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파리지옥은 어떻게 ‘둘’을 세고 덫을 닫을까 — 잎이 가진 셈의 비밀

식물은 가만히 있는 존재라고들 한다. 햇빛을 받아 조용히 자라고, 바람에 흔들릴 뿐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못한다고. 그런데 미국 동남부의 어느 좁은 습지에는, 이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식물이 한 종 산다. 잎 끝이 입처럼 벌어져 있다가 곤충이 들어오면 0.1초 남짓 만에 철컥 닫히는 식물. 우리에게 ‘파리지옥’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디오나에아 무스키풀라(Dionaea muscipula)다.

그런데 이 식물에 대해 정작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덫이 빨리 닫힌다’는 데 있지 않다. 진짜 놀라운 점은, 뇌도 신경도 근육도 없는 한 장의 잎이 무언가를 ‘세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리지옥은 자극이 몇 번 들어왔는지를 헤아려, 그 숫자에 따라 덫을 닫을지, 소화액을 분비할지, 더 많은 영양을 빨아들일지를 단계적으로 결정한다. 오늘 이 글에서 당신이 가져갈 단 하나의 핵심은 이것이다. 파리지옥은 신경계 없이도 자극의 ‘횟수’를 세어, 그 셈의 결과로 자신의 행동과 대사를 켜고 끈다.

활짝 열린 파리지옥의 덫. 두 갈래로 벌어진 잎 안쪽에 감각모(트리거 헤어)가 솟아 있고, 가장자리에는 빗살 같은 가시(연모)가 늘어서 있다. 곤충이 안쪽 감각모를 건드리길 기다리는 '장전된' 상태다.
활짝 열린 파리지옥의 덫. 두 갈래로 벌어진 잎 안쪽에 감각모(트리거 헤어)가 솟아 있고, 가장자리에는 빗살 같은 가시(연모)가 늘어서 있다. 곤충이 안쪽 감각모를 건드리길 기다리는 '장전된' 상태다.
David J. Stang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 출처

다윈이 멈춰 선 식물

이 식물에 매혹된 사람의 명단에는 찰스 다윈도 들어 있다. 그는 1875년 저서 『식충식물(Insectivorous Plants)』에서 파리지옥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식물 중 하나(one of the most wonderful plants in the world)”라고 적었다. 흔히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식물’이라고 단정형으로 옮겨지곤 하지만, 다윈의 원문은 어디까지나 ‘중 하나(one of)’다. 진화론으로 생물계 전체를 꿰뚫어 본 사람이, 수많은 경이 가운데 이 작은 습지 식물에 특별한 한 자리를 내준 것이다.

찰스 다윈(1809–1882). 그는 1875년 저서 『식충식물(Insectivorous Plants)』에서 파리지옥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식물 중 하나'라고 적었다.
찰스 다윈(1809–1882). 그는 1875년 저서 『식충식물(Insectivorous Plants)』에서 파리지옥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식물 중 하나'라고 적었다.
촬영 Julia Margaret Cameron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 출처

다윈을 사로잡은 것은 운동의 속도와 힘이었다. 그는 같은 책에서 덫의 가장자리에 늘어선 가시들이 닫히는 순간 곤충을 가두는 ‘끔찍한 감옥(horrid prison)’을 이룬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중간 크기의 곤충은 이 가시 우리에 갇히지만, 아주 작은 곤충은 가시 틈으로 빠져나가 식물이 소화 에너지를 헛되이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끔찍한 감옥’ 가설은 2018년에 와서야 실험으로 검증되었다. 다윈의 직관은 한 세기를 훌쩍 넘겨서 옳았다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덫의 구조 — 한 장의 잎이 만든 두 개의 손바닥

파리지옥의 덫은 사실 별도의 기관이 아니라, 변형된 잎 한 장의 끝부분이다. 잎몸의 끝이 두 개의 엽(lobe)으로 발달하고, 두 엽이 가운데 중앙맥(midrib)을 경첩처럼 삼아 접힌다. 마치 두 손바닥을 가운데 손금에서 맞붙이듯 닫히는 구조다.

각 엽의 가장자리에는 길고 뾰족한 가시(cilia)들이 빗살처럼 늘어서 있다. 덫이 닫히면 양쪽 가시가 깍지를 끼듯 서로 맞물려, 안에 든 먹이를 가두는 ‘우리(cage)’를 형성한다. 영국 큐 왕립식물원의 설명을 빌리면, “잎 가장자리에 늘어선 맞물리는 이빨들이 덫을 봉인한다.” 이 가시들이 바로 다윈이 말한 ‘끔찍한 감옥’의 창살인 셈이다.

