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을 만든 여성은 말년의 재산과 기력을 모두 그 기념일을 ‘없애는’ 데 쏟아부었습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애나 자비스(Anna Jarvis)는 1908년 어머니를 기리는 첫 예배를 이끌며 오늘날의 어머니날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40년 뒤인 1948년에는 무일푼으로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꽃집과 사탕 가게, 연하장 회사가 이 날을 ‘선물 사는 날’로 바꿔 놓았다며 소송과 불매, 항의로 맞서다 가진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5월이면 자연스럽게 카네이션을 떠올리는 우리에게, 기념일의 기원은 생각보다 짧고 또 복잡합니다.


애나 자비스와 1908년, 어머니날의 탄생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가 지키는 5월 어머니날은 고대의 축제가 아니라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진 비교적 새로운 기념일입니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현대의 어머니날이 고대 그리스의 대지 여신 숭배나 로마의 봄 축제, 중세 기독교의 관습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기념일의 출발점은 한 사람의 개인적 추모였습니다. 애나 자비스는 1905년 5월 9일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앤 리브스 자비스(Ann Reeves Jarvis)를 기리기 위해, 어머니가 평생 다니던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앤드루스 감리교회(Andrews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추모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첫 공식 기념 예배가 열린 날은 1908년 5월 10일이었고, 같은 날 필라델피아의 워너메이커 백화점에서도 대규모 행사가 함께 열렸습니다. (브리태니커, 영어 위키백과)
어머니날이 ‘5월 둘째 주 일요일’로 자리 잡은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애나는 어머니의 기일(1905년 5월 9일)에 가까운 날을 기념일로 삼았고, 첫 기념일이 열린 1908년 5월 10일이 마침 그해 둘째 일요일이었습니다. 애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던 흰 카네이션을 기념일의 상징으로 골랐고, 1908년 행사에서 500송이를 나눠 주었습니다. 그가 복수형 ‘Mothers’가 아니라 단수 소유격 ‘Mother’s’를 고집한 것도 뜻이 있었습니다. 온 세상의 어머니를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이 자기 어머니 한 사람’을 기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연방 공휴일이 되기까지
개인의 추모로 시작된 이 날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애나 자비스는 정치인과 유력 인사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 어머니날을 공식 기념일로 만들자고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1914년 5월 8일 미국 의회가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튿날인 5월 9일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이를 공식 선포했습니다. 첫 전국 기념일은 그해 둘째 일요일인 5월 10일이었습니다. 선포문은 이 날을 국기 게양 등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날로 규정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윌슨 대통령은 어머니날을 ‘선포’했을 뿐, ‘창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기념일의 창시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나 자비스였습니다.

