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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반원이 아니라 원이다 — 물방울 하나가 그리는 42°의 기하학

비 갠 오후, 해를 등지고 서면 하늘 저편에 무지개가 걸린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무지개는 언제 보아도, 어디서 보아도 늘 같은 크기로 뜬다. 가까이 다가가도 커지지 않고, 물러서도 작아지지 않는다. 옆 사람에게 ‘저 무지개 끝이 저 나무에 닿았어’라고 말해도, 그 사람 눈에는 무지개가 조금 다른 자리에 있다. 무지개에는 정해진 ‘위치’가 없기 때문이다.

무지개가 늘 같은 각도(약 42도)에 뜨고, 사실은 반원이 아니라 완전한 이며, 사람마다 자기만의 무지개를 본다는 사실 — 이 세 가지는 모두 물방울 하나 속에서 빛이 지나가는 기하학 하나로 설명된다. 물방울에 담긴 이 정교한 설계를 따라가 보자.

들판 위 하늘에 걸린 선명한 1차 무지개, 바깥이 붉고 안쪽이 보라색인 반원 호
비 갠 오후 하늘에 걸린 1차 무지개. 붉은색이 바깥, 보라색이 안쪽에 온다. 무지개의 각반경(대일점에서 약 42°)은 물방울 크기나 태양 높이와 무관하게 늘 일정하다.
사진: Graham Horn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무지개는 ‘흩어진 빛’이 아니다

먼저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가자. 하늘이 파란 이유는 공기 분자가 짧은 파장(파란빛)을 사방으로 산란시키기 때문이다(레일리 산란). 그래서 무지개도 ‘빛이 흩어져서’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무지개의 원리는 그것과 다르다. 무지개는 공기 분자에 빛이 흩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물방울 속에서 빛이 꺾이고(굴절) 되튀고(내부 반사) 다시 꺾여(굴절) 나오면서 색이 갈라지는 현상이다.

햇빛이 공 모양 물방울에 들어갈 때 한 번 굴절하고, 물방울 뒷면 안쪽에서 한 번 반사한 뒤, 앞면으로 나올 때 다시 한 번 굴절한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두 번 꺾이는 사이에, 빛은 파장(색)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각도로 휘어진다. 이 ‘색마다 다르게 휘는’ 성질을 분산(dispersion)이라 부른다. 프리즘이 흰빛을 무지개색으로 펼치는 것과 같은 원리이며, 물방울 하나하나가 작은 프리즘이자 거울인 셈이다.

왜 하필 42도인가 — 빛이 몰리는 각도

물방울에 들어가는 햇빛은 물방울의 정중앙을 맞히기도 하고 가장자리를 스치기도 한다. 물방울에 부딪히는 위치가 제각각이니, 굴절·반사를 거쳐 나오는 빛도 여러 각도로 흩어질 것 같다. 실제로 나오는 빛의 각도는 0도에서 약 42도 안팎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나오는 빛의 각도가 입사 위치에 따라 단조롭게 변하지 않고, 약 42도 부근에서 방향이 ‘접히면서’ 그 근처에 빛이 촘촘하게 몰린다. 즉 42도 언저리로 유난히 많은 빛이 되돌아 나오는 것이다.

17세기에 데카르트는 물방울에 들어가는 광선을 하나하나 계산해 이 각도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빛이 가장 적게 휘어져 되돌아 나오는 이 각도를 최소 편각이라 하고, 그 각도로 나오는 광선을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 광선이라 부른다. 물방울에서 나오는 빛이 이 각도 부근에 겹겹이 쌓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그 방향이 유난히 밝은 띠 — 무지개 — 로 보인다. 무지개가 ‘42도로만’ 나오는 빛이 아니라, 42도 부근에 빛이 가장 많이 몰려서 밝게 보이는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구형 물방울 단면 도해. 햇빛이 굴절해 들어가 뒷면에서 한 번 반사한 뒤 다시 굴절해 약 42도 방향으로 나온다
물방울 하나 속 빛의 경로. 들어갈 때 굴절, 뒷면에서 한 번 반사, 나올 때 다시 굴절한다. 나오는 빛이 최소 편각(약 42°) 부근에 몰려 밝은 원호를 이룬다.
도해 · glu.kr 자체 작성

색은 어떻게 갈라지는가

물의 굴절률은 빛의 색(파장)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다. 붉은빛에 대해서는 약 1.330, 보랏빛에 대해서는 약 1.343이다. 굴절률이 클수록 빛이 더 많이 꺾이므로, 보랏빛이 붉은빛보다 조금 더 휘어진다. 그 결과 최소 편각도 색마다 살짝 어긋난다. 붉은빛은 약 42.4도, 보랏빛은 약 40.5도에서 몰린다. 둘의 차이는 채 2도가 안 되지만, 이 좁은 간격이 하늘에 펼쳐지면서 우리가 보는 색 띠가 된다.

