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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는 늘 해를 따라 돌까? — 다 자라면 동쪽에 멈추는 체내 시계, 그리고 씨앗 속 황금각

여름 들판에서 해바라기를 보면 누구나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저 꽃은 하루 종일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 통념은 사실 절반만 맞습니다. 해를 좇는 것은 ‘아직 자라는 중인 어린 해바라기’뿐이고, 다 자란 해바라기는 추적을 멈추고 한 방향 — 동쪽 — 을 향한 채 굳어 버립니다. 게다가 우리가 ‘꽃 한 송이’라 부르는 그 머리는 사실 수백에서 수천 송이의 작은 꽃이 모인 집합체이며, 그 씨앗들은 ‘황금각’이라는 단 하나의 규칙으로 빈틈없이 채워집니다. 해바라기 한 그루에는 시간을 읽는 체내 시계와, 수학을 닮은 기하가 동시에 숨어 있는 셈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해바라기 밭. 여름이면 수많은 머리가 일제히 같은 쪽으로 고개를 든다.
이탈리아의 한 해바라기 밭. 여름이면 수많은 머리가 일제히 같은 쪽으로 고개를 든다.
Luigi Guarino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출처

“늘 해를 따라간다”는 오해 — 추적은 어린 해바라기만의 일

먼저 통념부터 정정해야 합니다. 해를 따라 도는 운동(향일성, heliotropism)은 성숙한 해바라기가 아니라 한창 자라는 어린 해바라기에서 일어납니다. 2016년 Science에 실린 Atamian 등의 연구는 이를 명확히 정리했습니다. 어린 해바라기는 낮 동안 줄기 끝(생장점)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해를 좇고, 밤사이에는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되돌려 새벽을 미리 맞이할 자세를 갖춥니다.

이 운동의 정체는 ‘줄기가 한쪽으로 휘는 차등 신장’입니다. 낮에는 줄기의 동쪽 면이 더 빨리 자라 끝이 서쪽으로 기울고(동→서 추적), 밤에는 반대로 서쪽 면이 더 자라 끝이 동쪽으로 되돌아옵니다(서→동 재정렬). 연구진은 이를 동쪽 면과 서쪽 면의 ‘역위상(antiphasic) 신장’이라 불렀고, 2023년 PLoS Biology의 후속 연구도 “낮에는 동쪽 면이, 밤에는 서쪽 면이 더 자란다”는 같은 패턴을 확인했습니다.

한 방향으로 줄지어 고개를 둔 해바라기 밭. 다 자란 해바라기가 왜 모두 같은 쪽을 향하는지가 이 글의 출발점이다.
한 방향으로 줄지어 고개를 둔 해바라기 밭. 다 자란 해바라기가 왜 모두 같은 쪽을 향하는지가 이 글의 출발점이다.
Aysegulylmaz · CC0 · Wikimedia Commons · 출처

단순한 빛 반응이 아니다 — 체내 시계가 조율한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 운동은 단순히 ‘밝은 쪽으로 휘는’ 굴광성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구진이 들판의 해바라기를 머리 위에 빛이 고정된 항상 조건으로 옮겨도, 해바라기는 며칠 동안 동–서 진동을 계속했습니다. 바깥 태양의 위치가 더 이상 단서를 주지 않는데도 리듬이 이어진 것이지요. 이는 외부 빛에 그때그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생체시계(circadian clock)가 운동을 조율한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24시간을 벗어난 인공 명암 주기에서는 추적 리듬이 교란되었습니다.

2016년 연구는 굴광성 관련 생장 유전자가 줄기 양면에서 차등 발현되는 반면, 시계 유전자 자체는 양면에 고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보고했습니다. 즉 시계가 양쪽에 똑같이 흐르되, 그 시계가 빛·생장 반응 경로를 통해 동·서 양면의 신장 속도 차이를 만들어 내는 구조입니다. 2023년 PLoS Biology는 여기에 한 겹을 더해, 향일성이 고전적인 phototropin 단독 굴광성과는 구별되며 여러 빛 신호 경로가 통합적으로 관여한다고 보완했습니다. 따라서 향일성을 ‘단순한 굴광성’으로 뭉뚱그리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시계와 다중 빛 경로가 함께 빚어내는 정교한 통합인 셈입니다.

다 자라면 추적을 멈추고 ‘동쪽’에 고정된다

그렇다면 다 자란 해바라기는 왜 더 이상 돌지 않을까요? 답은 운동의 원리 안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운동은 줄기의 신장(생장)에서 비롯되는데, 식물이 성숙해 전체 생장이 느려지면 차등 신장도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앞서 본 2016년 연구를 이끈 UC Davis의 Stacey Harmer 연구진은 “해바라기가 성숙하고 꽃이 열리면 전체 생장이 느려지고, 낮 동안 움직임을 멈춘 채 동쪽을 향해 안정된다”고 서술했습니다. 추적이 점차 약해지면서 동향으로 안착하는 것입니다.

