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월 18일 오후, 일리노이 남부의 한 마을 사람들은 지평선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깔끔한 회오리 깔때기가 아니라, 땅에 닿은 채 굴러오는 거대한 안개 덩어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땅 위에서 끓어오르는 구름”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그저 검은 벽이 다가온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이 마을에 닿기까지 남은 시간은 몇 분뿐이었습니다. 그날 해가 지기 전, 미주리·일리노이·인디애나 세 개 주에서 695명이 목숨을 잃고 2,000명 넘게 다쳤습니다. 미국 역사상 단일 토네이도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였고, 그 기록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았습니다(Wikipedia).

사진: 촬영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흔히 이 토네이도를 “세계 최악”이라 부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세계 기록은 1989년 방글라데시 다울라트푸르-사투리아 토네이도로, 세계기상기구(WMO)는 약 1,3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합니다(Wikipedia). 트라이-스테이트 토네이도(Tri-State Tornado)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토네이도”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토네이도가 이토록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앗아갔을까요. 그날의 하늘과 그 시대의 빈틈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 참사는 여러 조건이 한꺼번에 맞물린 결과였음이 드러납니다.
토네이도가 나올 것 같지 않던 봄날
그날 아침의 하늘은 격렬한 재난을 예감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날 밤에는 눈발이 날렸고, 머프스보로 근처 카본데일의 그날 최고 기온은 21도(69°F)에 그쳤으며, 오전 내내 흐리고 비가 내렸습니다(Wikipedia). 미국 기상국(Weather Bureau)이 그날 내놓은 공식 예보는 “비와 강하고 변덕스러운 바람(rains and strong shifting winds)”이 전부였습니다(NWS Heritage). 어디에도 위험을 알리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땅 위의 잔잔함과 달리 대기는 조용히 위험한 배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3월 18일 아침 7시(중부 표준시) 무렵 약 1,003hPa의 지상 저기압이 오클라호마 북동부와 아칸소 북서부 부근에 자리 잡았고, 낮 동안 미주리 남동부·일리노이 남부·인디애나 남서부를 따라 북동쪽으로 움직였습니다(NWS Paducah). 저기압 동쪽으로 뻗은 온난전선을 따라 멕시코만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북쪽으로 밀려 올라왔고, 오전에 50°F대였던 기온은 오후 1시쯤 경로 대부분에서 60°F대로 올랐습니다(NWS Paducah). 한랭전선·온난전선·건조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이른바 삼중점 바로 앞에서 거대한 슈퍼셀 뇌우가 태어났고, 상공을 덮은 따뜻한 공기층(캡핑 역전)이 주변의 다른 뇌우를 억눌러 이 폭풍 하나만이 방해받지 않고 홀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Wikipedia, Maddox 외 2013 재분석 인용).

자료: 미국 기상국(NOAA Library 소장)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세 시간 반, 세 개 주, 352킬로미터
토네이도는 오후 1시 무렵 미주리 남동부 엘링턴 북북서쪽에서 땅에 닿았고, 오후 4시 30분 무렵 인디애나 피터즈버그 남서쪽에서 흩어졌습니다. 약 3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피해를 남겼습니다. 공식 경로 길이는 352킬로미터(219마일)이며, 그중 295킬로미터(183마일) 동안 거의 일직선으로 북동쪽(북에서 동으로 69도)을 향했습니다(NWS Paducah).
치명성을 키운 큰 요인 하나는 속도였습니다. 미 국립기상청 패듀카 지청(NWS Paducah)의 정리에 따르면 평균 시속 약 100킬로미터(62mph)로 움직였고, 고럼과 머프스보로 사이에서는 시속 117킬로미터(73mph)에 이르렀습니다. 기상학적 재분석(Maddox 외, 2013)은 전체 평균을 시속 약 95킬로미터(59mph)로 보았습니다(Wikipedia). 어느 값을 따르든 시속 100킬로미터 안팎으로 달려드는 폭풍이었습니다. 피해 폭은 평균 약 1.2킬로미터(0.75마일)였고, 일리노이 해밀턴 카운티의 매클린스버러 남쪽에서는 2.4킬로미터(1.5마일)를 넘었습니다(Wikipedia). 당시에는 공식 등급 제도가 없었지만, 남겨진 파괴의 정도로 볼 때 후지타 척도의 최상단인 F5에 해당한다고 널리 받아들여집니다(Wikipedia). 후지타 척도 자체가 풍속을 잰 값이 아니라 피해를 보고 풍속을 거꾸로 추정하는 척도라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NWS Norman).

