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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 갈라: 50달러 심야 만찬은 어떻게 10만 달러짜리 ‘패션계의 밤’이 되었나

오늘날 해마다 5월 첫째 월요일이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5번가 계단이 세계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섭니다. 디자이너가 이날을 위해 지은 옷, 초대받은 배우와 가수와 운동선수, 그리고 ‘패션계의 밤’이라는 별명. 오늘날 멧 갈라(Met Gala)는 그렇게 기억됩니다. 2026년에는 이 자리에 앉는 티켓 한 장이 10만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는 1948년, 티켓 한 장에 50달러를 받던 심야 만찬에서 시작했습니다. 명목 금액으로 2,000배가 된 셈입니다. 그사이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 남았을까요?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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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5번가 정면 외관과 계단
멧 갈라가 해마다 열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5번가 정면과 계단입니다.
사진: Arad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1948년, 미술관 밖에서 시작된 심야 만찬

멧 갈라의 정식 이름은 ‘코스튬 인스티튜트 베네핏(Costume Institute Benefit)’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의상 부서인 코스튬 인스티튜트를 위한 기금 모금 행사라는 뜻입니다. 1948년 첫 행사는 초대받은 손님이 50달러짜리 티켓을 사서 참석하는 심야 만찬(midnight supper)이었습니다. 기획자는 패션 홍보 전문가 엘리너 램버트(Eleanor Lambert)였고, 그는 이 자리에 ‘올해의 파티(Party of the Yea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

램버트 혼자 만든 행사는 아닙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뉴욕 백화점 로드 앤드 테일러(Lord & Taylor)의 사장 도로시 셰이버(Dorothy Shaver)를 첫 만찬의 공동 조직자로 적습니다. [2]

진주 목걸이를 한 도로시 셰이버의 흑백 초상 사진
로드 앤드 테일러 사장 도로시 셰이버. 램버트와 함께 첫 만찬을 조직했고, 그보다 앞서 의상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옮기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사진: 촬영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초기 만찬은 오늘날과 모습이 많이 달랐습니다. 행사는 봄이 아니라 11월이나 12월에 열렸고, 장소도 미술관이 아니었습니다. 1948년부터 1971년까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록펠러 센터의 레인보우 룸, 센트럴 파크 같은 맨해튼의 사교 명소를 옮겨 다녔습니다. 손님은 대부분 뉴욕 상류층과 패션 업계 사람들이었고, 여흥으로는 촌극과 경품 추첨, 그리고 모델들이 코스튬 인스티튜트 소장품인 옛 의상을 입고 나오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파티의 주제도 있었지만, 그해 미술관 전시와 꼭 맞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2, 3]

성조기가 걸린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파크 애비뉴 입구
뉴욕 파크 애비뉴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입구(2013년 촬영).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초기 갈라가 열린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 Hennem08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왜 하필 ‘모금’ 만찬이었을까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뿌리는 1937년 아이린 루이손(Irene Lewisohn)이 5번가에 연 ‘의상예술관(Museum of Costume Art)’입니다. 무대 의상 디자이너 얼라인 번스타인(Aline Bernstein)이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1944년 루이손이 세상을 떠나자, 도로시 셰이버가 이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옮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셰이버는 그것이 미국 패션 산업을 키울 것이라고 보았고, 뉴욕 의류 제조업자들에게서 35만 달러를 모아 이전 비용을 댔습니다. 의상예술관은 1946년 미술관에 들어가 코스튬 인스티튜트가 되었습니다. [4]

미술관 안에 들어갔다고 살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스튬 인스티튜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운영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유일한 큐레이터 부서입니다. 멧 갈라는 바로 이 부서의 일을 감당하려고 만든 행사이고, 지금도 부서의 전시와 소장품 구입, 시설 개선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재원입니다. 화려한 파티이기 전에 모금 행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 2, 7]

다이애나 브릴랜드, 파티를 전시와 짝짓다

전환점은 1970년대에 왔습니다. 보그(Vogue)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난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가 1972년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특별 고문이 되었습니다. 그해부터 갈라는 미술관 안에서 열렸습니다. 손님들은 미술관 곳곳에서 식사하고 춤을 추었고, 전시실 몇 곳은 파티 도중에도 열어 두어 전시를 둘러볼 수 있게 했습니다. [1, 2]

마네킹과 의상 사이에 서 있는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흑백 사진
197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촬영된 다이애나 브릴랜드. 1972년부터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부서의 특별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사진: Lynn Gilber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브릴랜드가 바꾼 가장 큰 것은 파티의 주제를 그해 전시와 맞춘 것입니다. 1973년 3월 ‘발렌시아가의 세계(The World of Balenciaga)’ 갈라가 그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티켓은 85달러였습니다. 브릴랜드는 전시실에 주제에 맞춘 향수를 뿌릴 만큼 화려한 연출을 더했고, 앤디 워홀이나 다이애나 로스, 셰어 같은 유명 인사들이 손님 명단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 3]

종교 조각 아래 전시된 세 마네킹. 가운데 마네킹은 금빛 후광 장식을 썼다
2018년 코스튬 인스티튜트 전시 ‘천상의 몸: 패션과 가톨릭적 상상’의 한 장면. 그해 갈라의 주제도 이 전시였습니다.
사진: Pom’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전시와 파티를 한 쌍으로 묶는 이 방식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2011년 ‘알렉산더 매퀸: 야만적 아름다움’, 2013년 ‘펑크: 카오스에서 쿠튀르로’, 2015년 ‘중국: 거울을 통해’, 2018년 ‘천상의 몸’, 2019년 ‘캠프: 패션에 관한 노트’는 모두 그해 봄에 문을 연 전시의 이름이었습니다. 갈라는 해마다 그 전시의 개막 축하 자리이기도 합니다. [3]

