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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을 굶다가 한입에 몸무게만큼 삼키는 비단뱀, 그 몸은 어떻게 버틸까

비단뱀은 독특한 식사 전략을 쓴다. 몇 주, 심하면 열여덟 달까지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몸무게에 맞먹는 크기의 먹이를 통째로 삼킨다. 사람으로 치면 오랜 기간 굶은 뒤 자기 몸무게만 한 식사를 한 번에 해치우는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오랫동안 거의 쉬고 있던 소화기관과 심장, 창자가 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평소에는 얇고 작았던 몸속 장기가, 그 짧은 시간 안에 도대체 어떻게 이 부담을 견뎌내는 걸까.

버마비단뱀이 야외에서 큰 초록 잎 위에 머리를 얹고 있는 근접 사진
버마비단뱀 한 마리가 네팔 바르디야 국립공원의 큰 잎 위에 머리를 얹고 있다. 사진: Shadow Ayush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몸통보다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방법

비단뱀이 몸통보다 훨씬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것은 턱 구조 덕분이다. 좌우 아래턱뼈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신축성 있는 인대로만 연결돼 있어, 입을 머리 폭의 최대 다섯 배까지 벌릴 수 있다. 뒤로 굽은 이빨은 한 번 문 먹이가 다시 앞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걸쇠처럼 작동한다. 먹이를 잡을 때는 독을 쓰지 않고 몸을 휘감아 조이는 조임사냥(constriction)으로 제압한다. 이렇게 잡은 먹이를 머리부터 통째로 삼키고 나면, 진짜 과제가 시작된다 — 이제 그 거대한 덩어리를 소화해야 한다.

버마비단뱀이 나무껍질에 몸을 걸치고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
나무껍질에 몸을 걸친 버마비단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사진: Everglades NPS (R. Cammauf)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장이 접혔다 펴지듯 부풀어 오르는 소장

버마비단뱀의 소장을 들여다본 연구자들은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다. 슈타르크와 베제(Starck & Beese, 2001)가 학술지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먹이를 삼킨 지 이틀 안에 소장 크기는 공복 때의 최대 세 배(300%)까지 부풀어 오른다. 이는 창자가 새로 자라나는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장세포 하나하나가 커지고 융모(먹이의 영양분을 흡수하는 손가락 모양 돌기)가 길어지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 같은 벽돌을 그대로 둔 채 벽 두께만 부풀리는 셈이다. 이 변화는 완전히 가역적이어서 소화가 끝나면 소장은 다시 얇아지지만, 회복 속도는 부풀어 오르는 속도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버마비단뱀 머리를 초근접에서 찍은 매크로 사진, 비늘 무늬가 선명하다
비늘 하나하나의 기하학적 무늬와 질감이 드러나는 버마비단뱀 머리 매크로 사진. 사진: TimVicker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대사 스위치, 평소의 최대 44배까지

소장만 변하는 게 아니다. 스티븐 시코어와 재러드 다이아몬드(Secor & Diamond, 1998)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는 더 극적이다. 자기 몸무게와 맞먹는 먹이를 소화할 때, 버마비단뱀의 산소 소비량 — 즉 대사율 — 은 공복 때의 최대 44배까지 치솟는다. 시코어 본인이 자신의 연구실 웹페이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만한 폭의 대사 증가는 알려진 척추동물 가운데 경주마가 전력으로 질주할 때 정도나 돼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2008년 시코어가 발표한 종합 리뷰에서도 이 44배 증가폭은 섭취한 먹이 에너지의 최대 37%를 소화 자체에 쏟아붓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재확인됐다. 평소에는 낮은 대사로 조용히 지내다가, 식사 한 번에 몸 전체의 에너지 소비 스위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셈이다.

