흙가마(토축요)를 썼는데, 고려 중기에 이르면 벽돌가마는 사라지고 진흙가마로 청자를 굽게 됩니다.

푸른빛은 흙과 유약, 그리고 불을 다루는 솜씨에서 나옵니다. 초벌구이한 그릇에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구울 때 가마 입구를 막아 산소가 들어가지 않게 해야 비취색이 납니다. 이 색의 명성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1123년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청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온 관리가 고려청자의 색을 따로 기록한 것입니다.

무늬 없이 맑은 청록색 유약만 입힌 참외 모양 몸통과 꽃잎처럼 벌어진 입의 청자 병
국보 청자 참외모양 병(국립중앙박물관, 12세기 전반). 무늬 없이 유약의 빛깔과 형태만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낸 비색 청자입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 Wikimedia Commons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 — 상감(象嵌)

비색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고려 도공들은 그 위에 무늬를 넣는 길을 찾았습니다. ‘상감’은 원래 금속공예에서 쓰던 말입니다. 그릇 표면을 파내고 금·은 같은 다른 재료를 박아 넣어 무늬를 내는 기법, 이를테면 청동에 은실을 박는 은입사(銀入絲)를 가리켰습니다. 도자기에서도 표면을 파고 바탕과 다른 색의 흙을 메워 무늬를 내는 장식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이렇게 장식한 청자를 상감청자라고 합니다.

흙을 파내고 다른 흙을 메우는 기법 자체가 고려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문화사』에 따르면 이 기법은 중국 섬서성의 황보요(黃堡窯)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요주요·자주요 같은 중국 북방 가마에서도 시도됐지만 흔한 기법은 아니었습니다. 고려에서도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10세기 무렵 장고 같은 특별한 그릇에 선 모양의 상감이 조금 쓰였습니다. 고려 도공들이 한 일은 이 드문 기법을 청자 장식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시작을 어디로 보느냐는 출처마다 다릅니다. 『한국문화사』는 10세기 무렵의 소량 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상감이 고급 청자의 장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후반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청자에 상감 무늬를 넣기 시작한 때를 12세기 전반으로, 세련된 상감청자가 크게 늘어난 때를 12세기 중엽으로 봅니다. 어느 쪽이든 상감청자가 본격적으로 꽃핀 것은 12세기 중엽 이후입니다. 1159년에 세상을 떠난 문인 문공유(文公裕)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청자상감보상당초문완’은 그 무렵의 상감 수준을 보여 주는 자료로 꼽힙니다. 다만 출토 기록의 신뢰도와 제작 시기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같은 시기 고려에서는 금속에 금·은을 박는 입사, 나무 그릇에 얇은 금·은판을 붙이는 평탈, 자개를 박는 나전칠기도 활발했습니다. 『한국문화사』는 이 공예들이 서로 조형적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이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만드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금속의 입사만큼은 몸체를 파내고 다른 재료를 박아 넣는다는 점에서 청자 상감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기법이라고 봅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청자 상감을 두고 “동양도자사에 있어서 획기적이라 할만한 창조적 기법”이라고 평가합니다.

파내고, 메우고, 깎고, 두 번 굽는다

과정은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그릇을 빚어 반쯤 마른(반건) 상태가 되면 조각칼로 표면에 무늬를 음각합니다. 파낸 홈에는 흰 흙(백토)이나 붉은 흙(자토)을 붓으로 바릅니다. 흙이 마르면 표면에 덧묻은 흙을 깎아 냅니다. 그러면 음각한 자리에만 흙이 남아 무늬가 드러납니다. 그릇을 완전히 말려 초벌구이를 하고, 그 위에 청자유를 입혀 다시 굽는 재벌구이로 마무리합니다.

왼쪽은 회색 흙 표면에 날카로운 도구로 학을 새기는 손, 오른쪽은 갈색 흙을 메운 매병 표면을 칼로 긁어 내는 장인의 손
전남 강진에서 상감 기법을 재현하는 장인들. 왼쪽은 학 무늬를 새기는 모습, 오른쪽은 홈을 메우고 남은 흙을 긁어 내는 모습입니다(2006년 촬영).
사진: Steve46814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회색 흙 매병에 학과 동그라미를 새기고, 흰 흙과 붉은 흙을 메우고, 표면을 깎고, 초벌구이 뒤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로 청록색 매병에 흰 학과 검은 동그라미가 드러나는 다섯 단계 그림
상감청자를 만드는 다섯 단계. ① 반쯤 마른 그릇에 무늬를 새기고 ② 홈에 백토와 자토를 메운 뒤 ③ 덧묻은 흙을 깎아 내고 ④ 초벌구이한 그릇에 유약을 입혀 ⑤ 다시 구우면 백토는 흰색, 붉은 자토는 검은색으로 드러납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상감 공정 설명을 단계별로 보여 주려고 만든 개념도이며 실제 유물이 아닙니다.

백토는 흰색, 자토는 검은색

여기에 상감청자의 묘미가 있습니다. 가마의 높은 열을 지나고 나면 백토는 흰색으로, 붉은 자토는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그 무늬가 투명한 청자유를 통해 은은하게 비쳐 떠오릅니다. 흙 속에 든 성분이 불을 만나 색을 바꾸는 이 성질을 정확히 알았기에, 도공들은 굽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흑백의 그림을 미리 계산해 새길 수 있었습니다. 간송미술관 매병의 검고 흰 두 겹 동그라미, 흰 학과 구름이 모두 이렇게 두 가지 흙으로 메운 것입니다.