자극을 받아 맞물린 덫. 양쪽 가장자리의 가시들이 깍지 끼듯 엇갈려 우리(cage)를 이룬다. 감각모를 짧은 시간 안에 두 번 건드리면 덫은 0.1초 안팎으로 이렇게 닫힌다.
자극을 받아 맞물린 덫. 양쪽 가장자리의 가시들이 깍지 끼듯 엇갈려 우리(cage)를 이룬다. 감각모를 짧은 시간 안에 두 번 건드리면 덫은 0.1초 안팎으로 이렇게 닫힌다.
Tippitiwichet (Flickr)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출처

그리고 각 엽의 안쪽 면에는, 이 식물의 핵심 장치인 감각모(trigger hair)가 솟아 있다. 흔히 한 엽에 3개씩, 그래서 덫 하나당 6개가 표준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것이 엄격하게 고정된 숫자는 아니다. 학술 자료를 보면 “양엽 덫의 각 절반에는 3~5개의 기계감각모가 반(半)삼각형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기술하는 경우도 있어, 개체나 잎에 따라 엽당 3~5개의 변이가 보고된다. 즉 ‘엽당 3개’는 가장 흔한 전형값이지 절대 법칙은 아니다. 이 작은 털 몇 개가, 이제부터 이야기할 모든 ‘셈’의 출발점이다.

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어야 할까

덫을 닫는 데에는 분명한 규칙이 있다. 곤충이 감각모를 약 20초 이내에 두 번 건드려야 비로소 덫이 닫힌다. 한 감각모를 연달아 두 번 건드리든, 서로 다른 두 감각모를 차례로 건드리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20초 안에 두 번’이라는 조건이다.

왜 굳이 두 번일까. 답은 식물의 ‘경제학’에 있다. 습지에는 빗방울도 떨어지고, 바람에 날린 모래알이나 나뭇잎 부스러기도 덫 안으로 들어온다. 만약 단 한 번의 접촉으로 덫이 닫혀 버린다면, 파리지옥은 먹이도 아닌 빗방울 때문에 애써 만든 덫을 닫고 다시 여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첫 번째 자극만으로는 보통 닫히지 않는다. 대신 첫 자극의 정보는 약 20여 초 동안 식물 안에 ‘저장’된다. 과학자들이 이를 일종의 단기 기억이라 부르는 이유다.

안쪽이 붉게 물든 덫. 잎 안쪽 면은 안토시아닌 색소로 붉어지며, 이 빛깔과 가장자리 꿀샘에서 나오는 냄새가 곤충을 끌어들이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본다.
안쪽이 붉게 물든 덫. 잎 안쪽 면은 안토시아닌 색소로 붉어지며, 이 빛깔과 가장자리 꿀샘에서 나오는 냄새가 곤충을 끌어들이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본다.
Sylvain Bezy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 출처

두 번째 자극이 이 20초의 창(window) 안에 들어오면, 식물은 비로소 ‘이것은 우연한 부스러기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다’라고 판단하고 덫을 발화시킨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은 우연이 아니다. 신경계도 없는 한 장의 잎이, 시간을 재고 횟수를 헤아려 ‘진짜 먹이’와 ‘헛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잎이 ‘센다’는 것의 진짜 의미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심장이다. 감각모가 휘어지면, 그 밑동에서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라는 전기 신호가 발생한다. 이 신호는 동물의 신경이 정보를 전달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전기 펄스다. 파리지옥은 바로 이 전기 펄스가 몇 번 일어났는지를 ‘센다’.

여기서 ‘센다(counts)’는 표현은 물론 비유다. 파리지옥에게 숫자 개념이나 의식이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식물의 세포들이 전기 신호의 누적 횟수에 따라 서로 다른 생화학 반응을 단계적으로 켜는 방식이, 마치 숫자를 헤아려 단계를 밟는 것처럼 정확하게 작동한다는 의미다. 이 비유를 과학적 사실로 끌어올린 것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라이너 헤드리히(Rainer Hedrich) 연구진의 2016년 연구다. 옌스 뵘(J. Böhm) 등이 발표한 이 논문의 제목 자체가 그것을 선언한다. “파리지옥 디오나에아 무스키풀라는 먹이가 유발한 활동전위를 세어 나트륨 흡수를 유도한다”(Current Biology 26권 3호, 286~295쪽).

