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아래에 서면 이상한 장면이 보입니다. 무거운 돌들이 머리 위에 둥글게 이어져 있는데, 정작 한가운데에는 그것을 받치는 기둥이 없습니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처럼 물 위로 반원을 그리는 다리를 보면, 돌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답은 돌 하나의 특별한 능력보다 힘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습니다. 돌다리 아치는 맞닿은 돌들을 통해 누르는 힘을 양쪽 받침으로 전달합니다. 받침과 그 아래 지반까지 함께 버텨 줄 때, 가운데 공간을 비워 둘 수 있습니다. 눈에 잘 들어오는 곡선과 눈에 덜 띄는 양끝이 한 구조를 이루는 셈입니다.

사진 · Jakub Hału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돌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 당기기보다 누르기
길쭉한 부재를 양끝에 걸치고 가운데를 누르면 휘려는 힘이 생깁니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위쪽은 압축되고 아래쪽은 늘어나려 합니다. 재료는 누르는 힘을 잘 견딘다고 해서 잡아당기는 힘까지 똑같이 잘 견디는 것은 아닙니다. [1]
석재는 일반적으로 압축에 강하지만 인장에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돌을 길게 한 장 걸쳐 놓는 방식과, 여러 돌을 아치로 이어 놓는 방식의 차이가 여기서 생깁니다. 아치는 하중을 주로 압축으로 전달하도록 형태를 이용합니다. 재료의 성질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재료가 힘을 받는 방식을 바꾼 것입니다. [2]
다만 실제 다리에는 하중 위치, 아치 두께, 돌과 줄눈의 상태, 받침의 움직임 같은 조건이 함께 작용합니다. 따라서 ‘아치에는 어느 곳에도 인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압축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은 출발점이며, 실제 안전성을 판단하려면 구조 전체를 살펴야 합니다. [5]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돌 아치의 구조와 힘의 전달을 설명하는 입체 개념도 · 근거: TeachEngineering ·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Science Museum Group
쐐기돌 하나가 다리를 떠받치는 것은 아닙니다
아치의 돌을 가까이 보면 이음선이 부채살처럼 벌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석조 아치에서는 쐐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 영어로 부수아(voussoir)를 곡선을 따라 놓습니다. 꼭대기 중앙에서 아치를 닫는 돌은 흔히 쐐기돌 또는 키스톤(keystone)이라고 부릅니다. [3][6]
쐐기돌을 마지막에 넣으면 다리가 완성된다는 설명은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를 ‘가운데 돌 하나가 나머지 돌을 붙잡고 있다’고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돌들은 서로 맞닿은 면에서 힘을 주고받습니다. 중앙의 돌뿐 아니라 양옆의 돌, 아치의 끝, 받침이 이어져야 안정된 구조가 됩니다. [4]
프랑스 퐁 뒤 가르의 아랫면 사진은 이 점을 관찰하기 좋습니다.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던 곡선이 실제로는 여러 석재의 조립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UNESCO는 이 수도교의 아래쪽 아치들에 쐐기꼴 석재로 구성된 아치 띠를 나란히 배치한 제작 방식을 설명합니다. 아름다운 곡선 안에 돌을 가공하고 맞추는 작업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9]

사진 · Elihbeckma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완성 후에는 비어 있어도, 쌓을 때는 받침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완성된 아치는 스스로 버틴다 해도, 아직 절반만 쌓았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요? 꼭대기까지 이어지기 전에는 완성된 아치와 같은 힘의 경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인 공법에서는 아랫면 모양에 맞춘 임시 받침틀을 세우고 그 위에 돌을 쌓았습니다. 영어로 센터링(centering)이라고 하는 구조입니다. 영국의 역사유산 기관 English Heritage의 교육 자료는 기초와 받침을 만든 뒤 목재 틀을 설치하고, 아치 돌과 마지막 쐐기돌을 놓은 다음 목재 지지대를 조심스럽게 걷어 내는 순서로 설명합니다. [7]