‘선물 사는 날’에 맞선 창시자
기념일이 전국으로 번지자, 애나 자비스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꽃집은 카네이션 값을 올렸고, 사탕과 연하장 회사는 어머니날을 대목으로 삼았습니다. 자비스는 기념일이 ‘선물 사는 날’로 변질되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는 1912년 ‘Second Sunday in May’와 ‘Mother’s Day’라는 문구를 상표로 등록하고 어머니날 국제협회(Mother’s Day International Association)를 세워 기념일의 의미를 직접 통제하려 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그 뒤로 자비스는 상업화에 맞서 성명을 내고 불매 운동과 소송을 벌였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자료에 남아 있는 한 성명에서 그는 상업 세력을 두고 ‘사기꾼, 강도, 해적, 갈취꾼, 유괴범, 그 밖의 흰개미들’이라고까지 맹비난했습니다. 1925년에는 카네이션을 팔고 있던 ‘미국 전쟁 어머니회(American War Mothers)’ 대회장을 찾아가 항의하다 치안 방해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1948년 세상을 떠난 자비스는 말년을 이 기념일의 상업화에 항의하며 그것을 없애려는 데 바쳤습니다. 기념일을 만든 사람이 정작 그 기념일을 부수려 애쓰다 무일푼으로 생을 마친 셈입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브리태니커)
어머니날 이전의 ‘어머니날들’
애나 자비스의 어머니날에는 그보다 앞선 뿌리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오늘날의 어머니날과 취지가 사뭇 다른, 별개의 선구적 시도였습니다.
첫째는 애나의 어머니 앤 리브스 자비스입니다. 그는 1850년대에 ‘어머니날 봉사 모임(Mothers’ Day Work Clubs)’을 만들어 위생과 공중보건을 개선하는 활동을 벌였고, 남북전쟁 때는 남과 북 양쪽 부상병을 가리지 않고 돌보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868년에는 ‘어머니 화해의 날(Mothers’ Friendship Day)’을 열어 전쟁으로 갈라선 가족들의 화해를 도모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둘째는 시인이자 사회운동가 줄리아 워드 하우(Julia Ward Howe)입니다. 그는 1870년 ‘어머니날 선언(Mother’s Day Proclamation)’을 발표해 남북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참상에 맞선 반전과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1872년에는 매년 6월 2일을 ‘어머니 평화의 날(Mother’s Peace Day)’로 지키자고 제안했지만, 이 제안은 널리 정착하지 못한 채 잊혔습니다. 오늘날 5월의 어머니날과는 취지도 날짜도 다른 ‘평화운동’이었던 셈입니다. 다만 애나 자비스가 어머니를 통해 하우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서술은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날 선언, 내셔널지오그래픽)

나라마다 다른 날, 다른 뿌리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은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 날짜와 유래는 나라마다 제각각이지만, 자신에게 생명을 준 이를 공경하려는 마음이 문화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 사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오랜 가르침처럼 이 마음이 사람 안에 본래 심겨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마더링 선데이(Mothering Sunday)’는 미국식 어머니날과 뿌리가 다릅니다. 이 날은 중세부터 사순절 넷째 주일에 자신이 세례받은 ‘어머니 교회(mother church)’로 돌아가던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날짜도 해마다 3~4월 사이를 옮겨 다닙니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어머니날에 자극받은 콘스탄스 스미스(Constance Smith)가 1913년부터 이 옛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렸고, 오늘날에는 사실상 어머니날로 흡수되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날짜의 다양성도 흥미롭습니다. 미국·캐나다·일본·독일·이탈리아·호주 등 많은 나라가 5월 둘째 일요일을 지키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권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이집트 등 아랍권은 춘분 무렵인 3월 21일을 어머니날로 삼습니다. 태국은 시리킷 왕비의 생일인 8월 12일을, 멕시코는 해마다 5월 10일을 고정으로 기립니다. 베트남에서는 음력 7월 15일 우란분절(Vu Lan)이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날 구실을 합니다. (영어 위키백과)
한국의 5월 8일 —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그렇다면 한국의 어버이날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한국의 5월 8일 역시 처음부터 ‘어버이’를 기린 날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 날이 공식 기념일이 된 것은 1956년입니다. 국무회의 결정으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는데, 한국전쟁을 겪은 뒤 양육과 생업을 함께 짊어진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그 노고를 기린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때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만을 기리는 날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어 위키백과)
‘어버이날’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17년 뒤입니다.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6615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확대·개칭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기리는 날이 따로 없다는 지적과,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을 아우르자는 뜻이 담긴 변화였습니다. 날짜는 5월 8일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날을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로 풀이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은 어떨까요. 이 역시 한국 고유의 전통이 아니라 미국에서 건너온 관습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어버이날의 카네이션 풍습이 1907년경 애나 자비스가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나눠 준 데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상징이 개신교 선교와 근대 문물의 유입을 거치며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
기념일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관습들이 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5월 둘째 일요일은 한 딸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비롯되었고, 흰 카네이션은 그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이었으며, 한국의 어버이날은 전쟁의 상처와 효의 전통이 만나 빚어진 날입니다. 창시자 애나 자비스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것은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어머니의 손을 한 번 더 잡아 드리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념일의 기원을 아는 일은, 그 마음의 본래 자리를 되찾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