다 자라 고개를 숙인 성숙한 해바라기가 안개 낀 아침 해 쪽을 향해 있다. 성숙한 해바라기는 추적을 멈추고 동쪽을 향한 채 고정된다.
다 자라 고개를 숙인 성숙한 해바라기가 안개 낀 아침 해 쪽을 향해 있다. 성숙한 해바라기는 추적을 멈추고 동쪽을 향한 채 고정된다.
Mark Howanessian · CC BY 3.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이 동향 고정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습니다. 동쪽을 향한 꽃머리는 아침 햇살에 더 빨리 데워지고, 따뜻해진 머리는 수분 곤충을 더 많이 끌어들입니다. Atamian 등은 동향 해바라기가 다른 방향(특히 서향)보다 약 5배 많은 수분 곤충의 방문을 받았다고 보고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연구진은 서향 꽃머리를 휴대용 히터로 인위적으로 데워 보았는데, 그러자 방문이 다시 늘었습니다. 동향의 이점이 주로 ‘아침의 빠른 가온’, 즉 온도에서 비롯됨을 직접 보여 준 실험입니다.

해바라기 꽃머리에 앉아 꽃가루를 묻힌 뒤영벌. 동쪽을 향한 머리는 아침에 더 빨리 데워져 수분 곤충을 약 5배 더 끌어들였다.
해바라기 꽃머리에 앉아 꽃가루를 묻힌 뒤영벌. 동쪽을 향한 머리는 아침에 더 빨리 데워져 수분 곤충을 약 5배 더 끌어들였다.
U.S. Fish and Wildlife Service – Midwest Region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 출처

이 온기는 번식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동향 머리는 더 많은 수분 곤충을 받아 더 많은 자손을 만들고 더 무거운 종자를 생산했습니다. 향일성을 막지 않은 어린 식물이 추적을 막은 식물보다 잎 면적과 생물량이 더 컸다는 점도 함께 보고되었습니다. 후속 야외 연구인 Takács 등(2022)도 자연 상태에서 동향 머리가 북·남·서향보다 알찬 종자의 수와 질량 모두에서 앞섰다고 보고해, 동향의 이점을 독립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한 송이’가 사실은 수천 송이 — 두상화서의 비밀

이제 머리 자체로 눈을 돌려 봅시다. 우리가 해바라기 ‘꽃 한 송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단일한 꽃이 아닙니다. 국화과(Asteraceae)의 머리꽃차례, 곧 두상화서(capitulum)로, 하나의 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백에서 때로 수천 개의 작은 꽃(floret)이 한 받침 위에 모여 만든 ‘가짜꽃(pseudanthium)’입니다.

해바라기 꽃머리 정면. 한 송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백~수천 개의 낱꽃이 모인 두상화서다.
해바라기 꽃머리 정면. 한 송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백~수천 개의 낱꽃이 모인 두상화서다.
Rifat R · CC BY 4.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이 작은 꽃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바깥쪽의 노랗고 화려한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혀꽃(ray floret)’으로, 좌우대칭의 큰 모양으로 곤충을 유인하지만 해바라기에서는 대개 씨가 되지 않는 불임입니다. 반면 가운데에 빽빽이 들어찬 ‘통꽃(disk floret)’은 방사대칭이고 꽃부리가 관 모양으로 융합돼 있으며, 수정과 결실을 담당합니다. 바로 이 통꽃 하나하나가 자라 우리가 까먹는 해바라기씨가 됩니다. 한 송이처럼 보이던 것이 사실은 수천 송이의 협력이라는 사실 — 이것이 해바라기를 다시 보게 만드는 첫 번째 반전입니다.

바깥의 노랗고 화려한 혀꽃과 중앙에 빽빽이 들어찬 통꽃. 통꽃 하나하나가 수정·결실해 해바라기씨가 된다.
바깥의 노랗고 화려한 혀꽃과 중앙에 빽빽이 들어찬 통꽃. 통꽃 하나하나가 수정·결실해 해바라기씨가 된다.
Forest and Kim Starr · CC BY 3.0 US · Wikimedia Commons · 출처

