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북쪽 하늘에 녹색 빛의 장막이 천천히 일렁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사진으로 본 그 경이로운 풍경. 하지만 이 빛이 사실은 태양에서 약 1억 5천만 km를 날아온 입자가 지구의 자기장과 대기를 만나 그리는 그림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오로라는 단순한 ‘하늘의 색’이 아니라, 태양과 지구와 대기가 함께 그려 내는 하나의 연결된 현상입니다.

NPS (US National Park Service)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 출처
모든 것은 태양에서 시작된다
오로라의 출발점은 태양입니다. 태양은 초속 약 300~500 km로 움직이는 하전 입자(전자·양성자)의 흐름인 태양풍을 끊임없이 내뿜습니다. 평소에도 이 바람은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가지만, 때때로 태양은 훨씬 격렬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바로 코로나질량방출(CME)입니다. 이때는 최대 초속 약 2,000 km에 이르는 거대한 플라즈마 덩어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빠르면 1~3일 만에 지구에 도달합니다.

Steve Jurvetson (NASA/SDO 자료)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지구의 방패, 그리고 그 빈틈
다행히 지구에는 방패가 있습니다. 지구 자기권은 태양풍 대부분을 옆으로 비껴가게 만드는 보호막입니다. 그런데 이 방패에는 미묘한 ‘빈틈’이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행성간 자기장(IMF)이 남쪽을 향할 때, 지구의 낮 쪽에서 자기 재결합이 일어나며 자기력선이 밤 쪽의 긴 꼬리, 즉 자기꼬리(magnetotail)로 끌려갑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자기꼬리에 에너지가 임계치를 넘으면 다시 한번 자기 재결합이 일어나며 입자가 가속됩니다. 지구 방향으로 튕겨 나온 전자와 이온은 자기력선을 따라 극지방 고층 대기로 쏟아져 내립니다. 이 현상을 오로라 서브폭풍(substorm)이라 부르며, 우리가 보는 화려한 빛의 향연이 바로 이때 펼쳐집니다.
빛이 되는 순간
극지 대기로 쏟아진 전자는 산소와 질소의 원자·분자에 부딪혀 이들을 ‘들뜬 상태’로 만듭니다. 들뜬 입자가 다시 안정된 바닥상태로 돌아오면서 에너지를 빛으로 내놓는데, 어떤 입자가 어느 고도에서 빛나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집니다.

NASA Johnson Space Cente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 출처
가장 흔히 보이는 녹색은 산소 원자가 내는 557.7 nm의 빛입니다. 산소의 들뜬 1S 상태가 약 0.7초 만에 전이하며 생기고, 주로 고도 약 100~150 km에서 나타납니다(관측 연구의 평균 피크 고도는 약 114.8 km). 산소가 워낙 흔하고 전이도 빠르기에 녹색은 오로라의 ‘기본색’이 됩니다.

Zheng Xu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출처
훨씬 더 높은 곳에서는 적색이 나타납니다. 적색(630.0 nm)은 산소의 1D 상태에서 나오는데, 이 상태의 수명이 약 110초로 무척 깁니다. 그래서 다른 입자와 부딪혀 에너지를 빼앗기는 충돌(quenching)이 드문, 고도 약 200 km 이상의 희박한 대기에서만 살아남아 빛납니다. 한편 분자 질소 이온은 427.8 nm의 청보라색을 내며, 녹색 장막의 가장자리에 보라 기운을 더합니다.

Giuseppe Milo · CC BY 3.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커튼과 코로나 — 형태가 말하는 것
오로라가 수직으로 늘어선 커튼처럼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전 입자가 자기력선을 따라 나선을 그리며 침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로라의 형태는 곧 자기력선의 모양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크(호)는 동서로 수천 km까지 길게 뻗지만 폭은 1~10 km에 불과한 아주 얇은 발광 커튼입니다.
이 빛은 고도 약 90~300 km의 열권에서 발생합니다. 70 km 미만에서 관측된 사례는 없고, 150 km 이상도 약 6.5%에 그치며, 가장 빈번한 발광 고도는 약 100 km입니다(스퇴르머의 삼각측량으로 밝혀진 값). 천정 바로 위에서 커튼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듯한 장관, 즉 코로나가 펼쳐집니다.