한 포기에서 여러 개의 덫이 방사형으로 돋은 모습. 각 덫은 잎 끝이 변형된 기관이고, 그 아래 넓은 잎자루는 햇빛을 받아 정상적으로 광합성을 한다.
한 포기에서 여러 개의 덫이 방사형으로 돋은 모습. 각 덫은 잎 끝이 변형된 기관이고, 그 아래 넓은 잎자루는 햇빛을 받아 정상적으로 광합성을 한다.
User:Citro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연구진이 밝혀낸 셈의 단계는 놀랍도록 또렷하다.

  • 2번째 신호 — 덫이 닫힌다. 앞서 말한 ’20초 안에 두 번’이 바로 이 두 번째 활동전위에 해당한다. 두 번의 전기 펄스가 누적되면 덫이 발화한다.
  • 3번째 신호 — 호르몬이 분비된다. 세 번째 신호부터 식물은 자스몬산(jasmonate)이라는 ‘접촉 호르몬’을 만들기 시작한다. 잡힌 먹이가 발버둥치며 감각모를 계속 건드리면, 이 호르몬이 소화 준비 명령을 내린다.
  • 5번째 신호 — 소화가 본격적으로 켜진다. 다섯 번째 신호에 이르면 소화샘이 활성화되어 소화 효소가 분비되고, 먹이에서 나오는 나트륨(Na⁺)을 빨아들이는 흡수 장치가 가동된다.

이 시스템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정량적이라는 데 있다. 발버둥이 거셀수록, 다시 말해 먹이가 클수록 감각모를 건드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러면 활동전위도 더 많이 쌓인다. 뵘 연구진은 자극 횟수가 많아질수록 나트륨 수송체 유전자(DmHKT1)의 발현 전사체 수가 비례해 늘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큰 먹이가 들어오면 그만큼 더 많은 소화 효소와 흡수 장치를 동원하는 것이다. 작은 먹이에 대형 만찬을 차릴 필요가 없으니, 식물은 먹이의 크기에 정확히 맞춰 소화 자원을 투입한다. 자극을 세어 그 결과를 대사에 연결하는 이 정교함이야말로, 파리지옥이 ‘경이로운 식물 중 하나’로 불리는 이유다.

0.1초의 비밀 — 잎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닫힐까

두 번째 신호가 들어와 ‘닫혀라’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도, 식물 세포 안의 물이 천천히 이동하는 것만으로는 그 속도를 설명할 수 없다. 단순한 수분 이동은 분(分) 단위로 일어나는 느린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체 파리지옥의 덫은 약 100~300밀리초, 그러니까 0.1~0.3초 만에 닫힌다. 큐 왕립식물원은 이를 “약 10분의 1초”라고 표현한다. 눈 깜짝할 사이다.

비밀은 물리학에 있다. 평소 파리지옥의 두 엽은 바깥쪽으로 볼록하게(convex) 휘어진 상태로, 팽압(turgor)을 이용해 탄성 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채 긴장하고 있다. 마치 안쪽으로 뒤집히기 직전까지 휘어 놓은 플라스틱 뚜껑이나, 손가락으로 눌러 뒤집기 직전의 장난감처럼. 이렇게 쌓인 긴장(prestress)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엽의 곡률이 볼록에서 오목(concave)으로 한꺼번에 뒤집히면서 머금고 있던 탄성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한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탄성 좌굴(snap-buckling) 불안정성이라 부른다.

즉 덫이 닫히는 동작은 ‘능동적인 수압 작동’과 ‘수동적인 탄성 뒤집힘’의 절묘한 조합이다. 식물이 신호를 받아 세포의 물을 조금 움직여 임계점을 건드리면, 나머지는 휘어 있던 잎의 물리적 구조가 순식간에 해치운다. 적은 에너지로 빠른 동작을 만들어내는, 자연이 발견한 똑똑한 지름길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0.1초라는 속도는 빠른 식물 운동의 대표 사례로 자주 인용되지만, ‘식물계에서 가장 빠른 운동’은 아니다. 같은 식충식물인 통발(Utricularia)의 흡입덫은 약 0.5밀리초(0.0005초) 수준으로 작동해, 파리지옥보다 수백 배나 빠르다. 그러니 파리지옥의 속도를 두고 ‘식물 중 최고’라고 말하면 사실과 어긋난다. 그저 0.1~0.3초라는 그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라고 해 두자. 참고로, 씨앗에서 갓 자란 어린 덫은 같은 동작에 최대 5초까지 걸리기도 한다. 빠른 덫이 되는 데에도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외위(外胃)가 되는 잎 — 소화의 시간

