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8월 26일, 프랑스 국민의회가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1조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말하고 쓰고 인쇄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무제한의 자유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같은 문장은 곧바로 조건을 덧붙입니다. “다만 법이 정한 경우, 이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 (예일 애벌런 프로젝트) 표현의 자유를 처음으로 인권 문서의 한복판에 새겨 넣은 이 조문은, 자유와 그 경계를 한 호흡에 함께 적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무엇을 지키는가’만큼이나 ‘어디서 멈추는가’를 물어 온 역사입니다.


세 겹으로 된 권리
오늘날 국제 규범은 표현의 자유를 하나의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세 겹의 권리로 봅니다. 첫째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이고, 둘째는 정보에 접근할 자유이며, 셋째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고 전할 자유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와 자유권규약 제19조는 이 셋을 묶어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매체를 통해” 보장한다고 적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자유권규약)
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주요 규범도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이고 무제한한 권리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선언에서 자유권규약과 유럽인권협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서는 이 자유가 “특별한 의무와 책임”을 수반한다고 밝히고 법이 정하는 제한을 함께 둡니다. 흔히 상상하는 ‘신성불가침의 절대권’은 실제 법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툼은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에서 벌어집니다.
아테네의 두 낱말: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
표현의 자유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흔히 고대 아테네가 소환됩니다. 그리스인은 두 개의 낱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세고리아(isegoria)’는 민회에서 정책을 두고 발언할 시민의 평등한 권리를 뜻했고, ‘파레시아(parrhesia)’는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자유를 뜻했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옮기면 앞의 것은 ‘평등한 발언권’에, 뒤의 것은 ‘기탄없는 발언’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을 곧장 현대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과장입니다. 아테네의 발언권은 성인 남성 시민에게만 열려 있었고, 여성과 노예, 외국인(메틱)은 배제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자유는 ‘국가에 맞선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시민이 함께 도시를 다스리기 위한 자기통치의 도구였습니다. (안티고네 저널) 개인을 권력으로부터 지키는 방패라기보다, 공동체의 결정에 참여하는 자격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걸어온 길은 이런 단절과 재정의의 연속이었지, 고대부터 오늘까지 곧게 이어진 하나의 선이 아니었습니다.

인쇄기와 검열, 그리고 밀턴
근대적 의미의 표현의 자유는 인쇄기와 함께 첨예해졌습니다. 1643년 영국 의회는 출판허가령을 내려 인쇄물을 사전 검열했습니다. 이듬해인 1644년 11월 23일, 시인 존 밀턴은 이 허가제에 반대하는 연설문 ‘아레오파기티카’를 펴냈습니다. 그는 “무허가 인쇄의 자유”를 주장했는데, 정작 이 글 자체가 허가를 받지 않고 출간되었습니다. 영어권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대표적 고전으로 꼽히지만, 여기서 오해가 자주 생깁니다. 아레오파기티카는 당대에는 이렇다 할 실효가 없었고, 허가제는 그 뒤로도 한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브리태니커) 사상의 씨앗이 곧바로 제도로 자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도의 변화는 더디게 왔습니다. 1689년 영국 권리장전은 ‘의회 안에서의 발언과 토론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이는 의원의 특권이었지 일반 시민의 표현의 자유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문 입법으로는 스웨덴이 앞섰습니다. 1766년 스웨덴 출판자유법은 세계에서 가장 이른 출판 자유 입법의 하나로, 미국 수정헌법보다 앞섭니다. 이 대목은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습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세계 최초의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스웨덴의 1766년 법과 1789년 프랑스 선언, 멀리는 1689년 권리장전과 아테네의 개념이 모두 그 앞에 있습니다. (위키백과 ‘표현의 자유’)
미국의 권리장전은 1791년 12월 15일 비준되었습니다. 1789년 제안된 12개 수정안 가운데 10개가 비준되어 권리장전이 되었는데, 표현의 자유를 담은 조항은 원래 제안 순서로는 세 번째였습니다. 앞선 두 조항이 비준되지 못하면서 이 조항이 ‘제1조’가 된 것입니다. (미 국가기록원) 그 문구는 간결합니다. “의회는 … 언론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국가가 개인의 표현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못 박은 이 방식은, 프랑스 선언이 자유와 책임을 나란히 적은 방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두 전통의 이 미묘한 차이는 훗날 경계선을 둘러싼 갈림길로 이어집니다.
밀의 위해 원칙과 ‘사상의 시장’
19세기에 이르러 표현의 자유는 철학적 토대를 얻습니다. 1859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이른바 위해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문명 사회의 구성원에게 그의 의사에 반해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타인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는 것”이라는 원칙입니다. 밀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논하며, 어떤 의견도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기에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조차 즉각적인 폭력 선동 같은 경우는 예외로 인정했습니다. (MTSU 수정헌법 백과) 자유의 옹호자에게도 경계는 있었던 셈입니다.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널리 쓰이는 비유도 이 지점에서 흔히 오해됩니다. 이 표현을 밀이 만들었다는 통념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씨앗은 1919년 미국 연방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가 에이브럼스 사건 반대의견에서 쓴 “사상의 자유로운 거래”라는 구절에 있고, ‘사상의 시장’이라는 표현 자체는 1953년 더글러스 대법관의 의견에서 등장합니다. (위키백과 ‘사상의 시장’) 비유 하나에도 이렇게 여러 손길이 겹쳐 있습니다.

