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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열매는 왜 씨를 빼고 과육만 약으로 쓸까? 약전 규격과 옛 기록으로 본 답

늦가을 산자락, 잎이 다 진 가지에 길쭉하고 붉은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립니다. 산수유(山茱萸, Cornus officinalis)입니다. 이 열매가 약재가 될 때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 하나 따라붙습니다. 붉은 과육만 발라 말리고, 가운데 단단한 씨는 골라내는 일입니다. 기계가 없던 시절 전남 구례 산동마을에서는 아이와 아낙들이 앞니로 과육을 까내다 이가 닳았다는 이야기까지 전합니다. 같은 열매에서 살은 약이 되고 씨는 버려지는 셈입니다. 왜 하필 씨를 뺄까요? 약재 규격, 옛 본초서의 설명, 과육과 씨를 비교한 현대 연구를 차례로 살펴보고,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질문도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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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사이 가지에 길쭉하고 윤기 나는 붉은 산수유 열매 여러 개가 매달린 모습
11월에 붉게 익은 산수유 열매. 길쭉한 핵과마다 단단한 핵이 하나씩 들어 있습니다(2011년 11월). 사진: Alpsdake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흔히 ‘씨’라 부르는 것은 단단한 핵입니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Cornaceae)의 낙엽성 관목 또는 나무입니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는데, 꽃이 먼저 피는 까닭은 산수유는 왜 잎보다 꽃이 먼저 필까?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가을의 열매입니다.

산수유 열매는 길이 1.2~1.8 cm쯤 되는 길쭉한 핵과(drupe)로, 익으면 붉거나 자줏빛 붉은색이 됩니다(Trees and Shrubs Online). 핵과는 복숭아나 대추처럼 얇은 겉껍질과 물기 많은 과육 안에 단단하게 굳은 속껍질, 곧 핵이 들어 있고 그 핵 안에 씨가 있는 열매입니다(위키백과 ‘Drupe’). 산수유를 손질할 때 ‘씨를 뺀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단단한 핵을 통째로 골라낸다는 뜻입니다. 이 글에서도 일상 표현대로 ‘씨’라고 부르되, 필요한 곳에서는 ‘핵’이라고 구분해 쓰겠습니다.

산수유 열매 전체, 세로로 자른 단면의 겉껍질·과육·핵, 씨를 뺀 과육 조각과 골라낸 핵을 나란히 그린 삽화
산수유 열매의 구조. 겉껍질과 과육 안에 단단한 핵이 있고, 약재는 이 핵을 빼고 과육만 말려 만듭니다. 핵의 크기 비율과 표면은 단순하게 그렸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핵과의 구조와 약재 손질을 설명하려고 제작

첫째 답: 약재 규격이 ‘씨를 뺀 과육’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답은 규격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약전은 산수유를 “산수유나무 Cornus officinalis의 잘 익은 열매로서 씨를 제거한 것”으로 정의합니다. 약재로 인정받으려면 지표 성분인 로가닌(loganin)과 모로니시드(morroniside)를 합쳐 1.2% 이상 함유해야 하고, 겉모습 설명에도 “과육에는 씨를 빼낸 자국인 틈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대한민국약전). 다시 말해 씨까지 든 열매는 처음부터 ‘산수유’라는 약재가 아닌 셈입니다.

중국 약전도 같은 정의를 씁니다. 산수유(山茱萸)는 “말린 잘 익은 과육(干燥成熟果肉)”이며,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열매가 붉어지면 따서 약한 불에 쬐거나 끓는 물에 잠깐 데친 뒤 바로 핵을 빼고 말린다고 가공법까지 정해 두었습니다(及时除去果核,干燥). 섞여 든 핵과 열매꼭지 같은 이물은 3% 이하로 제한합니다(杂质(果核、果梗)不得过3%)(ShennongAlpha, 중국약전 2020 수록본). 홍콩의 생약 규격도 끓는 물에 몇 분 담갔다가 핵을 빼고 말린 과육을 약재로 정의하고, 이물을 2.0% 이하로 제한합니다(홍콩 중의약규관판공실).

얇고 쭈글쭈글하게 마른 붉은 산수유 열매 조각이 빽빽하게 쌓인 모습
말린 산수유 열매(파일 설명: 중국 허난성 난양산). 붉은 열매가 얇고 쭈글쭈글한 조각처럼 말라 있습니다(2024년 7월). 사진: Fumikas Sagisavas · CC0 · 출처 Wikimedia Commons

규격서에는 맛도 적혀 있습니다. 대한민국약전은 산수유의 맛을 “시고 약간 달다”고 적고, 홍콩 규격은 “시고 떫으며 약간 쓰다”고 적습니다. 산수유 열매에서는 실제로 떫은맛을 내는 성분인 타닌이 검출됩니다(Czerwińska & Melzig 2018).