덫이 닫히고 다섯 번째 신호까지 들어와 소화 모드가 켜지면, 두 엽은 더욱 단단히 밀착해 거의 완전히 밀폐된 공간을 만든다. 이 닫힌 덫은 사실상 식물의 외부 위장, 즉 ‘외위(外胃)’가 된다. 그 안으로 가수분해 효소가 쏟아진다. 곤충의 외골격을 이루는 키틴질을 분해하는 키티나아제(GH18 계열) 같은 효소들이 먹이를 차근차근 녹인다.

소화에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큐 왕립식물원은 “곤충이 다 소화되면 약 10일 뒤에 덫이 다시 열린다”고 설명하고, 다른 연구는 전체 사이클의 평균을 약 7일로 본다. 먹이 크기와 개체에 따라 대략 5~12일 범위다. 소화가 끝나면 키틴질 외골격, 그러니까 곤충의 빈 껍데기만 남고 덫이 다시 열린다. 닫힌 덫 안에서 곤충의 텅 빈 껍질이 발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대로 헛자극, 그러니까 빗방울이나 부스러기에 속아 닫혔는데 안에 먹이가 없을 때는 어떻게 될까. 이때는 굳이 며칠씩 닫고 있을 이유가 없으므로, 약 16~44시간 만에 다시 열린다. 소화할 게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가늠해 닫혀 있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파리지옥의 일관된 원칙이 보인다. 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이름과 달리, 파리는 거의 먹지 않는다

‘파리지옥’이라는 이름, 영어로도 ‘Venus flytrap’, 즉 ‘파리덫’이다. 그런데 정작 이 식물의 식단을 들여다보면 이름이 무색해진다. 실제로 잡히는 먹이 가운데 파리 같은 날벌레는 5%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슨과 고텔리(Ellison & Gotelli)가 2009년에 정리한 먹이 구성을 보면, 개미가 약 33%, 거미가 약 30%, 딱정벌레가 약 10%, 메뚜기류가 약 10%를 차지하고, 날벌레는 5% 미만이다. 별도의 현장 연구(허친스와 루켄, 2006)도 9개월간 3계절에 걸쳐 580개의 덫을 조사한 결과 거미 31%, 개미 26%, 딱정벌레 12%로 보고했다. 두 연구 모두 한목소리로 말한다. 파리지옥의 주된 먹이는 날아다니는 벌레가 아니라, 바닥을 기어 다니는 절지동물이라고. 땅에 붙어 자라는 덫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덫은 지면 가까이 벌어져 있으니, 기어 다니는 개미와 거미가 걸려들기 쉽다.

2018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구는 한술 더 떠 재미있는 사실을 밝혔다. 파리지옥의 꽃을 찾아오는 방문객의 87%는 날 수 있는 곤충인 반면, 덫에 잡히는 먹이의 80%는 날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다시 말해 파리지옥은 자신을 수분(受粉)시켜 주는 고마운 곤충들은 거의 잡아먹지 않는다. 꽃은 높은 줄기 끝에 피우고 덫은 낮은 곳에 두어, 먹이와 수분 매개자를 공간적으로 분리해 놓은 것이다. 연구자들이 농담 삼아 이 식물을 차라리 ‘비너스 거미덫(Venus Spidertrap)’이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이름 하나에도 우리가 자연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바라봐 왔는지가 담겨 있다.

길게 솟은 꽃대 끝에 맺힌 꽃봉오리(체코 브르노 식물원 전시 개체). 파리지옥의 꽃은 덫보다 한참 위에서 피는데, 꽃가루를 옮겨 줄 곤충을 제 덫으로 잡지 않으려는 배치로 해석된다.
길게 솟은 꽃대 끝에 맺힌 꽃봉오리(체코 브르노 식물원 전시 개체). 파리지옥의 꽃은 덫보다 한참 위에서 피는데, 꽃가루를 옮겨 줄 곤충을 제 덫으로 잡지 않으려는 배치로 해석된다.
Michal Klajba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 출처

왜 굳이 곤충을 먹게 되었나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멀쩡히 광합성을 하는 녹색 식물이 왜 곤충을 잡아먹는 번거로운 길을 택했을까. 파리지옥은 분명 정상적으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고, 곤충은 결코 에너지원이 아니다. 탄소와 에너지는 다른 식물과 똑같이 햇빛과 광합성으로 얻는다.