지도: John W. Wilson·Stanley A. Changnon Jr., 『Illinois Tornadoes』(일리노이 주 수자원조사국, 1971), 미 국립기상청 게시본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다만 “219마일을 하나의 토네이도가 끊김 없이 주파했다”는 서술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1925년의 피해 조사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습니다. 항공 조사도 레이더도 없었고, 조사관들은 토네이도가 내내 땅에 붙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NWS Heritage). 그래서 2000년대 초 연구진이 당시 신문과 사진, 생존자 증언을 모아 경로 전체를 다시 그렸습니다. 2013년에 발표된 이 재분석은 피해 흔적이 이어진 전체 길이를 378킬로미터(235마일)로 늘려 잡았지만, 그 안에서 1.6킬로미터 이상 비어 있는 틈 32곳도 찾아냈습니다. 경로의 처음과 끝은 별개의 토네이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고, 미주리 매디슨 카운티 중부에서 인디애나 파이크 카운티까지 280킬로미터(174마일)는 하나의 토네이도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목격담이 가장 촘촘한 볼린저 카운티 중부부터 243킬로미터(151마일)는 연속된 경로로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Johns 외 2013). 가장 보수적인 151마일만 쳐도 2021년 서부 켄터키 토네이도(165마일)에 이어 미국 기록상 두 번째로 긴 경로입니다(Wikipedia).
40분 동안 541명
희생이 가장 크게 쏟아진 곳은 일리노이 남부였습니다. 오후 2시 30분 무렵 고럼 마을이 통째로 무너졌고, 이어지는 40분 동안 토네이도는 머프스보로·디소토·허스트-부시·웨스트프랭크퍼트를 차례로 지나며 541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423명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NWS Paducah). 탄광과 철도로 번성하던 인구 1만 명의 도시 머프스보로에서만 234명이 숨졌는데, 이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토네이도 하나가 한 도시에 남긴 가장 큰 희생입니다. 무너진 건물 아래 사람들이 갇힌 채 곳곳에서 불이 났고, 수도관이 끊겨 불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Wikipedia).

사진: 촬영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머프스보로 북동쪽의 농촌 마을 디소토에서는 학교 건물 2층이 무너지며 학생 33명이 숨졌습니다. 미국에서 토네이도로 한 학교에서 가장 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기록입니다(NWS Paducah). 이날 세 개 주에서 학교 57곳이 부서지거나 무너졌고, 전체 희생자의 약 3분의 1이 어린이였습니다(Wikipedia). 탄광 도시 웨스트프랭크퍼트에서는 자료에 따라 102명에서 130명대가 숨진 것으로 집계되며, 패리시 마을은 너무 철저히 파괴되어 끝내 다시 세워지지 못했습니다(Wikipedia; NWS Paducah). 인디애나로 넘어간 토네이도는 그리핀 마을을 통째로 쓸어 버렸고, 프린스턴 남쪽 시가지 상당 부분을 부순 뒤에야 사라졌습니다(Wikipedia).

사진: 당시 엽서, 스캔 Djohnsonokc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최종 집계는 사망 695명(미주리 12명, 일리노이 588명, 인디애나 95명), 부상 2,027명, 파괴된 집 약 15,000채입니다(Wikipedia; NWS Paducah). 그러나 집계 방식에 따라 숫자는 달라지고,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많았을 가능성이 큽니다(Wikipedia).

