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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껍질은 어떻게 한지가 될까 — 닥나무와 닥풀의 다른 역할

손질한 닥나무 섬유를 물에 풀어 놓았는데, 건져 올리면 얇은 종이가 됩니다. 한지 제작을 처음 보면 가장 신기한 순간은 바로 이 변화입니다. 흩어진 섬유가 어떻게 한 장으로 이어질까요? 그리고 이름에 ‘풀’이 들어가는 닥풀은 그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할까요?

핵심은 섬유를 준비하는 일, 물속에서 고르게 펼치는 일, 물을 빼고 표면을 다듬는 일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전통 한지의 공정을 따라가 보면 닥나무와 닥풀, 발을 움직이는 손이 맡은 역할이 차례로 드러납니다.

여러 색의 한지가 겹겹이 쌓인 모습
다양한 색의 한지. 표면과 가장자리에 종이의 결이 드러납니다.
대한민국 문화재청 · CC BY-SA 2.5 · Wikimedia Commons

나무의 속살보다, 껍질 안의 긴 섬유

전통 한지의 주원료는 닥나무류의 속껍질에 있는 인피섬유입니다. 목질부와 거친 겉껍질을 구별해 종이로 쓸 섬유층을 준비합니다. [1, 5]

식물 세포벽에서 온 셀룰로오스는 종이의 중요한 구성 성분입니다. 섬유의 길이와 상태는 종이의 질김과 유연성에 영향을 줍니다. 다만 ‘한지’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제품의 원료와 성질이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전통 재료를 쓰는 방식과 현대의 다양한 제조 방식도 구분해야 합니다. [1, 8]

닥나무류의 줄기와 잎, 꽃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 지역에서 촬영한 닥나무류. 한지의 섬유 원료를 이야기할 때는 잎과 줄기 껍질의 역할을 구별해야 합니다.
Qwert1234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삶고 씻고 두드리는 이유

전통 공정에서는 속껍질을 잿물로 삶아 펙틴과 리그닌 등의 성분을 제거하고, 씻은 뒤 남은 티를 골라냅니다. [1, 4]

방망이로 두드려 섬유 다발을 풀어 줍니다. 원료를 준비하는 이 작업은 완성 종이를 다듬는 도침과 다릅니다. [4]

껍질 손질부터 물 빼기와 건조까지 전통 한지 제작을 다섯 단계로 요약한 도해
전통 한지 제작의 핵심 흐름. 실제 작업의 세부 단계와 방법은 장인과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체 도해 · GLU · CC BY 4.0 · 근거1 · 근거2 · 근거3

닥풀은 물속 섬유에 시간을 줍니다

닥나무와 닥풀은 이름이 비슷하지만 다른 식물입니다. 닥나무가 종이의 몸체가 될 섬유를 내어 준다면, 닥풀은 뿌리에서 얻는 점액으로 종이 뜨기를 돕습니다. 꽃을 으깨 넣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2]

닥풀의 연노란 꽃과 잎
드레스덴 식물원에서 촬영한 닥풀(Abelmoschus manihot)의 꽃. 종이 뜨기에 쓰는 점액은 꽃이 아니라 뿌리에서 얻습니다.
Michael Wolf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닥풀의 중요한 역할은 긴 섬유가 가라앉는 것을 억제하고, 발 위에서 물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섬유가 고르게 퍼진 상태를 다루기 쉬워지고, 두께가 균일한 종이를 뜨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닥풀로 섬유를 붙인다’는 설명만으로는 초지 과정의 핵심을 놓칩니다. [2]

많이 넣을수록 좋다는 뜻도 아닙니다. 황촉규근 점질물을 연구한 2021년 논문의 저자 초록에 따르면, 실험에서 투입량을 늘리자 탈수 시간은 길어졌지만 종이의 균일성과 인장강도가 끝없이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과도한 투입에서는 오히려 나빠졌습니다. 이는 특정 실험의 결과이며, 모든 공방에 적용할 하나의 배합비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3]

닥나무의 긴 섬유와 닥풀 뿌리 점액의 서로 다른 역할을 비교한 도해
닥나무는 종이의 섬유를 제공하고, 닥풀의 점액은 섬유 분산과 배수 조절을 돕습니다.
자체 도해 · GLU · CC BY 4.0 · 근거1 · 근거2

