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9일,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을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그보다 13년 앞선 1994년 8월, 통화 기능과 이메일·팩스, 터치스크린 앱을 한 기기에 합친 상용 제품이 이미 매장에 놓여 있었다. IBM과 미쓰비시전기가 만들고 BellSouth Cellular가 판매한 ‘IBM 사이먼(Simon)’이다. 이 13년이라는 숫자는 두 제품의 출시 연도 차(2007년-1994년)에서 나온 것이다. 월 단위까지 정확히 따지면 사이먼의 1994년 8월 출시부터 아이폰의 2007년 6월 29일 미국 출시까지는 약 12년 10개월이 흐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사이먼이 팔리던 시절에는 이 부류의 기기를 가리키는 ‘스마트폰’이라는 말 자체가 세상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13년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이먼, 손안에 사무실을 담다
사이먼의 출발점은 1990년대 초 IBM 엔지니어 프랭크 카노바가 이끈 작은 실험이었다. 카노바는 상사 폴 머기(Paul C. Mugge)가 이끌던 ‘더 작고 가벼운 제품’ 개발팀 소속이었고, PCMCIA 카드 기술을 다루던 동료 제리 메르켈과 함께 무선 통신 칩을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기기로 구현하는 구상을 발전시켰다. 이 아이디어는 1992년 11월 라스베이거스 COMDEX 전시회에서 코드명 ‘Sweetspot'(내부적으로는 ‘Angler’라고도 불렸다) 시제품으로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정식 상용화까지는 그로부터도 2년 가까이 더 걸렸다. 원래 1994년 5월 출시가 목표였지만 소프트웨어 문제로 늦춰졌고, 실제로는 1994년 8월에야 BellSouth Cellular를 통해 미국 15개 주 서비스 지역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통화 기능과 앱, 터치스크린을 한 기기에 합친 최초의 상용 제품으로 흔히 꼽히는 이 기기의 실제 사양은 다음과 같다.
- 가격: 2년 약정 시 899달러, 약정 없이 1,099달러 (2025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945~2,378달러)
- 무게: 약 510g, 크기 약 200×64×38mm
- 배터리: 통화 모드 기준 약 1시간 — 상업적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 판매량: 약 6개월간 약 5만 대

사이먼은 4.5인치 저항식(resistive) 터치스크린을 탑재해 손가락이나 스타일러스로 화면을 눌러 조작했고, 팩스와 이메일, 셀룰러 페이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주소록·캘린더·일정관리·계산기·세계시각·손글씨 메모장 등 11개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시장과 언론은 이 기기를 ‘스마트폰’이 아니라 ‘셀룰러 통신 기능을 갖춘 PDA’로 분류했다. 사이먼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 그 이름 자체가 아직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는 말은 아직 없었다
사이먼이 팔리던 1994년에는 이 범주의 기기를 부르는 통일된 이름이 없었다. 그 다음 이정표는 1996년,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였다. 1996년 CeBIT에서 발표돼 그해 8월 15일 출시된 이 기기는 풀 쿼티 키보드와 640×200 흑백 LCD 화면을 클램셸 형태 본체에 담고, GSM 전화 기능에 이메일·팩스·웹브라우저까지 통합했다. 인텔 24MHz i386 프로세서와 8MB 메모리를 탑재했고, 영국 출시가는 1,000파운드, 무게는 397g이었다.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처음 상업적으로 등장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97년이다. 에릭슨이 코드명 ‘Penelope’로 부르던 시제품 GS 88을 공개하면서, 포장 박스에 처음으로 ‘Smart Phone’이라는 문구를 인쇄했다 — 마케팅 담당자 매츠 바르바스텐이 제안한 표현이었다. 터치스크린과 쿼티 키보드, 스타일러스를 갖춘 이 기기는 그러나 실제로 상용 출시되지 못했다. 에릭슨·모토로라·노키아가 손잡고 Symbian 진영을 재편하는 전략적 결정 속에서 제품화가 중단됐고, 시제품은 약 200대 제작되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제로 상용 마케팅·판매된 최초의 휴대전화는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난 2000년에야 나왔다. 에릭슨 R380이다. 1999년 2월 19일 CeBIT에서 공개돼 2000년 9월경 출시된 이 기기는 Symbian을 최초로 탑재했지만 별도 앱 설치는 불가능했다. 사이먼이 등장한 1994년으로부터 3년 뒤에야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처음 상업적으로 쓰였고, 다시 3년이 더 지나서야 그 이름이 실제 판매 현장에 등장한 셈이다.

아이폰이 실제로 바꾼 것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Macworld 무대에서 아이폰을 공개하며 “전화, 터치 컨트롤의 아이팟,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라는 세 기기를 하나로 합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미국 출시는 그해 6월 29일이었다.

아이폰이 이전 기기들과 갈라서는 지점은 ‘최초로 통화와 터치스크린을 결합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자리는 이미 13년 전 사이먼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폰의 실제 설계상 전환점은 3중 레이어 정전식(capacitive) 멀티터치 스크린이었다. 사이먼과 노키아 9000이 채택했던 저항식 스타일러스 방식과 달리, 손가락만으로 스크롤과 탭 같은 복잡한 제스처를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애플은 이를 두고 “마우스 이후 가장 혁신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표현했다.
흔히 ‘아이폰은 처음부터 앱 생태계를 갖췄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앱스토어는 아이폰 출시 1년 뒤인 2008년 7월 10일에야 문을 열었고, 그 시점 등록된 앱은 500개(약 25%가 무료)였다. 출시 첫 72시간 만에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넘어섰지만, 2007년 아이폰이 처음 팔릴 당시에는 서드파티 앱스토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폰의 정확한 위치는 ‘스마트폰의 발명’이 아니라, 정전식 멀티터치라는 새로운 입력 방식과 이후의 앱 생태계로 스마트폰을 대중화시킨 전환점이라는 데 있다.
13년, 설계가 쌓여 온 시간

1994년 사이먼, 1996년 노키아 9000, 1997년 이름만 얻은 에릭슨 GS 88, 2000년 그 이름을 달고 처음 팔린 에릭슨 R380, 그리고 2007년 아이폰까지 — 13년은 어느 한 순간의 발명이 아니라 하드웨어와 입력 방식, 그리고 이름 자체가 저마다 따로 다듬어져 온 시간이었다. 사이먼이 ‘스마트폰’이라 불리지 못한 것은 성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이름을 붙일 설계 언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역사는 어느 한 기기가 시장을 정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의 시대에 정교하게 설계된 부품과 개념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 온 축적의 기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