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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 갈라: 50달러 심야 만찬은 어떻게 ‘패션계의 밤’이 되었나

해마다 5월 첫째 월요일이 되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5번가의 계단이 세계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선다. 한 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의상, 초청받은 700명 안팎의 배우와 가수와 디자이너, 그리고 ‘패션계의 밤’이라는 별명. 오늘날 멧 갈라(Met Gala)는 그렇게 기억된다. 그러나 이 행사가 처음부터 화려한 봄밤의 스펙터클이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1948년 12월, 미술관도 아닌 어느 호텔에서 열린 티켓 50달러짜리 심야 만찬이었다. ‘5월 첫째 월요일’이라는 상징적 날짜조차 2005년에야 굳어졌다. 자선 만찬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 진짜 연대기를 따라가 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5번가 정면 외관
멧 갈라가 해마다 열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5번가 정면과 계단. 사진: Arad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의 모습
1995년부터 멧 갈라를 이끌며 행사를 세계적 스펙터클로 재편한 애나 윈투어. 사진: Bryan Berlin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1948년, 미술관 밖에서 시작된 심야 만찬

멧 갈라의 공식 이름은 ‘코스튬 인스티튜트 베네핏(Costume Institute Benefit)’, 곧 코스튬 인스티튜트를 위한 기금 모금 만찬이다. 이 행사는 1948년, 패션 홍보인 엘리너 램버트(Eleanor Lambert)가 기획했다. 다만 램버트가 홀로 창설했다는 서술은 정확하지 않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백화점 로드 앤드 테일러(Lord & Taylor)의 사장 도로시 셰이버(Dorothy Shaver)를 공동 조직자로 명시한다(브리태니커).

첫 행사는 ‘심야 만찬(midnight supper)’ 형식이었고, 티켓 값은 50달러였다(뉴스위크). 2021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900달러 정도다. 사람들은 이 자리를 ‘올해의 파티(Party of the Year)’라고 불렀다. 참석자는 뉴욕 상류층과 패션 업계 인사가 중심이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초기 20여 년(1948~1971) 동안 이 만찬은 미술관 안에서 열리지 않았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레인보우 룸, 센트럴 파크 같은 뉴욕 사교계의 장소를 옮겨 다녔다. 최초 개최도 화창한 봄이 아니라 1948년 12월의 겨울밤이었다(NBC). 오늘날의 ‘5월 첫째 월요일’과는 시기부터 달랐던 셈이다.

왜 하필 ‘모금’ 만찬이었나

이 행사가 처음부터 자선 만찬이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전신인 ‘의상예술관(Museum of Costume Art)’은 1937년 아이린 루이손(Irene Lewisohn), 얼라인 번스타인(Aline Bernstein) 등이 설립했고, 1946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병합되었다. 램버트의 모금 만찬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48년에 시작되었다.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코스튬 인스티튜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자체 운영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유일한 큐레이터 부서다(브리태니커). 다른 부서와 달리 미술관의 일반 예산에 온전히 기대지 못한다는 뜻이다. 갈라가 화려한 파티 이전에 ‘모금 행사’인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티켓 값과 후원금은 전시 준비와 부서 운영으로 흘러간다.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외관
초기 멧 갈라가 열리던 뉴욕의 사교 공간 가운데 하나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사진: Joseph Pennell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다이애나 브릴랜드와 ‘테마’의 발명

만찬이 오늘날과 같은 문화 이벤트의 성격을 얻은 것은 1970년대다. 보그(Vogue)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난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가 1972년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특별고문(special consultant)으로 합류하면서부터다. 이 무렵부터 행사가 미술관 건물 안에서 열리기 시작했다(NBC).

브릴랜드는 파티에 ‘테마’라는 개념을 들여왔다. 1973년, 그해 열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회고전과 짝을 이룬 ‘발렌시아가의 세계(The World of Balenciaga)’가 최초의 테마 갈라로 기록된다. 이후 파티의 테마를 그해 전시와 일치시키고, 갤러리에 테마에 맞춘 향수를 분사하는 등 화려한 연출이 더해졌다.

브릴랜드가 뿌린 씨앗은 오래 남았다. 2013년 ‘펑크: 카오스에서 쿠튀르로’, 2015년 ‘중국: 거울을 통해’, 2018년 ‘천상의 몸: 패션과 가톨릭적 상상’, 2019년 ‘캠프: 패션에 관한 노트’, 2022년 ‘도금 시대의 화려함’ 같은 이후의 화제작들은 모두 그해 전시와 짝을 이룬 테마라는 형식을 물려받은 것이다.