사진: Edeans 소장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아무도 “토네이도”라 말할 수 없던 시대
오늘날이라면 이런 슈퍼셀은 레이더에 잡히고, 사이렌이 울리고, 휴대전화로 경보가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1925년에는 토네이도를 미리 알리는 주의보나 경보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단순히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887년, 미 육군 통신대의 기상 부서는 예보에 “토네이도”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 “국지적 심한 폭풍(severe local storms)”이라고 쓰게 했습니다. 1890년 출범한 기상국도 예보가 부정확하고 공연한 공포만 부른다는 이유로 이 방침을 이어 갔습니다(Wikipedia). 그래서 1925년 기상국에는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를 언어가 없었습니다(NWS Heritage).
변화는 느렸습니다. 1938년에야 비상 관리 기관에 보내는 자료에 한해 이 단어가 허용되었고, 1948년 3월 25일 오클라호마 팅커 공군기지의 기상장교 어니스트 포부시와 로버트 밀러가 처음으로 공식 토네이도 예보를 내 그날 저녁 실제로 적중시켰습니다(NWS Norman). 일반 대중을 향한 토네이도 경보 금지는 1950년 7월 12일 기상국장의 회람으로 공식 해제되었고, 기상국의 첫 공개 실험 예보는 1952년에야 나왔습니다(Wikipedia). 트라이-스테이트 토네이도가 지나간 1925년은 하늘을 읽는 기술뿐 아니라 위험을 경고할 제도적 언어조차 없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한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경고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 국립기상청은 같은 폭풍이 오늘 온다면 어떻게 될지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날 아침 이미 높은 위험(High Risk) 전망이 나오고, 정오 무렵 미주리·일리노이·인디애나·켄터키에 “특히 위험한 상황(PDS)” 토네이도 주의보가 발령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폭풍이 시속 100킬로미터 안팎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벌려면 경보를 여러 카운티에 걸쳐 앞당겨 내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NWS Paducah).
비에 감싸여 보이지 않은 깔때기
경보가 없다면 사람들은 최소한 눈으로라도 위험을 알아챘어야 합니다. 이 토네이도가 유난히 치명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졌다는 데 있습니다. 미주리 구간에서 이 폭풍은 비교적 전형적인 슈퍼셀이었고, 첫 목격자들은 숲이 우거진 산지에서 작고 뚜렷한 깔때기를 보았습니다(Wikipedia). 그러나 일리노이로 들어서며 모체 폭풍은 폭우와 우박을 쏟아붓는 고강수(HP) 슈퍼셀로 바뀌었고, 회전하는 깔때기는 비와 먼지, 잔해의 장막에 자주 가려졌습니다(Johns 외 2013).