청록색 병 가운데 흰 선으로 두른 꽃 모양 칸 안에 흰 국화꽃과 검은 줄기·잎이 새겨진 고려청자 병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실에 전시된 상감청자 병. 흰 국화꽃과 칸의 테두리는 백토, 검은 줄기와 잎은 자토를 메운 것입니다.
사진: Gary Todd · CC0 · Wikimedia Commons

구름과 학을 새긴 운학문은 간송미술관 매병만의 무늬가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강진 가마터에서 나온 상감 무늬로 운학·들국화·버드나무와 물새·모란 등을 꼽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13세기 후반에 만든 운학문 매병이 있습니다. 흰 학과 구름을 가는 검은 선이 감싸, 두 가지 흙을 한 무늬 안에 함께 쓴 솜씨가 잘 보입니다.

청록색 매병 몸통에 검은 윤곽선을 두른 흰 구름 무늬들과 날개를 펴고 고개를 든 흰 학 한 마리가 새겨진 모습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고려 13세기 후반의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매병. 흰 학과 구름의 가장자리를 검은 선이 감싸고 있습니다.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CC0 · Wikimedia Commons

강진과 부안, 상감청자를 구운 가마

이 정교한 작업은 아무 데서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문화사』는 상감청자가 강진과 부안 같은 고급 청자 산지에 집중됐고, 지방 가마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상감은 상류층을 위한 그릇에 쓰인 고급 기법이었다는 뜻입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일대의 가마터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용운리에는 가마터 65곳이 남아 있고 대부분 10~11세기의 초기 가마입니다. 사당리에는 45곳이 있는데 12세기 전반에서 13세기에 이르는 것이 가장 많고, 특히 당전마을 일대는 12세기 내내 가마가 몰려 있던 곳으로 뛰어난 비색과 상감 기법을 보여 줍니다. 청자가 시작되고 무르익은 흐름이 골짜기를 따라 가마터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나무와 풀숲 사이 낮은 울타리로 둘러싼 풀밭 형태의 가마터 유적
사적 강진 고려청자 요지의 한 가마터. 지금은 풀로 덮인 채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사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 공공누리 제1유형 · Wikimedia Commons

강진과 쌍벽을 이룬 곳이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일대입니다. 『한국문화사』는 13세기 전반에는 강진보다 부안에서 더 많은 상감청자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부안이 갑자기 앞에 나선 까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1170년 무신정변 이후 달라진 권력 구도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을 뿐입니다. 간송미술관의 운학문 매병도 『한국문화사』는 13세기경 부안에서 만든 것으로 추측하는데, 국가유산포털은 제작 시기를 12세기 후반으로 적고 있어 연대에는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간송이 지켜 낸 매병

이 매병이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매병은 원래 강화도의 한 무덤에 있던 것을 도굴꾼이 몰래 꺼내 판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이 마에다라는 일본인에게서 이 매병을 사들였고, 산 값의 두 배를 주겠다는 다른 일본인의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매병은 광복 뒤인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국보 제68호’로 불렸지만, 지정번호가 가치의 순위처럼 오해된다는 지적에 따라 2021년 11월 19일부터 지정번호를 쓰지 않게 되어 지금은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이라고 부릅니다.

쇠퇴, 그리고 분청사기로 이어진 흐름

모든 전성기에는 끝이 있습니다. 고려 후기, 몽골의 침입과 원나라의 간섭이 이어지며 청자는 쇠퇴기에 접어듭니다. 이 시기의 청자에서는 표면이 황록색을 띠며 비색을 잃고, 상감 무늬도 산만하고 거칠어져 같은 무늬를 되풀이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고려 말이 되면 청자를 굽는 가마도 강진 사당리, 부안 유천리 등 몇 곳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나 기술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서울 수유동, 예천 황지리 같은 가마터에서 고려 최말기의 상감청자가 조선 초 분청사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분청사기는 청자를 만들던 흙으로 그릇을 빚고 그 위에 흰 흙을 발라 구운 그릇으로, ‘분장회청사기’를 줄인 말입니다. 분청사기에서도 무늬를 새겨 흙을 메우는 상감은 계속 쓰였고, 여기에 도장으로 같은 무늬를 반복해 찍은 뒤 흰 흙을 메우는 인화(印花) 기법, 선으로 무늬를 긁어 새기는 기법 등이 더해졌습니다. 유학을 중심에 둔 새 지배층이 화려한 그릇보다 검소하고 실용적인 그릇을 원한 흐름과도 맞물렸습니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 14세기 후반부터 조선 1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흰 흙을 바른 연갈색 병 몸통에 검은 선으로 큼직한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진 분청사기 병
물고기 무늬를 선으로 새긴 조선 15세기~16세기 초의 분청사기 병(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청자의 흙과 흰 흙, 새김 무늬가 조선의 그릇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진: © Museum Associates/LACMA · Attribution · Wikimedia Commons

오늘 우리가 보는 것

매병 한 점 앞에 서서 학 예순아홉 마리를 헤아릴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옛 그릇이 아닙니다. 남에게서 받아들인 기술에서 멈추지 않고, 흙이 불을 만나 흰색과 검은색으로 갈리는 성질을 꿰뚫어 그것으로 그림을 그린 도공들의 시간입니다. 같은 흙을 두고도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끝까지 물었던 사람들 덕분에, 파내고 다시 메운 자리마다 학이 날아오릅니다.

참고 자료

1분 쇼츠로 보기

YouTube에서 쇼츠 보기

답글 남기기

상호 사우스맨대표 남인사업자등록번호 106-11-72375 사업자정보 확인통신판매업 신고 제2026-화성동탄-3378호주소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동탄공원로1길 6-59, 361동 301호전화 010-9184-2385이메일 south-man@daum.net호스팅 Oracle Cloud (대한민국 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