브릴랜드는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행사에 관여했다. 유명 인사들이 모여드는 ‘문화 이벤트’로서 멧 갈라의 정체성이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다만 이때까지도 오늘날 같은 세계적 스펙터클과는 규모가 달랐다.

박물관에 전시된 발렌시아가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
1973년 최초의 테마 갈라 '발렌시아가의 세계'의 소재가 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오트 쿠튀르. 사진: Artistosteles · CC BY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애나 윈투어, 만찬을 스펙터클로 바꾸다

지금 우리가 아는 멧 갈라의 모습은 대체로 애나 윈투어(Anna Wintour)의 시대에 만들어졌다. 보그 편집장인 윈투어는 1995년 갈라의 의장(chair)을 맡았다. 그의 이름을 딴 ‘애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가 미술관 안에 있을 만큼, 오늘날 갈라는 윈투어와 떼어 놓고 말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사실은 윈투어의 취임 초기까지도 갈라가 여전히 겨울 행사였다는 점이다. 그가 공동의장으로 함께한 첫 갈라는 1995년 12월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였다(위키백과). 이후 윈투어는 거의 매년 의장 또는 공동의장을 맡았는데, 1996년(리즈 틸버리스 의장)과 1998년은 예외였다(뉴스위크).

윈투어 시대의 핵심은 통제였다. 그는 연 650~700명에 이르는 초청 명단을 직접 관리하며, 자선 만찬을 셀러브리티 중심의 세계적 볼거리로 재편했다. ‘패션계의 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파티’라는 위상은 대체로 1995년 이후, 특히 2000년대에 형성된 것이다. 이런 수식은 사실의 단정이라기보다 그렇게 ‘불린다’는 평가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5월 첫째 월요일’과 몸집의 폭발

멧 갈라를 상징하는 ‘5월 첫째 월요일’이라는 날짜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다. E!의 정리에 따르면, 이 고정 날짜는 2005년 ‘샤넬(House of Chanel)’ 전시와 함께 확립되었다(E!). 그 이전에는 12월을 비롯해 시기가 들쭉날쭉했다. 창설 이래 늘 봄에 열렸다는 서술은 사실과 다르다.

규모는 21세기 들어 가파르게 커졌다. 보도된 티켓 값만 보아도, 2009년 7,500달러에서 2019년 3만 5,000달러, 2023년 5만 달러를 거쳐 2024년 7만 5,000달러로 뛰었다. 2025년에는 7만 5,000달러로 동결되었다가, 2026년에는 개인 티켓이 10만 달러에 이르렀다(CBS). 열 명이 앉는 테이블은 35만 달러부터 시작한다(CBS). 티켓은 일반 판매 없이 초청제로만 운영된다.

모금액도 함께 불어났다. 다만 이 수치들은 언론이 보도한 추정치일 뿐, 감사받은 공식 회계가 아니라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약 900만 달러였던 모금액은 2023년 약 2,200만 달러, 2024년 약 2,600만 달러로 늘었고, 2025년에는 약 3,100만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E!). 2026년에는 다시 약 4,200만 달러로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전해진다(포춘).

물론 이 행사가 매년 거르지 않고 열린 것은 아니다. 1957년과 2000년, 2002년에는 취소되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취소, 2021년에는 9월로 연기되었다. 2026년 갈라는 5월 4일 ‘패션은 예술이다(Fashion Is Art)’라는 드레스코드로 ‘코스튬 아트(Costume Art)’ 전시와 함께 열렸고, 앞서 2025년에는 흑인 남성의 정장과 스타일을 조명한 ‘슈퍼파인: 흑인 스타일의 재단(Superfine: Tailoring Black Style)’이 주제였다.

정리하면, 오늘날의 멧 갈라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948년 램버트와 셰이버가 시작한 소박한 모금 만찬, 1970년대 브릴랜드가 더한 전시 연계 테마, 그리고 1995년 이후 윈투어가 완성한 세계적 스펙터클이다. 티켓 값과 모금액이 아무리 커졌어도, 이 행사가 코스튬 인스티튜트를 위한 기금 모금이라는 사실만은 80년 가까이 변하지 않았다. ‘패션계의 밤’이라는 화려한 별명 뒤에는, 옷을 예술로 보존하려는 한 미술관 부서의 오래된 사정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사람이 무언가를 짓고 아름답게 가꾸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더 오래된 사실이 함께 놓여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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