버마비단뱀 소장 두께와 대사율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심실 질량 논쟁 설명 포함
소장 크기는 공복 대비 2일째 300%로 정점을 찍은 뒤 회복은 더 더디게 진행되며, 대사율은 식후 최대 44배까지 치솟는다. 심실 질량 변화는 2005년 최초 보고 40%(48시간)와 이후 재현 연구 평균 15%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다. 자체 제작(glu.kr)

심장은 정말 40% 커질까 — 과학이 스스로를 수정하는 과정

이 극적인 몸의 변화 중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심장이다. 2005년 앤더슨 등(Andersen et al.)이 네이처에 발표한 최초 보고는, 버마비단뱀(당시 학명 Python molurus)이 먹이를 먹은 지 단 48시간 만에 심실(심장 근육) 질량이 약 40% 증가한다고 밝혀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과학은 한 번의 발표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여러 연구팀이 같은 실험을 반복했지만 처음 보고된 만큼 큰 폭의 증가를 다시 확인하지 못했다. 옌센과 왕(Jensen & Wang)이 2023~2024년 학술지 Physiology에 발표한 리뷰는 그동안 발표된 수치들을 모두 모아 비교한 결과, 심실 질량이 전혀 변하지 않은 사례도 여럿 있었고 평균적으로는 약 15% 정도 커지는 데 그친다고 결론지었다. 즉 2005년의 40%는 최초 보고일 뿐이며, 이후 여러 재현 연구는 그만큼 크게 나타나지 않았고 평균 약 15% 수준으로 확인됐다는 것이 지금 시점의 정직한 결론이다. (참고로 2024년 PNAS에 실린 후속 기전 연구는 볼파이톤에서 먹이를 먹은 지 24시간 만에 심실 질량이 24.5% 늘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버마비단뱀이 아닌 다른 종을 대상으로 한 결과라 앞의 40%·15% 논쟁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처음 보고된 수치가 후속 연구로 다듬어지는 이 과정 자체가, 이 현상이 실재한다는 사실과 과학이 스스로를 검증해 가는 방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인간 심장질환 연구에 주는 실마리

흥미로운 점은 이 심장 성장이 병적인 비대가 아니라 ‘건강한’ 성장이라는 것이다. 히켈메 등(Riquelme et al., 2011)이 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비단뱀이 먹이를 먹은 뒤 혈액 속에서 미리스트산·팔미트산·팔미톨레산이라는 세 가지 지방산 농도가 함께 높아지며, 이 조합이 심장 세포에 성장 신호를 전달한다는 것을 밝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지방산 조합을 생쥐 심장과 쥐에서 분리한 심근세포에 처리했을 때도 똑같이 건강한 성장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이 발견이 사람의 심장질환 연구에도 새로운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커지는 심장 성장의 스위치를 이해한다면, 사람의 심장 기능을 조절하는 데도 응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비단뱀과의 다양한 얼굴들

비단뱀과(Pythonidae)에는 다양한 종이 속해 있다. 그중 그물무늬비단뱀(Malayopython reticulatus)은 비단뱀과 가운데서도 몸이 가장 긴 종으로 꼽히며, 야생에서 7미터에 가까운 개체가 확인된 바 있다. 반면 반려동물로 가장 흔히 길러지는 비단뱀과 종은 몸집이 작고 온순한 볼파이톤(Python regius)이다. 몸 크기도 서식지도 제각각이지만, 이들 모두 독 없이 조임사냥으로 먹이를 잡고 몸속 장기를 접었다 펼치듯 조절하는 방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 가족이다.

그물무늬비단뱀 머리 근접 사진, 금색과 검정 그물 무늬 비늘이 뚜렷하다
태국 야생에서 촬영된 그물무늬비단뱀. 비단뱀과 가운데 가장 몸이 긴 종으로 꼽힌다. 사진: Rushenb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볼파이톤이 나뭇가지에 몸을 감고 매달려 있는 모습, 검은 바탕에 황갈색 반점 무늬
나뭇가지에 몸을 감은 볼파이톤. 비단뱀과에 속하며 반려동물로 흔히 길러진다. 사진: Dick Culbert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가역적 스위치의 정교함

결국 비단뱀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작정 커지기만 하는 성장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만 정확히 켜졌다가, 임무가 끝나면 원래 크기로 되돌아가는 정교하게 설계된 가역적 스위치에 가깝다. 소장은 흡수 면적을 극대화했다가 다시 줄이고, 대사는 최대치로 치솟았다가 가라앉으며, 심장은 — 그 정확한 폭을 두고는 아직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남아 있지만 — 필요한 만큼 커졌다가 되돌아간다. 몇 달의 공복과 단 한 번의 폭식 사이에서, 이 몸은 켜고 끄는 스위치를 정교하게 오가며 균형을 잃지 않는다. 극단을 오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 설계 원리는, 창조물에 담긴 정밀함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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