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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 렌즈도 없는데, 거미는 어떻게 거리를 정확히 잴까

거미줄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이 작은 사냥꾼은 대중문화 속 스파이더맨으로 친숙하다. 그런데 진짜 깡충거미는 사람처럼 두 눈으로 거리를 재는 스테레오 시각도, 카메라 같은 정밀 렌즈도 없다. 몸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에도 못 미치고 신경세포 수는 사람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이 동물이, 어떻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먹잇감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정확히 도약할까. 답은 뜻밖에도 “일부러 초점을 흐리게 보는” 눈 구조에 있다.

깡충거미 얼굴 초근접 사진. 청록색으로 광택나는 커다란 주안 두 개가 화면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깡충거미(Marpissa radiata)의 주안(主眼). 청록색으로 광택나는 이 두 눈이 사냥감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핵심 기관이다. 사진: Lukas Jonaitis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눈이 여덟 개, 그런데 뇌는 손톱보다도 작다

깡충거미가 속한 깡충거미과(Salticidae)는 거미 중에서도 가장 큰 과로, 전체 거미 종의 약 13%에 해당하는 약 7,000종이 기재되어 있다. 이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얼굴에 배열된 여덟 개의 눈, 즉 네 쌍의 눈이다. 앞쪽 정면에 자리한 크고 이동 가능한 한 쌍이 주안(anterior median eyes, AME)이고, 그 주위를 둘러싼 나머지 세 쌍—전측안, 후중안, 후측안—은 부안(副眼)이다. 부안들은 넓은 화각으로 주변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경보 장치 역할을 하고, 물체를 또렷이 식별하고 거리를 재는 정밀한 작업은 오롯이 주안 두 개가 맡는다.

여기서 몸집 얘기를 짚어둘 필요가 있다. 깡충거미의 몸길이는 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아주 작다. 신경계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거미는 몸집이 작을수록 몸 전체 부피에서 중추신경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있어, 초소형 종에서는 신경계가 몸통 안쪽 공간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다리 쪽까지 뻗어나가는 경우도 보고된다. 그럼에도 깡충거미는 먹이를 몰래 추적하고, 우회로를 계산하고, 정밀하게 도약하는 등 복잡한 사냥 행동을 보인다. 위키피디아는 이런 정교한 행동이 “그토록 작은 뇌를 가진 유기체와 조화시키기 어렵다”고 서술할 정도다. 렌즈 두 개짜리 카메라도, 큰 두뇌도 없이 대체 이 거리 계산은 어디서 이루어지는 걸까.

깡충거미 한 마리가 사람 손가락 끝에 올라앉아 있다. 몸길이가 손가락 크기와 뚜렷이 대비된다.
사람 손가락에 올라앉은 깡충거미(Plexippus petersi). 몸길이가 손가락 굵기에도 못 미친다. 사진: Basile Mori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망막 네 겹, 그리고 “일부러 흐리게 보는” 층

2012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나가타 등(Nagata et al.)의 연구가 이 수수께끼의 핵심 답을 내놓았다. 깡충거미의 주안은 사람의 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망막이 앞뒤로 네 겹 쌓여 있는데, 각 층에는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이 초점을 맺도록 렌즈가 설계되어 있다. 빛의 파장에 따라 렌즈를 통과한 뒤 초점이 맺히는 위치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색수차(色收差, chromatic aberration)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눈이라면 결점으로 취급될 이 색수차를, 깡충거미의 눈은 오히려 거리 측정의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가장 안쪽(가장 깊은) 층과 그 바로 앞층, 두 층의 광수용체 세포는 모두 녹색에 민감한 동일한 시각색소를 담고 있다. 그런데 렌즈의 광학 설계상 녹색 빛은 오직 가장 깊은 층에만 정확히 초점이 맺히도록 되어 있다. 그 앞층은 같은 녹색 정보를 받으면서도 초점이 맞지 않아 상이 늘 흐릿하게 맺힌다. 언뜻 설계 결함처럼 보이는 이 “상시 흐림” 상태가 실은 핵심 정보원이다. 물체가 가까이 있을수록, 혹은 멀리 있을수록 두 층 사이에 나타나는 흐림의 정도(디포커스, defocus)가 광학 법칙에 따라 일정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두 층의 상을 비교하기만 하면 별도의 스테레오 시각이나 정밀 렌즈 없이도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카메라 두 대로 삼각측량을 하듯 거리를 재는 것과 달리, 깡충거미는 카메라 한 대 안에 “선명한 층”과 “일부러 흐리게 설계된 층”을 나란히 두고 그 차이만으로 깊이를 읽어내는 셈이다. 이후 발표된 후속 연구들은 시각색소의 흡수 스펙트럼 특성이 이 디포커스를 만들어내는 물리적 근거를 정리하고, 흐림의 정도와 실제 거리를 잇는 계산 모델까지 제시하며 이 가설을 뒷받침했다.