비밀은 그들이 사는 땅에 있다. 파리지옥의 자생지는 질소(N)와 인(P)이 극도로 부족한 산성 습지다. 식물이 단백질을 만들려면 질소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빈영양 토양은 그것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 그래서 파리지옥은 부족한 질소와 인을 곤충의 몸에서 ‘보충’하는 길을 진화시켰다. 곤충은 식사가 아니라 일종의 ‘영양제’인 셈이다. 실제로 한 연구는 “먹이에서 흡수한 제한 영양소, 곧 질소와 인의 유입이 광합성을 강화한다”고 설명한다. 곤충에서 얻은 질소와 인이 다시 광합성 능력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이다. 앞서 본 나트륨 흡수도 이 빈영양 환경에 대한 적응의 일부다.

식충성(食蟲性)은 파리지옥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꽃식물(속씨식물)에서 식충성은 최소 여섯 번이나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양이 부족한 땅이라는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식물 계통이 비슷한 답에 도달한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부족한 양분을 동물에게서 빌린다’는 전략은, 자연이 여러 번 거듭 발견할 만큼 효과적인 해법이었던 모양이다.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고향, 그리고 위태로운 미래

이토록 유명한 식물이지만, 파리지옥의 야생 고향은 놀랄 만큼 좁다. 전 세계에서 오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해안 평야에만 자생하며, 현재 알려진 모든 자생지는 노스캐롤라이나 윌밍턴을 중심으로 반경 약 90킬로미터(56마일) 안에 들어온다. 우리가 화분으로 흔히 마주치는 이 식물의 진짜 야생 분포가, 지도 위에서는 손바닥만 한 동그라미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습지에서 자라는 파리지옥. 파리지옥은 전 세계에서 캐롤라이나 일대의 좁은 솔숲 습지에만 자생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습지에서 자라는 파리지옥. 파리지옥은 전 세계에서 캐롤라이나 일대의 좁은 솔숲 습지에만 자생한다.
ncwetlands.org · CC0 · Wikimedia Commons · 출처

그 안에서도 파리지옥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롱리프 파인(longleaf pine) 사바나와 습지의, 질소·인이 부족한 산성 토양. 모래와 이탄이 섞인 축축하고 산성인 땅.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햇빛이다. 보통 수관 피복(나무 그늘)이 10% 미만인, 거의 완전한 일광 아래에서만 자란다. 타원형 습지인 ‘캐롤라이나 베이(Carolina bay)’의 가장자리도 즐겨 찾는 자리다.

역설적이게도 이 식물은 불에 의존한다. 작고 더디게 자라는 파리지옥은 키 큰 경쟁 식물에 그늘이 지면 햇빛 부족으로 쇠퇴한다. 그런데 3~5년 주기로 일어나는 산불이 이 경쟁 식생을 주기적으로 태워 없애 주면, 다시 햇빛이 바닥까지 들어와 파리지옥이 번성한다. 불이 친구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이 산불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역설적으로 파리지옥의 서식지가 그늘에 묻혀 사라진다.

야생 개체수의 추이는 우려스럽다. 1979년 약 450만 개체로 추정되던 야생 파리지옥은 2019년 조사에서 약 30만 2천 개체로 집계되었다. 40년 사이 90%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위협의 양대 축은 서식지 파괴와 밀렵(poaching)이다. 원예 시장에서 조직배양으로 대량 증식된 개체를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데도, 야생에서 몰래 캐 가는 도채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은 씁쓸한 역설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2014년 파리지옥 밀렵을 중범죄(felony)로 규정했고, 실제로 970개체를 캔 사람이 17개월 징역을 받고, 2019년에는 한 남성이 73건의 밀렵 혐의로 기소되어 보석금이 75만 달러에 이른 사례도 있다.