사진 · Photographic Collection from Australia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사진은 시드니 하버 브리지 공사 사진 모음에 수록된 아치와 임시 지지대의 모습입니다. 전통 석조 아치의 조립 과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자료는 아니지만, 공사 중에는 완성 후 사라질 지지 구조가 개구부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받침틀을 걷는 순간은 장식물을 치우는 절차가 아닙니다. 임시 구조가 받던 하중을 완성된 구조로 넘기는 단계입니다. 앞서 본 교육 자료에서도 지지대를 조심스럽게 제거한다고 설명하는 이유를 이 공정의 역할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치를 쌓는 중에 필요한 임시 받침과 완성 후에도 필요한 양쪽 받침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7]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일반적인 아치 시공 순서를 보여 주는 입체 개념도 · 근거: English Heritage
진짜 눈여겨볼 곳은 아치의 양끝입니다
아치가 양쪽 받침에 전달하는 힘에는 아래로 누르는 성분뿐 아니라 바깥쪽으로 미는 성분도 있습니다. 이 수평 방향의 밀림을 흔히 추력이라고 부릅니다. 양끝이 벌어지지 않도록 받쳐 줘야 아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교대는 다리 끝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구조입니다.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승선교 설명은 아치의 기단부에 자연 암반이 깔려 있다고 짚습니다. 다리를 볼 때 무지개 모양만 따라가기 쉽지만, 그 곡선이 어디에 닿고 무엇을 딛고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물 위에 뜬 듯한 모습은 양끝의 지지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8]
받침의 이동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석조 아치교를 분석한 연구는 기하학적 형태와 받침의 움직임을 함께 다룹니다. 돌이 단단해 보여도 지지가 달라지면 안정 조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래 버틴 다리라고 해서 앞으로의 점검이나 보수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5][2]
돌이 맞닿는 방식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 세고비아 수도교를 가까이서 보면 아치의 돌과 그 위 벽체의 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습니다. 아치 윤곽을 따라 선 돌과 그 위에 쌓인 부분을 구분하면, 다리를 하나의 돌무더기로 볼 때 놓쳤던 구조가 드러납니다. 아래 사진에서는 곡선을 만드는 돌들의 이음선과 그 위에 이어진 석재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David Corral Gadea · CC BY-SA 3.0 es ·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석재가 정교하게 맞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접합 재료의 유무까지 사진에서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석조 아치교에는 돌과 모르타르 줄눈을 함께 사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정 유적의 제작 방식과 아치가 힘을 전달하는 원리는 다른 층위의 설명입니다. 핵심은 모든 돌다리가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각 구조에서 돌과 줄눈과 받침이 함께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3]
아치를 이어 붙이면, 가운데에도 받침이 있습니다
세고비아 수도교의 전경에서는 아치 하나가 아니라 연속된 여러 아치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구간을 잇는 구조에서는 사이사이의 교각이 각 아치를 받칩니다. ‘가운데 기둥이 없다’는 말은 아치 하나의 열린 구간을 설명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긴 수도교 전체에 중간 받침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넓히면 틀립니다. [10]
퐁 뒤 가르처럼 아치를 여러 층으로 배치한 수도교에서도 같은 구분이 필요합니다. 위쪽에 또 다른 아치가 보인다고 하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아래로 구조를 따라 내려오며, 아치와 교각과 기초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물을 운반하는 시설을 세우는 데에도 물길 못지않게 힘이 지나갈 길이 필요했습니다. [9]

사진 · Cookie-chantilly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다음에 돌다리를 만나면 세 곳을 보세요
먼저 아치 윤곽의 돌과 줄눈을 보세요. 곡선을 이루도록 돌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 살펴봅니다. 다음으로 양끝을 보세요. 아치가 어떤 받침에 닿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따라갑니다. 마지막으로 다리 전체를 보세요. 한 구간짜리인지, 교각을 사이에 두고 여러 아치가 이어지는지 구분합니다. 이것은 구조를 읽는 관찰법이며, 사진이나 눈대중으로 안전을 판정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돌다리의 경이로움은 무게를 없앴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는 무게를 돌의 성질과 형태에 맞춰 양쪽 받침, 그리고 땅으로 전달했다는 데 있습니다. 가운데의 빈 공간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빈 공간 주변에 끊기지 않게 이어 놓은 구조였습니다.
참고 자료
- Bridging the Gaps — TeachEngineering ·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 Influence of the geometry and the abutments movement on the collapse of stone arch bridges — Construction and Building Materials · research article
- Allegheny Portage Railroad: New Support for Old Arches — U.S. National Park Service · NPSHistory.com archive copy
- Wonderlab: The science and maths behind the exhibits — Forces, Arch Bridge — Science Museum Group
- As Hangs the Flexible Line: Equilibrium of Masonry Arches — Nexus Network Journal / MIT Masonry Research
- Keystone — Chicago Architecture Center
- Richborough Roman Fort — Teachers’ Kit, Amazing Arches — English Heritage
- 순천 선암사 승선교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Pont du Gard (Roman Aqueduct)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Old Town of Segovia and its Aqueduct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