깡충거미과 머리 정면 모식도. 맨 아래 큰 원 두 개가 주안, 그 옆 중간 크기 원 두 개가 전측안, 위쪽 작은 점 두 개가 후중안, 뒤쪽 작은 원 두 개가 후측안을 나타낸다.
깡충거미과의 눈 배치 모식도. 가장 아래 큰 두 눈이 거리 계산을 담당하는 주안(AME)이고, 나머지 세 쌍(전측안 ALE·후중안 PME·후측안 PLE)은 넓은 시야로 주변을 감시한다. 그림: Peter coxhea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원리는 “거미가 색을 잘 구별한다”는 색각(色覺)의 문제와는 다르다. 깡충거미의 주안이 활용하는 것은 여러 색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능력이 아니라, 렌즈가 파장마다 초점을 다르게 맺는다는 광학적 성질 자체다. 즉 이 눈은 “색을 본다”기보다 “색이 만들어내는 흐림의 차이를 잰다”에 가깝다. 색을 구별하는 능력과 거리를 재는 능력은 전혀 다른 과제이며, 깡충거미의 이야기는 후자에 관한 것이다.

빛의 색을 바꿔 거미를 속이다

이 가설이 단순한 해부학적 추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행동실험으로 입증됐다. 연구진은 깡충거미에게 비추는 조명의 파장을 인위적으로 바꿔가며 거미가 실제로 뛰는 거리를 관찰했다. 색수차 기반 디포커스 메커니즘이 사실이라면, 조명 파장이 달라질 경우 같은 물리적 거리라도 망막에 맺히는 흐림의 정도가 달라지므로 거미의 거리 판단에도 체계적인 오차가 생겨야 한다. 실험 결과는 정확히 그 예측과 일치했다. 조명의 파장을 바꾸자 거미의 도약 거리 판단이 함께 달라진 것이다. 렌즈나 신경계를 직접 들여다보지 않고도, 빛의 색깔 하나로 거미의 “눈금자”를 흔들어 그 작동 원리를 검증해낸 셈이다.

스토킹에서 안전줄까지, 정교하게 맞물린 사냥 행동

이렇게 계산된 거리 정보는 곧바로 사냥 행동으로 이어진다. 깡충거미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곧장 달려들지 않고 조심스럽게 몰래 접근(스토킹)한 뒤, 도약이 가능한 거리에 들어서면 정밀하게 뛴다. 그리고 뛰기 직전에는 반드시 명주실 한 가닥, 즉 안전줄(드래그라인)을 몸에 붙여 놓는다. 도약이 빗나가거나 착지에 실패해도 이 실이 추락을 막아주는 보험 역할을 한다.

흑백 줄무늬의 얼룩말깡충거미가 평평한 표면 위에서 포획한 곤충을 붙잡고 있다.
얼룩말깡충거미(Salticus scenicus)가 사냥에 성공한 모습. 스토킹과 정밀 도약, 안전줄이 맞물려 이런 결과로 이어진다. 사진: Rhododendrite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정확한 배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람 뇌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신경 자원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스테레오 시각을 구현하려면 두 눈에서 들어온 상을 정합하는 복잡한 신경 회로가 필요하지만, 색수차 기반 디포커스 방식은 렌즈의 물리적 설계 자체가 계산의 상당 부분을 대신 떠맡는다. 정보처리의 부담을 신경계가 아니라 광학 구조로 옮겨놓은 이 방식은, 작은 몸집 안에 제한된 자원으로도 정밀한 기능을 구현해야 하는 과제에 대한 대단히 효율적인 해법이다. 실제로 이 원리에서 영감을 얻어, 유럽우주국(ESA)은 소형 우주선의 저전력 거리 센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단 한 번의 촬영만으로 깊이를 측정하는 초소형 3차원 카메라를 메타렌즈 기술로 구현하기도 했다. 밀리미터 크기의 눈에 담긴 원리가 우주선과 카메라 설계에까지 응용되고 있는 셈이다.

검은색 깡충거미 한 마리가 초록 잎 위에서 다리를 세운 경계 자세로 서 있다.
잎 위에서 경계 자세를 취한 깡충거미. 작은 몸집이지만 정교한 거리 감각을 갖추고 있다. 사진: KKPCW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또 다른 깡충거미 종의 얼굴을 포커스 스태킹 기법으로 선명하게 촬영한 매크로 사진. 검은 배경에 회갈색 털과 큰 눈이 뚜렷하다.
또 다른 깡충거미 종의 얼굴 클로즈업. 종은 다르지만 거리를 계산하는 눈 구조의 기본 설계는 공유한다. 사진: USGS Bee Inventory and Monitoring Lab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작은 눈 속의 정교한 설계

큰 두뇌도, 두 대의 카메라도 없이 색이 만들어내는 흐림 하나로 거리를 읽어내는 이 눈 구조는, 정교하게 설계된 창조물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풀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렌즈의 물리적 성질 자체를 계산 장치로 삼아 제한된 신경 자원의 부담을 덜어내는 이 설계 원리는, 크기와 효율이 함께 요구되는 자연의 과제 앞에서 얼마나 정밀한 해법이 가능한지를 손끝보다 작은 몸집 안에서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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