황금각 137.5° — 단순한 규칙이 빚는 빈틈없는 나선

통꽃들이 채워진 방식을 들여다보면 두 번째 경이가 나타납니다. 씨앗(통꽃)은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서로 맞물린 두 방향의 나선을 이룹니다.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줄을 나선열(parastichy)이라 하는데, 두 방향의 나선 개수를 세면 흔히 연속한 피보나치 수 쌍이 나옵니다. 작은 머리에서는 (34, 55), 큰 머리에서는 (55, 89)나 (89, 144) 같은 식입니다. 큰 머리일수록 더 높은 피보나치 수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어, 한 머리에 모든 쌍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꽃과 씨앗이 이루는 시계방향·반시계방향의 맞물린 나선. 두 방향 나선의 개수는 흔히 연속한 피보나치 수로 나타난다.
통꽃과 씨앗이 이루는 시계방향·반시계방향의 맞물린 나선. 두 방향 나선의 개수는 흔히 연속한 피보나치 수로 나타난다.
Runika Bordi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이 배열의 핵심에는 ‘황금각’이 있습니다. 새로 생기는 씨앗은 직전 씨앗에서 약 137.5°만큼 돌아간 자리에 놓입니다. 황금각은 원둘레를 황금비로 나눈 작은 쪽 각으로, 정확히는 360/φ², 즉 180(3−√5)°이며 수치로는 약 137.5078°입니다(흔히 약 137.5°로 씁니다). 황금각은 ‘가장 무리수에 가까운’ 비율이라, 아무리 씨앗을 쌓아 올려도 같은 방사선 위에 겹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새 씨앗은 늘 가장 넓게 비어 있는 자리에 놓이고, 결과적으로 빈틈이 가장 적은 균일한 배열이 만들어집니다. 한 측정 연구는 해바라기 머리의 발산각이 약 137.508° 부근에 매우 정밀하게 고정됨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다만 머리 안 위치에 따라 국소 편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식물은 수학을 ‘계산’하지 않는다 — 창발하는 질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오해를 짚어야 합니다. 해바라기가 피보나치 수를 ‘알고 계산해서’ 씨앗을 배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밀은 훨씬 단순한 국소 규칙에 있습니다. 성장점에서 새로 생긴 원기(primordium)는 주변에 새 원기가 생기는 것을 억제합니다. 그래서 다음 원기는 억제가 가장 약한 자리, 곧 가장 넓게 비어 있는 자리에 생깁니다. 역사적으로는 Hofmeister·Snow의 기하·물리적 규칙으로, 현대 분자생물학에서는 식물호르몬 옥신(auxin)의 분포로 설명되는데, 둘은 같은 현상의 다른 설명 층위일 뿐 ‘가장 빈자리를 채운다’는 공통 원리로 묶입니다. 이 단순한 반복만으로 황금각과 피보나치 나선이 저절로 나타납니다. 황금각은 식물이 목표로 삼는 값이 아니라, 이 과정이 자연히 수렴하는 끌개(attractor)인 셈입니다.

황금각(약 137.5°)으로 점을 하나씩 돌려 찍기만 해도, 빈틈없이 맞물린 두 방향의 나선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해바라기 씨앗 배열의 원리를 표현한 개념도다.
황금각(약 137.5°)으로 점을 하나씩 돌려 찍기만 해도, 빈틈없이 맞물린 두 방향의 나선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해바라기 씨앗 배열의 원리를 표현한 개념도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 황금각 패킹 개념도

이 창발을 물리적으로 재현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Douady와 Couder(1992)는 자기장 속 원판 중심에 일정 간격으로 자성 유체 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방울들은 서로 밀어내며 바깥으로 밀려 나갔는데, 방울을 빠르게 떨어뜨리면 발산각이 180°였지만, 도입 빈도(논문이 하나의 매개변수로 기술한 값)를 낮추자 발산각이 황금각으로 수렴했습니다. 생명체의 의도 없이도, 단 하나의 조건만으로 황금각 배열이 자기조직적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그런데 늘 완벽한 피보나치는 아니다 — 시민과학이 밝힌 변이

마지막으로, 과장을 막는 한 문단이 필요합니다. 실제 해바라기가 항상 완벽한 피보나치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Swinton, Ochu와 ‘MSI Turing’s Sunflower Consortium'(2016)은 총 657개의 해바라기를 분석한 대규모 시민과학 실험으로 이 변이를 정량화했습니다. 가장 신뢰도 높은 검토 데이터셋에서 768개의 나선열 수 가운데 565개(약 74%)가 피보나치 수였고, 다른 피보나치 구조까지 합치면 632개가 피보나치 계열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약 다섯 중 하나꼴(약 18%, 136개)은 비(非)피보나치였습니다.

변이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피보나치 계열 632개 중 표준 피보나치가 565개, 루카스(Lucas) 수가 41개, 더블 피보나치가 25개, 그리고 F4 수열이 1개였습니다. 비피보나치 136개 가운데서는 ‘피보나치−1′(49개)이 ‘피보나치+1′(17개)보다 유의하게 자주 나타났습니다(p ≈ 3.3×10⁻⁵). 이런 예외들은 하나의 단순 모델로는 다 설명되지 않아, 더 정교한 모형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황금각과 피보나치는 강력한 경향이지 절대 법칙은 아닌 것입니다.

닫는 글 — 단순한 규칙에서 피어나는 질서

해바라기는 두 가지 설계 원리를 한 몸에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을 읽는 체내 시계가 줄기의 양면을 번갈아 늘려 해를 좇게 하다가, 다 자라면 추적을 멈추고 동쪽을 향해 아침의 온기와 수분 곤충을 끌어들이는 정교한 타이밍의 원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장 빈자리를 채운다’는 단 하나의 국소 규칙에서 황금각과 피보나치 나선이라는 정연한 질서가 저절로 솟아나는, 그러나 늘 완벽하지는 않은 창발의 원리입니다. 한 송이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수천 송이의 협력이고, 그 씨앗들이 단순한 규칙 하나로 빈틈없이 채워진다는 사실은, 단순함에서 정교한 질서가 피어나는 창조 세계의 한 결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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