StormChaserAmeli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어디서, 언제 볼 수 있나
오로라는 아무 데서나 보이지 않습니다. 지자기 위도 약 65~75도를 중심으로 한 고리 모양의 오로라 타원체(auroral oval)를 따라 발생하며, 그 중심선은 지자기 위도 약 67도 부근입니다. 흥미롭게도 북극광(aurora borealis)과 남극광(aurora australis)은 자기적으로 켤레(conjugate) 관계여서 대칭으로 나타납니다. 한쪽이 활발해지면 지구 반대편도 동시에 활발해지는 것입니다.

Chris Danals, National Science Foundatio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 출처
오로라의 활동은 태양의 리듬을 따릅니다. 태양 활동은 약 11년 주기로 극대기와 극소기를 반복하는데, 대규모 지자기 폭풍은 극대기 전후에 가장 잦아 오로라 활동도 이때 최고조에 이릅니다. 또 Kp 지수가 높을수록 오로라 타원체가 더 낮은 위도로 확장됩니다. Kp 5(G1)에서는 자기위도 약 55도, Kp 9(G5)에서는 자기위도 30도 이하까지도 관측이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2024년 5월의 G5급 지자기 폭풍은 오로라를 이례적인 저위도까지 끌어내렸고, NOAA는 이를 500년 만에 손꼽히는 강력한 오로라로 평가했습니다.
대표적인 관측 명소로는 노르웨이 트롬쇠,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캐나다 옐로나이프, 아이슬란드, 핀란드 라플란드 등이 꼽힙니다. 최우수 지점에서는 한 해에 200회 이상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AstroAnthony · CC BY 4.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사람들이 이름 붙이고 기록한 빛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라는 이름은 로마의 새벽 여신 아우로라(Aurora)와 그리스 북풍의 신 보레아스(Boreas)를 합친 말입니다. 갈릴레오가 1619년경 사용했다는 통설과, 피에르 가센디가 퍼뜨렸다는 이설이 함께 전해집니다.
오로라에 대한 인류의 기록은 놀랍도록 오래되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날짜 기록은 기원전 567년 바빌로니아 천문일기의 설형문자 기술로, ‘서쪽에서 붉은 광휘’를 묘사합니다. 지속 시간과 지형 정보로 미루어 지상 화재 가능성이 배제되어 오로라로 분류되었습니다. 또 중국의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기원전 10세기경 주 소왕 말기로 추정되는 천체 현상이 기록되어 오로라 후보로 여겨집니다. 당시 북자기극이 지금보다 중국에 더 가까웠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까운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1859년 캐링턴 사건입니다. 역사상 손꼽히는 이 태양폭풍 때는 쿠바와 콜롬비아 같은 저위도에서도 오로라가 보였고, 당시 최첨단 통신망이던 전신 시스템이 마비되었습니다. 일부 구간에서는 배터리 없이 오로라가 유도한 전류만으로 약 2시간 동안 송수신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리처드 캐링턴과 리처드 호지슨이 1859년 9월 1일 태양 표면의 섬광을 관측한 것은 최초로 문서화된 태양 플레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노르드 신화는 오로라를 발키리의 갑옷에서 번지는 빛, 또는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로 보았고(1230년경 『왕의 거울』에 norðrljós로 기록), 이누이트 전승은 조상의 영혼이 춤추는 모습으로 여겼습니다.
하나의 연결된 그림
태양에서 출발한 입자, 그 입자를 막고 또 흘려보내는 지구의 자기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빛을 내는 고층 대기의 산소와 질소. 오로라는 이 셋이 함께 그려 내는 하나의 연결된 그림입니다. 멀리 떨어진 천체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대기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한 폭의 빛이 된다는 사실은, 창조된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려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 줍니다. 다음에 오로라 사진을 본다면, 그 녹색과 적색 한 줄기마다 태양에서 대기까지의 긴 여정이 담겨 있음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Aurora — Wikipedia
- Auroras — NASA Science
- Aurora — NOAA Science On a Sphere
- Aurora Tutorial — NOAA Space Weather Prediction Center
- Magnetic Reconnection — ESA Science (Cluster)
- The altitude of green 557.7 nm and blue 427.8 nm aurora — Annales Geophysicae (2023)
- Auroral ovals at the two geomagnetic poles — Royal Belgian Inst. for Space Aeronomy
- Aurora Australis Observed from the ISS — NASA Earth Observatory
- Earliest datable records of aurora-like phenomena (Babylonia) — PMC
- Carrington Event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