애나 윈투어, 만찬을 세계적 행사로 키우다

1995년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Anna Wintour)가 갈라의 공동 의장을 맡았습니다. 그해 12월의 ‘오트 쿠튀르’ 갈라가 첫 무대였고, 티켓은 1,000달러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따르면 윈투어는 그 뒤 1996년과 1998년을 빼고 줄곧 갈라를 이끌어 왔습니다. [1, 3]

선글라스를 쓴 애나 윈투어
1995년부터 멧 갈라를 이끌며 행사를 세계적 행사로 키운 애나 윈투어.
사진: Bryan Berli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윈투어 시대의 핵심은 손님 명단입니다.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모든 손님은 티켓 값을 내는 것과 별개로 윈투어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보그의 행사 담당자는 2017년 인터뷰에서 손님 수를 500명 안팎으로 줄여 친밀한 분위기를 지키려 한다고 설명했고, 가장 많았던 해의 800명은 너무 많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손님 명단은 패션과 영화, 음악을 넘어 스포츠와 기업, 소셜 미디어 인물까지 넓어졌습니다. ‘동부의 오스카’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2, 5]

윈투어의 이름은 미술관 건물에도 남았습니다. 2014년 다시 문을 연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공간에는 갈라 모금을 오래 이끈 공로를 기려 ‘애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4]

‘5월 첫째 월요일’과 커진 몸집

멧 갈라를 상징하는 날짜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까지 갈라는 대개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열렸습니다. 1999년 11월 수석 큐레이터 리처드 마틴이 세상을 떠나 이듬해 준비하던 샤넬 전시와 갈라가 취소되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2002년 제외) 4월 말에 열렸습니다. ‘5월 첫째 월요일’이 자리 잡은 것은 2005년 샤넬 전시 때부터입니다. [3, 5]

티켓 값은 이 시기에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2009년 7,500달러였던 개인 티켓은 2019년 3만 5,000달러, 2023년 5만 달러, 2024년 7만 5,000달러가 되었고, 2026년에는 1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테이블 하나는 35만 달러였습니다. [3, 7]

1948년 50달러에서 2026년 10만 달러까지 멧 갈라 개인 티켓 값을 로그 눈금으로 비교한 막대그래프
멧 갈라 개인 티켓 값의 변화. 세로축은 로그 눈금이라, 한 칸 올라갈 때마다 값이 10배가 됩니다. 물가 상승은 반영하지 않은 명목 금액입니다.
그래프: GLU 자체 제작(matplotlib) · 자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리태니커, 위키백과 멧 갈라 연표, 포춘

모금액도 함께 불었습니다. 2013년 약 900만 달러였던 모금액은 2025년 3,100만 달러로 당시 최고 기록을 세웠고, 2026년에는 약 4,200만 달러로 다시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다만 이 수치들은 언론과 미술관 관계자를 통해 알려진 금액이며, 여기서는 별도의 감사 보고서와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3, 6, 7]

가늘고 긴 조개껍데기 수백 개로 덮인 알렉산더 매퀸의 드레스 전시
2024년 전시 ‘잠자는 미녀들: 패션을 다시 깨우다’에 나온 알렉산더 매퀸의 조개껍데기 드레스(2001년 봄·여름). 그해 갈라의 주제도 이 전시였습니다.
사진: Rhododendrite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갈라가 해마다 빠짐없이 열린 것은 아닙니다. 1957년에는 열리지 않았고, 2000년에는 앞서 말한 큐레이터의 죽음으로, 2002년에는 9·11 테러 이후 복구를 존중하는 뜻에서 취소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고, 2021년에는 9월로 미뤄졌습니다. 2026년 갈라는 5월 4일 ‘코스튬 아트(Costume Art)’ 전시와 함께 열렸고, 드레스 코드는 ‘패션은 예술이다(Fashion Is Art)’였습니다. 이날 미술관은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새 전시 공간인 콩데 M. 나스트 갤러리도 처음 선보였습니다. [3, 7]

세 겹으로 쌓인 ‘패션계의 밤’

정리하면 오늘날의 멧 갈라는 세 겹으로 쌓여 있습니다. 1948년 램버트와 셰이버가 시작한 모금 만찬, 1970년대 브릴랜드가 더한 전시와의 짝짓기, 그리고 1995년 이후 윈투어가 키운 세계적 행사입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행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코스튬 인스티튜트를 위한 모금 행사라는 점입니다. 셰이버가 의류업자들에게서 모은 35만 달러는 1946년 의상 컬렉션을 미술관 안으로 들였고, 그로부터 80년 뒤인 2026년에는 같은 명목 금액이 갈라의 테이블 하나 값이 되었습니다. [4, 7] ‘패션계의 밤’이라는 화려한 별명 뒤에는, 옷을 예술로 보존하려는 한 미술관 부서의 오래된 사정이 있습니다. GLU가 믿는 관점에서 보면, 그 밑바탕에는 사람이 무언가를 짓고 아름답게 가꾸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더 오래된 사실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같은 미술관이 소장한 직물 작품이 궁금하다면 태피스트리는 어떻게 실로 그림을 그릴까?도 함께 읽어 보세요.

참고 자료

  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The Met Gala: From Midnight Suppers to Superheroes and Rihanna
  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Met Gala
  3. 위키백과(영문) — Met Gala (연도별 주제·티켓 값 연표 포함)
  4. 위키백과(영문) — Anna Wintour Costume Center
  5. E! News — ‘5월 첫째 월요일’ 날짜의 유래와 행사 운영
  6. E! News — 2025년 멧 갈라의 3,100만 달러 모금
  7. 포춘(Fortune) — 2026년 멧 갈라의 4,200만 달러 모금과 티켓·테이블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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