보전 지위를 보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은 파리지옥을 ‘취약(Vulnerable)’으로 분류하고, 국제거래는 CITES 부속서 II로 규제된다. 한편 미국 연방 차원에서는 2016년 멸종위기종법(ESA) 등재 청원이 제기되었으나, 2023년 7월 미국 어류야생국(USFWS)은 ‘등재 불필요(not warranted)’로 최종 결정했다. 여덟 개의 ‘회복력 높은’ 개체군이 보호·관리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위협종 지위와 밀렵 중범죄 규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파리지옥은 지금 ‘아직은 괜찮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는’ 미묘한 자리에 서 있다.

발견의 기록 — 어느 총독의 편지에서 비너스의 덫까지

이 식물이 처음 유럽인의 기록에 등장한 것은 1759년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식민지 총독 아서 돕스(Arthur Dobbs)가 그해 4월 2일 영국 박물학자 피터 콜린슨에게 보낸 편지에, “무엇이든 닿으면 닫히는 일종의 감응성 파리잡이가 있다. 위도 34도에서는 자라지만 35도에서는 자라지 않는다”고 적은 것이 알려진 최초의 기재다. 이듬해 1월의 후속 편지에서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덫의 가장자리가 ‘용수철식 여우덫’처럼 들쭉날쭉하며 ‘순식간에 닫힌다’고 묘사하고 이를 ‘Fly trap Sensitive’라 불렀다. 당시 토착·식민지 별칭으로는 ‘Tipitiwitchet'(티피티위쳇) 같은 이름도 쓰였는데, 이는 레나페 계열 언어에서 ‘(잎이) 휘감는 것들’이라는 뜻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학명과 영어 이름은 영국 박물학자 존 엘리스(John Ellis)에게서 나왔다. 그는 1768년 칼 린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식물을 기재하며 학명 Dionaea muscipula와 영어 통칭 ‘Venus’s Flytrap’을 제안했다. 속명 디오나에아(Dionaea)는 ‘디오네의 딸’, 곧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가리키는 별칭이고, 종소명 무스키풀라(muscipula)는 라틴어로 ‘쥐덫’ 또는 ‘파리덫’을 뜻한다. 엘리스는 린네에게 이 식물을 ‘이빨 달린 쥐덫’이라고 묘사했다. 아름다움의 여신과 무시무시한 덫이 한 이름 안에 공존하는, 묘하게 어울리는 작명이다.

메리 보 월컷이 그린 파리지옥 식물 세밀화. 길게 뻗은 꽃대와 잎(덫)을 함께 담았다. 파리지옥은 일찍부터 식물학자와 화가의 관심을 끈 식물이다.
메리 보 월컷이 그린 파리지옥 식물 세밀화. 길게 뻗은 꽃대와 잎(덫)을 함께 담았다. 파리지옥은 일찍부터 식물학자와 화가의 관심을 끈 식물이다.
Mary Vaux Walcott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 출처

그 뒤로 파리지옥은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많이 재배되는 식충식물이 되었다. 위키피디아의 표현을 빌리면 “단연 가장 흔히 알려지고 재배되는 식충식물”이다. 화분으로 팔리는 개체 대부분은 야생이 아니라 조직배양으로 증식된 것이다. 그러나 이 원예적 인기와 야생에서의 위태로움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떤 생물을 ‘소비’하는 방식과 그 생물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식 사이의 간극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한 장의 잎이 가르쳐 주는 것

파리지옥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뇌도 신경도 근육도 없는 한 장의 잎이, 감각모가 휘는 전기 신호의 횟수를 세어 ‘둘’에서 덫을 닫고, ‘셋’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며, ‘다섯’에서 소화를 켠다. 빗방울 한 번은 무시하고 두 번의 진짜 자극은 붙잡으며, 먹이가 클수록 더 많은 효소를 동원하고, 안이 비었으면 일찍 다시 연다. 이 모든 것이 의식이나 의도 없이, 오직 세포의 전기화학적 규칙만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흔히 ‘세다’, ‘기억하다’, ‘결정하다’ 같은 말을 동물과 인간의 전유물처럼 여긴다. 그러나 파리지옥은 그 비유를 식물에게 빌려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다윈이 이 작은 습지 식물 앞에서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식물 중 하나’라고 적으며 멈춰 섰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생명은 신경계가 없어도 ‘셈’에 가까운 일을 해낼 만큼,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정교하다는 것. 그것이 오늘 이 작은 덫이 우리에게 건네는 한 문장이다.

참고 자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