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눈처럼 지고 나면 벚나무의 한 해 이야기가 끝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꽃잎이 떨어진 바로 그 가지에서, 연둣빛 어린잎이 펼쳐지는 순간 또 다른 장면이 조용히 시작됩니다. 갓 나온 잎을 들여다보면 잎몸과 잎자루가 만나는 밑동에 좁쌀만 한 붉은 혹이 대개 두 개 나란히 돋아 있습니다. 무심코 보면 병든 자국이나 우연한 돌기처럼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돌기는 사실 단물을 흘리는 분비샘이고, 그 단물을 마시러 개미가 줄지어 잎자루를 오릅니다. 벚나무가 꽃이 아니라 잎으로 손님을 부르는 셈입니다. 게다가 그 손님은 꽃가루를 옮기러 온 것이 아니라, 어린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사냥하는 경호원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잎자루에 맺힌 두 개의 붉은 점
이 분비샘의 정식 이름은 꽃밖꿀샘, 영어로 extrafloral nectary입니다. 말 그대로 꽃 바깥에 있는 꿀샘이라는 뜻으로, 벚나무에서는 주로 잎자루 윗면, 잎몸이 시작되는 밑동 근처에 자리합니다. 생김새는 종에 따라 제법 다양합니다. 어떤 것은 잎과 같은 초록빛의 작은 혹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것은 분홍에서 진홍으로 물든 또렷한 도넛 모양을 하고 있어 한눈에 들어옵니다. (OSU BYGL)
벚나무류에서 이 꿀샘은 보통 잎밑 가까이에 두 개가 짝을 지어 나며, 이 배열은 장미과 벚속(Prunus)을 알아보는 지문 같은 특징으로 쓰입니다. 다만 정확한 위치는 종마다 조금씩 달라서 잎자루에 나기도 하고, 턱잎이나 잎몸 가장자리로 옮겨 앉기도 합니다. 봄철 산책길에 벚나무 어린잎을 만나거든 잎자루 끝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대개 두 점이 마주 보고 앉아 있을 것입니다.
꽃꿀샘과는 목적이 다르다
같은 꿀샘이라도 꽃 안의 꿀샘과 꽃밖꿀샘은 겨냥하는 상대가 전혀 다릅니다. 꽃 안쪽의 꿀샘은 벌과 나비 같은 수분매개자를 불러 꽃가루받이를 성사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반면 꽃밖꿀샘은 수분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꿀샘이 내미는 단물은 개미나 말벌처럼 다른 곤충을 사냥하는 포식성 곤충을 겨냥합니다. (Wikipedia)
단물을 얻은 개미는 그 대가라도 치르듯 잎 위를 순찰하며 알과 애벌레를 물어 나릅니다. 식물이 스스로 초식자를 떼어내는 대신, 값싼 단물로 개미를 고용해 방어를 대신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3자를 끌어들여 초식자를 막는 방식을 간접 방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개미는 흔히 나무가 고용한 경호원에 비유됩니다.

단물이 흐르는 시기의 정교함
이 동맹을 고전적으로 보여 준 연구가 생태학자 데이비드 틸먼이 1978년 학술지 Ecology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대상은 북미의 검은벚나무(Prunus serotina)였습니다. 틸먼은 이 나무의 꽃밖꿀샘이 잎눈이 트는 시점부터 첫 3주 동안 가장 활발하게 단물을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시기에 몰려든 개미는 주로 서양의 목재개미(Formica obscuripes)로, 특히 개미 군락에서 약 20미터 이내에 선 나무에 많이 모였습니다. (Tilman 1978; OSU BYGL)
개미가 노린 먹이는 검은벚나무의 주요 식엽 해충인 동부천막벌레나방의 애벌레(Malacosoma americanum) 등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개미가 이 애벌레를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잎눈이 튼 뒤 3주쯤까지의 작은 애벌레만 상대할 수 있고, 그 뒤로 애벌레가 몸집을 키우면 대부분 개미의 사냥을 피해 버립니다. 그런데 나무가 단물을 가장 많이 내는 시기와, 애벌레가 개미에게 가장 취약한 시기가 서로 겹칩니다. 개미의 방문이 잎눈 트임 직후 정점을 찍고, 꿀샘의 활성이 줄어들면서 함께 잦아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틸먼은 결론을 신중하게 적었습니다. 개미와 벚나무의 관계는 서로에게 반드시 매여 있는 절대적 공생이 아니라 임의적(facultative) 상리공생이며, 단물이 흐르는 시점이 천막벌레 애벌레에 대한 개미의 사냥 성공률을 높이는 쪽으로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개미 군락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일수록 애벌레의 생존율이 더 높았습니다. (OSU BYGL)
초식이 켜는 스위치
이 꿀샘이 그저 정해진 대로만 단물을 흘리는 수동적인 장치가 아니라는 증거도 있습니다. 2008년 풀리스와 패커는 학술지 Functional Ec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양벚나무(Prunus avium)의 잎을 펀치나 가위로 일부러 손상시켜 애벌레가 갉아먹은 상황을 흉내 냈습니다. 그러자 손상을 입은 나무는 대조군보다 잎당 꽃밖꿀샘의 수가 뚜렷하게 늘어났고, 이는 손상을 준 방식과 상관없이 나타났습니다. (Pulice & Packer 2008)
다시 말해 초식의 압력이 감지되면 나무는 꿀샘을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은 개미를 부를 채비를 합니다. 이렇게 공격을 받은 뒤에 방어를 끌어올리는 방식을 유도 방어라고 합니다. 꿀에 대한 투자를 늘릴수록 개미의 모집이 늘고 초식자에 대한 방어 효과도 함께 커진다는 관찰과도 잘 들어맞습니다. 잎자루의 붉은 점은 붙박이 장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반응하며 병력을 늘리는 방어 장비인 셈입니다.