둘째 답: 옛 본초서는 ‘씨는 정(精)을 빠져나가게 한다’고 적었습니다

규격이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옛 본초서가 나옵니다. 명나라 이시진이 엮은 『본초강목』은 산수유 손질법(修治) 항목에 『뇌공포자론』을 쓴 뇌효(雷斅)의 설명을 이렇게 옮겨 두었습니다.

凡使以酒潤,去核取皮,一斤只取四兩以來,緩火熬乾方用。能壯元氣,秘精。其核能滑精,不可服。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쓸 때는 술에 적셔 핵을 빼고 살을 취하는데, 한 근에서 겨우 넉 냥 남짓을 얻는다. 약한 불로 말려 쓴다. 원기를 북돋우고 정(精)을 갈무리한다. 그 핵은 정을 빠져나가게 하니 먹어서는 안 된다.”(『본초강목』 木部)

한의학에서 정(精)은 몸을 이루고 지탱하는 근본 물질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과육은 이것을 붙잡아 두고(秘精), 씨는 반대로 새어 나가게 한다(滑精)는 것이 옛 설명입니다. 같은 열매의 두 부분이 정반대로 작용한다고 보았으니, 약으로 쓸 때 씨를 빼는 것은 이 이론 안에서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습니다. 한 근(열여섯 냥)에서 넉 냥 남짓, 곧 4분의 1 정도만 남는다는 기록은 손질이 그만큼 품이 드는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것은 술에 적셔 손질하고 말린 뒤의 수율이어서, 씨가 열매 무게의 4분의 3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본초강목』 항목에는 반대 의견도 실려 있습니다. 남북조 시대의 도홍경(陶弘景)은 산수유가 “마르면 껍질이 매우 얇으니 핵과 함께 써야 한다(既乾,皮甚薄,當合核用也)”고 했습니다(『본초강목』 木部). 씨를 뺄지 남길지는 옛 의가들 사이에서도 한 가지로 정해진 문제가 아니었고, 오늘날의 약전은 씨를 빼는 쪽을 규격으로 삼은 것입니다.

여기서 선을 분명히 그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씨가 정을 빠져나가게 한다’는 것은 전통 의학 이론 안의 설명이지, 씨에 독성이 있다는 현대 독성학의 결론이 아닙니다. 이번에 확인한 규격서들도 씨를 빼는 이유를 독성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셋째 답: 현대 분석으로 보면 과육과 씨는 성분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과육과 씨는 실제로 다른 물질일까요? 산수유 열매에서는 로가닌·모로니시드·코르누사이드 같은 이리도이드 배당체와 안토시아닌, 타닌 등이 보고되었습니다(Czerwińska & Melzig 2018). 약전이 품질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 가운데 로가닌과 모로니시드입니다.

2024년 중국 연구진은 같은 나무에서 같은 때 딴 열매를 과육과 씨로 나눠, 질량분석으로 2차 대사물을 비교했습니다. 모두 499종을 찾았는데, 그중 77종이 과육과 씨를 뚜렷이 가르는 핵심 차이 물질이었습니다. 씨는 총페놀 함량이 더 높았고 시험관 실험의 항산화 활성 등도 더 강했으며, 과육은 플라보노이드가 더 많았습니다. 연구진은 처방에서 씨를 뺀 산수유와 씨째 쓴 산수유를 구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Zhang 외 2024, Molecules).

이 결과는 ‘과육과 씨는 서로 다른 재료’라는 점을 현대적으로 보여 줍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사람 몸에 더 좋거나 해롭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시험관 실험의 활성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효과와 다르고, 이 연구는 씨를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안전성 자료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산수유 씨의 섭취 안전성과 적정량은 이 글에서 확인한 자료로는 판단할 수 없는 별개의 질문으로 남습니다.

구례 산동마을, 앞니로 과육을 까던 품앗이

씨를 빼는 일은 책 속 규정만이 아니라 산수유 마을의 살림이기도 했습니다. 농촌진흥청 웹진은 구례 산동면의 옛 풍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예전에는 어린이와 아녀자들이 앞니로 산수유 과육만 까내 그릇에 뱉는 식으로 품앗이를 했고, 그러다 보니 앞니가 많이 닳아 산동 출신 처녀는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온돌방에 널어 수분을 60% 이상 날린 뒤 과육만 남겨 다시 완전히 말렸고, 지금은 열매를 따고 말리고 씨와 과육을 나누는 과정에 기계가 들어왔습니다(농촌진흥청).

구례에는 천 년 전 중국 산둥성의 처녀가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산수유를 가지고 시집와 심었다는 전설도 전합니다(농촌진흥청). 구례의 산수유 농업은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고, 지정 당시 2012년 기준 전국 생산량의 53%를 차지했습니다(아주경제). 한 알 한 알 씨를 빼던 손길이 마을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봄에 헷갈리는 노란 꽃, 생강나무와 구별하기

산수유를 열매가 아닌 꽃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른 봄 산수유와 가장 헷갈리는 나무는 녹나무과의 생강나무(Lindera obtusiloba)입니다. 둘 다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워 멀리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구별할 수 있습니다.