발을 움직이는 방향이 종이 뜨기의 일부입니다

발뜨기의 한 사례에는 앞으로 물을 떠 뒤로 흘리는 앞물질, 좌우로 물을 떠 흘리는 옆물질이 있습니다. 이 움직임으로 발 위에 섬유층을 만듭니다. [4]

물은 빠져나가고, 섬유는 한 장으로 남습니다

갓 뜬 종이는 물을 많이 머금고 있습니다. 제작자 에이미 리의 현장 기록에는 젖은 종이를 쌓을 때 끈으로 켜를 구별하고, 눌러 물을 뺀 뒤 낱장으로 떼어 말리는 과정이 나옵니다. 뜨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탈수와 건조까지 거쳐야 손에 들 수 있는 종이가 됩니다. [5]

그렇다면 마지막에는 무엇이 섬유를 붙잡을까요? 종이의 강도를 ‘수소결합 하나의 힘’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셀룰로오스에 관한 연구 검토는 건조 중 섬유가 가까워지고 접촉부가 형성되는 복합적인 과정을 강조합니다. 섬유의 구조와 접촉, 여러 분자 간 상호작용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닥풀 한 가지를 만능 접착제로 생각할 때보다 종이의 형성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9]

가장자리에 섬유가 드러나는 여러 색의 수제 종이 더미
서울 인사동의 수제 종이. 사진은 종이 가장자리의 질감을 보여 주며, 섬유 결합을 확대 촬영한 현미경 사진은 아닙니다.
jared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완성된 종이를 다시 두드리는 도침

도침은 종이를 뜨기 전에 원료를 두드리는 작업과 다릅니다.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 두드리며 표면을 고르고 치밀하게 다듬는 후가공입니다. 평활도와 광택, 인쇄에 적합한 표면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줍니다. [6]

모든 한지가 도침을 거치지는 않습니다. ‘한지장’ 항목은 건조와 선별 뒤 필요에 따라 도침한다고 설명합니다. [4, 6]

‘천 년’이라는 말보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

한지의 가치는 오래된 종이라는 이미지에만 있지 않습니다. 영국박물관은 한국 회화 보존 사업에서 한국에서 마련한 한지를 장황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한지는 오늘의 보존 현장에서도 재료와 기법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대상입니다. 이 사례가 모든 한지가 모든 유물에 적합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10]

한옥 창살 사이의 종이를 통과하는 빛
한옥의 종이 바른 창. 종이와 창살이 함께 빛과 그림자의 무늬를 만듭니다.
Caroline Knox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어떤 종이든 오래 보존되려면 재료와 보관 환경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종이 내부의 성분뿐 아니라 습기, 산, 빛 같은 외부 요인도 열화에 관여한다고 설명합니다. ‘한지니까 무조건 천 년을 간다’고 수명을 보증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8]

한지 한 장을 다시 보면 서로 다른 일이 겹쳐 있습니다. 닥나무는 섬유를, 닥풀은 분산과 배수 조절을, 발뜨기는 섬유층의 형성을 담당합니다. 눌러 말리는 과정 뒤에는 용도에 따른 표면 가공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가 소개하듯, 이 기술은 재료를 준비하고 노동을 나누는 품앗이의 지식과도 연결됩니다. [7]

한지 제작의 정교함은 좋은 재료 하나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재료마다 다른 성질을 이해하고 알맞은 단계에서 쓰는 데 있습니다. 창조물에 담긴 섬유의 성질을 살피고, 그것을 생활의 도구로 이어 온 사람들의 손길이 한 장의 종이에 함께 남아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Classification option for Korean traditional paper based on type of raw materials, using near-infrared spectroscopy and multivariate statistical methods
  2. 닥풀
  3. 황촉규근 점질물의 투입량과 온도에 따른 한지 물성 변화
  4. 한지장
  5. Hanji in the Hands
  6. 실크스크린 도포법이 도침가공 전통한지 특성에 미치는 영향
  7. Hanji, Korea's Traditional Paper
  8. The Deterioration and Preservation of Paper: Some Essential Facts
  9. Cellulose and the role of hydrogen bonds: not in charge of everything
  10. Amorepacific conservation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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