그림: 작자 미상(1925)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그래서 많은 목격자는 뾰족한 회오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기억한 것은 “형체 없이 굴러오는 안개”, “땅 위에서 끓어오르는 구름”이었고, 날씨에 밝은 농부들조차 폭풍이 코앞에 올 때까지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Wikipedia). 머프스보로의 생존자 유진 포터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 토네이도라면 깔때기가 있고 폭이 한두 블록쯤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1마일 너비라니요.”(NWS Paducah) 2013년 재분석에서도 목격자 대부분은 경로를 따라 쐐기처럼 넓적한 토네이도를 보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Johns 외 2013). “이 토네이도에는 깔때기가 아예 없었다”는 흔한 설명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깔때기는 있었지만 너무 넓고, 비와 먼지에 감싸여 토네이도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시속 100킬로미터 안팎의 전진 속도가 더해지자, 무엇이 다가오는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피할 시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토네이도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토네이도는 “뇌우에서 땅까지 뻗은, 격렬하게 회전하는 좁은 공기 기둥”입니다(NSSL). 가장 파괴적인 토네이도는 지속적으로 회전하는 상승기류, 곧 중규모저기압(메소사이클론)을 품은 슈퍼셀 뇌우에서 생깁니다. 그 출발점은 땅이 아니라 대기 자체의 구조에 있습니다.
핵심은 바람의 층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이 더 세지거나 방향이 바뀌면(풍향·풍속 시어), 그 사이의 공기는 두 손바닥 사이에서 굴리는 연필처럼 수평으로 누운 회전관을 이룹니다. 자라나는 뇌우의 강한 상승기류가 이 회전관을 들어 올려 세우면 폭풍 속에 수직으로 도는 회전이 생기고, 방향이 바뀌는 바람이 그중 한쪽 회전을 키워 메소사이클론을 만듭니다(NOAA JetStream). 위로 올라가는 공기는 늘어나며 가늘어지고, 그 아래에서 훨씬 가느다란 토네이도가 땅을 향해 뻗어 내려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NOAA JetStream과 NSSL의 설명을 바탕으로 풍속 시어 → 수평 회전 → 상승기류에 의한 기울어짐 → 메소사이클론 → 토네이도의 순서를 보여 주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과학은 이 마지막 단계를 아직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미국 국립폭풍연구소(NSSL)는 메소사이클론을 감싸는 하강기류 가장자리의 온도 차이가 관여한다는 이론을 소개하면서도, 그런 온도 차이 없이도 토네이도가 생길 수 있다는 모델 연구가 있다며 “솔직히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The truth is that we don’t fully understand)”고 말합니다(NSSL). 평소 이 대기의 순환은 평원에 비를 뿌려 밀밭을 적시고 봄을 데려오는, 하나님이 지으신 정교한 질서의 일부입니다. 그 질서를 이루는 바람의 층과 상승기류와 온도 차이라는 똑같은 요소들이, 아주 드문 배치에서는 파괴적인 회전으로 응축됩니다. 우리를 먹이는 바로 그 대기의 법칙이,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힘이 되는 셈입니다.
“아기들을 다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다”
참사 뒤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그전까지 미국에서는 토네이도를 하나님의 진노로 설명하는 일이 흔했습니다(Wikipedia). 그러나 희생자 가운데 아이들이 너무 많았던 이 참사 앞에서, 지역 목회자들은 이것을 심판으로 보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러 교파가 함께 드린 추모 예배에서 일리노이의 한 목사는 “머프스보로의 아기들을 다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다”고 설교했습니다. 역사학자 피터 투센은 『토네이도 하나님(Tornado God)』에서 이 사건을 미국인이 하나님과 자연, 재난을 생각하는 방식이 바뀐 전환점으로 봅니다(PBS American Experience).
1925년 3월 18일의 참사는 여러 조건이 한자리에 모인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자란 하나의 거대한 슈퍼셀, 시속 100킬로미터에 이르던 전진 속도, 비와 먼지에 감싸여 토네이도로 보이지 않던 깔때기, 그리고 위험을 경고할 단어조차 쓰지 못하던 제도.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토네이도 주의보와 경보, 사이렌과 도플러 레이더는 이런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긴 노력 끝에 생겼습니다. 미 국립기상청은 같은 폭풍이 다시 와도 700명 가까운 희생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면서도, 경보가 있어도 사람들이 대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덧붙입니다(NWS Paducah). 695명이라는 숫자는 지금의 경보 체계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경보를 들었을 때 왜 망설이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없이 증언합니다.
참고 자료
- 1925 Tri-State tornado — Wikipedia
- A Look Back at the Tri-State Tornado (1925) — NWS Paducah
- The Tri-State Tornado of 1925 — NWS/NOAA Heritage
- Johns et al. (2013), The 1925 Tri-State Tornado Damage Path and Associated Storm System — E-Journal of Severe Storms Meteorology
- Tornado warning — Wikipedia
- The First Official Tornado Forecast (25 March 1948) — NWS Norman
- The Fujita and Enhanced Fujita Scales — NWS Norman
- Severe Weather 101: Tornadoes — NOAA NSSL
- Thunderstorm Hazards: Tornadoes — NOAA JetStream
- The Thrill of the Chase — PBS American Experience
- Daulatpur–Saturia tornado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