국제 규범이 그은 경계선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뒤, 표현의 자유는 국제 인권 규범으로 정리됩니다.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유엔 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1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세계인권선언은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입니다. (유엔)
구속력 있는 조약은 1966년 12월 16일 채택되고 1976년 3월 23일 발효한 자유권규약입니다. 2025년 12월 기준 175개국이 당사국인 이 조약의 제19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제한이 정당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첫째 법률로 규정될 것, 둘째 필요한 경우일 것, 셋째 그 목적이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존중하거나 국가안보·공공질서·공중보건·도덕을 보호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제20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 선전과, 차별·적대·폭력의 선동에 해당하는 민족·인종·종교적 증오의 고취를 법으로 금지하도록 요구합니다. (OHCHR) 유럽에서는 이미 1950년 11월 4일 로마에서 서명되고 1953년 발효한 유럽인권협약 제10조가 같은 구조를 담았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의무와 책임을 수반”하므로 법률로 규정되고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인권협약 제10조)
어디서 멈추나: 하나가 아닌 경계
그렇다면 자유는 정확히 어디서 멈출까요.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심사 틀은 앞서 본 세 단계입니다. 제한이 법률에 근거하는가, 정당한 목적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목적에 꼭 필요하고 비례하는가. 명예훼손, 폭력 선동, 혐오표현, 음란물, 국가기밀, 사생활 침해, 저작권 등은 여러 나라가 공통적으로 두는 제한의 범주입니다.
그러나 그 선이 정확히 어디 그어지는지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이것이 개념사의 핵심입니다. 미국은 선동적인 표현이라도 원칙적으로 폭넓게 보호합니다. 1969년 브란덴부르크 대 오하이오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표현이 ‘임박한 위법행위’를 선동하고 실제로 그것을 낳을 개연성이 있을 때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는 1919년 셴크 판결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기준을 크게 좁힌 것입니다. (브란덴부르크 판결) 반면 유럽 여러 나라와 자유권규약은 증오의 선동을 법으로 금지할 적극적 의무를 부과합니다. 같은 표현이 한 법제에서는 보호받고 다른 법제에서는 금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서 멈추나’라는 물음에 인류가 하나의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 차이를 나란히 놓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고대부터 신성불가침으로 이어져 온 완성된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테네의 자기통치와 인쇄기를 둘러싼 다툼, 혁명기의 선언, 철학자의 논증, 두 차례 전쟁 뒤의 국제 규범을 거치며 몇 번이고 다시 정의된 개념입니다. 그 사이에는 늘 경계에 대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믿음이 있다면, 인간은 진리를 구하고 양심을 지키며 서로에게 말을 건네도록 지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지키고 어디서 멈출지를 정하는 일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세대마다 다시 묻고 답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