가지 끝에서 가느다란 꽃자루마다 작은 노란 꽃이 달려 우산살처럼 퍼진 산수유 꽃송이
산수유 꽃. 꽃마다 가느다란 꽃자루가 있어 꽃송이가 우산살처럼 벌어집니다(2013년 3월). 사진: 松岡明芳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먼저 꽃자루를 보십시오. 산수유는 꽃마다 자루가 있어 꽃송이가 우산살처럼 벌어지지만, 생강나무 꽃은 자루 없이 가지에 바짝 붙어 뭉쳐 핍니다. 줄기도 다릅니다. 산수유 줄기는 껍질이 벗겨져 지저분해 보이고 생강나무 줄기는 깨끗한 편입니다(서울시). 가장 확실한 단서는 냄새입니다. 생강나무 가지나 잎을 비비면 생강 같은 알싸한 냄새가 나고, 이름도 여기서 왔습니다(위키백과). 산수유에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이 단서들은 나무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며, 어느 나무의 어떤 부위가 먹어도 안전한지를 판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가지에 바짝 붙어 둥글게 뭉쳐 핀 연노란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 꽃. 꽃자루 없이 가지에 바짝 붙어 둥글게 뭉쳐 핍니다(일본 기후현 노코산, 2009년 3월). 사진: Alpsdake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붉은 열매를 볼 때, 종과 부위를 함께 보기

산수유 열매가 귀한 약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을과 겨울에 눈에 띄는 다른 붉은 열매도 비슷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붉은 열매라는 겉모습만으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주목속(Taxus) 나무가 좋은 예입니다. 컵처럼 생긴 붉은 가종피가 씨를 감싸는데, 미국 국립독극물센터(National Capital Poison Center)는 주목의 씨와 바늘잎을 독성 부위로 설명하고 열매를 먹은 어린이의 중독 사례도 소개합니다(Poison Control). 산수유 약재가 과육을 고르고 씨를 빼듯, 주목에서도 붉은 살과 씨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붉은 살에 대한 설명을 씨가 든 열매 전체를 먹어도 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늘잎 사이에 가운데가 뚫린 컵 모양 붉은 가종피가 여러 개 달린 주목 가지
주목(Taxus cuspidata)의 붉은 가종피. 컵처럼 열린 가종피 가운데로 씨가 보입니다. 주목은 씨와 잎이 독성 부위입니다(일본 료하쿠 산지, 2011년 10월). 사진: Alpsdake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남천(Nandina domestica)도 겨울까지 붉은 열매를 다는 관상수입니다. 같은 센터는 남천의 시안생성 배당체가 고양이·개·새·가축에게 독성을 보인다고 설명하는 한편,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비독성으로 분류하되 드물게 구토나 복통 같은 위장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구분합니다. 그렇다고 익은 열매를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며, 이 자료는 모르는 야외 열매를 먹지 말라고 권합니다(Poison Control).

짙은 초록 잎 사이로 작고 둥근 붉은 남천 열매가 송이송이 달린 모습
남천의 붉은 열매. 겨울까지 가지에 남는 관상수 열매입니다(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시, 2022년 1월). 사진: 小石川人晃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정리: 씨를 빼는 이유와 아직 모르는 것

산수유 약재에 씨가 없는 이유는 세 겹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약전이 약재를 처음부터 ‘씨를 뺀 과육’으로 정의하고 있고, 그 정의의 뿌리에는 ‘과육은 정을 갈무리하고 씨는 정을 빠져나가게 한다’는 옛 본초서의 설명이 있으며, 현대 분석은 과육과 씨가 실제로 성분이 다른 재료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반면 씨가 독이어서 뺀다는 근거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에 없고, 씨를 먹어도 되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작은 열매 하나에도 겉껍질과 과육, 단단한 핵과 씨가 정교하게 겹겹이 짜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구조를 오래 관찰하며 쓰임을 구분해 왔고, 오늘의 연구는 그 구분을 다른 언어로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아직 질문으로 남았는지를 나누어 보는 것도 창조 세계를 배우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정정 · 2026-10-02 캡션과 다른 사진 두 장(붉은 열매로 소개한 잎 사진, 노란 꽃으로 소개한 열매 사진)과 대표 이미지를 실제 피사체에 맞는 사진으로 바꾸었습니다. 제목의 질문에 답하도록 대한민국약전·중국약전·홍콩 규격의 정의, 『본초강목』의 손질법 기록, 과육과 씨를 비교한 2024년 연구, 구례의 씨 빼기 기록을 더했고,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맛·효능 서술과 과장된 표현을 고쳤습니다.

정정 · 2026-09-21 산수유 씨의 안전성 미확인과 약재 규격을 구분하고, 생강나무·주목·남천의 포괄적 무독 표현을 고쳤습니다. 주목과 생강나무 사진의 실제 피사체도 바로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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