벚나무만의 비밀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꽃밖꿀샘은 벚나무만 가진 특별한 기관이 아닙니다. 웨버와 킬러가 2013년 학술지 Annals of Botany에 정리한 바에 따르면, 꽃밖꿀샘은 무려 3,941종, 745속, 108과의 식물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가장 풍부한 무리는 콩과로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1,069종에 이르고, 시계꽃과와 아욱과가 그 뒤를 잇습니다. (Weber & Keeler 2013)
더 놀라운 것은 이 기관이 식물의 역사에서 최소 457번이나 서로 독립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뿌리가 다른 여러 계통에서 같은 해법이 되풀이해 등장한 것입니다. 벚나무는 이 널리 퍼진 방어 전략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이고 잘 연구된 사례일 뿐, 유일한 주인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식물 세계 곳곳에 같은 방어의 지혜가 흩뿌려져 있는 셈입니다.
공원의 벚나무, 그리고 동맹의 조건
봄마다 우리가 올려다보는 관상용 벚나무에도 이 꿀샘이 있습니다. 왕벚나무(Prunus × yedoensis)는 잎자루 끝에 사마귀 모양의 큰 분비샘이 두 개 이상 달려 있는데, 이 분비샘이 잎몸 밑동에 닿는지 떨어져 있는지가 벚나무 종을 가려내는 단서로 쓰일 정도입니다. (NC State Extension) 이 잎자루의 분비샘 역시 단물을 내므로 꽃밖꿀샘의 일종으로 봅니다.
다만 조심할 대목이 있습니다. 개미가 애벌레를 잡아 나무를 지킨다는 실험적 검증은 주로 검은벚나무와 양벚나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왕벚나무 같은 관상 벚에서 이 방어 효과가 똑같이 실험으로 입증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벚속 전반과 가까운 종에서 확립된 원리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또한 개미가 언제나 나무의 편인 것도 아닙니다. 진딧물이 많아지면 개미는 꿀샘의 단물 대신 진딧물이 내놓는 단물로 채집을 옮겨 가기도 해서, 이 방어는 어디까지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동맹입니다. (aesa)
그래서 벚나무의 잎자루에 맺힌 두 개의 붉은 점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자리에 놓인 정교하게 맞물린 장치입니다. 어린잎이 가장 무를 때 단물이 흐르고, 그 단물이 지킬 힘을 가진 손님을 바로 그때 불러 모읍니다. 나무가 스스로 계산해 낸 것이 아니라, 시기와 시기가 어긋나지 않도록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작은 꿀샘 하나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살리는 촘촘한 설계가 담겨 있습니다.
참고 자료
- Nectar — Wikipedia (꽃밖꿀샘의 정의와 개미 방어 공생, 전 세계 분포 규모)
- Tilman, D. (1978) Cherries, Ants and Tent Caterpillars — Ecology
- Eastern Tent Caterpillars, Extrafloral Nectaries, and Ants — OSU BYGL
- Extrafloral Nectaries — OSU BYGL
- Pulice & Packer (2008) Simulated herbivory induces extrafloral nectary production in Prunus avium — Functional Ecology
- Weber & Keeler (2013) The phylogenetic distribution of extrafloral nectaries in plants — Annals of Botany
- Prunus × yedoensis (Yoshino cherry) — NC State Extension
- Ant foraging shifts from extrafloral nectar to aphid honeydew (Vicia faba) — Annals of the Entomological Society of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