그래서 1차 무지개에서는 붉은색이 바깥(위), 보라색이 안쪽(아래)에 온다. 각도가 큰 붉은빛이 더 높이, 각도가 작은 보랏빛이 더 낮게 걸리는 것이다. 우리가 ‘빨주노초파남보’ 순서로 외우는 그 배열은, 물방울 하나가 색마다 빛을 되돌려 보내는 각도의 차이가 하늘 전체에 걸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무지개는 반원이 아니라 ‘원’이다

무지개가 왜 늘 같은 크기인지 이제 답할 수 있다. 무지개의 중심은 태양이 아니라, 내 머리 그림자가 지는 방향 — 태양의 정반대편에 있는 대일점(對日點)이다. 물방울들 가운데 ‘내 눈—물방울—태양’이 이루는 각이 딱 42도가 되는 것들만 나에게 무지개 빛을 보낸다. 그런 물방울은 대일점을 중심으로 반각 42도짜리 원뿔 위에 놓인다. 그 원뿔을 눈으로 보면 하나의 이 된다.

그런데 땅 위에 선 우리는 보통 이 원의 아래쪽 절반이 지평선에 가려 위쪽 호(弧)만 본다. 그래서 무지개가 ‘반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높은 산꼭대기나 비행기 위처럼 발밑에도 물방울이 있는 위치에서 본다면, 가려졌던 아래쪽까지 드러나 완전한 원이 나타난다. 무지개의 각반경 42도가 물방울 크기나 태양 높이와 무관하게 늘 일정하기 때문에, 무지개는 다가가도 커지지 않고 물러서도 작아지지 않는다. 애초에 하늘의 특정 지점에 ‘있는’ 물체가 아니라, 내 시선이 42도를 이루는 방향에 나타나는 빛의 배열이기 때문이다.

높은 상공에서 내려다본 완전한 원 모양의 무지개, 아래 농지 위에 원이 온전히 그려져 있다
비행기나 스카이다이빙처럼 발밑에도 물방울이 있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지상에서 지평선에 가렸던 아래쪽 절반이 드러나 무지개가 완전한 원으로 나타난다. 이 사진은 스카이다이빙 중 촬영한 원형 무지개다.
사진: Steve Kaufma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당신만의 무지개

무지개가 특정 위치의 물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놀라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무지개를 만드는 물방울은 ‘정해진 그 물방울들’이 아니라, 지금 내 눈과 대일점을 잇는 축에서 42도 방향에 있는 물방울들이다. 내가 한 걸음 옆으로 가면 그 축도 함께 움직여, 다른 물방울들이 새로 무지개를 만든다.

그러므로 바로 옆에 선 사람은 나와 조금 다른 물방울들이 만든, 엄밀히 말하면 다른 무지개를 보고 있다. 심지어 내 왼쪽 눈과 오른쪽 눈조차 미세하게 다른 무지개를 본다. 무지개는 저 멀리 걸려 있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보는 사람 각자에게 따로 그려지는 상(像)이다. 폭포의 물보라나 정원 호스의 분무에 뜨는 작은 무지개도 같은 이치다 — 햇빛과 물방울, 그리고 보는 사람의 위치, 이 셋만 맞으면 무지개는 어디에나 생긴다.

침엽수 사이 폭포의 물보라 속에 선명하게 떠 있는 무지개
폭포 물보라에 뜬 무지개(캐나다 타카카우 폭포). 햇빛과 물방울, 그리고 보는 사람의 위치만 맞으면 무지개는 어디에나 생긴다 — 저마다 자기만의 무지개다.
사진: Fir0002/Flagstaffoto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쌍무지개와 알렉산더의 어두운 띠

때로는 밝은 무지개 바깥으로 흐릿한 무지개가 하나 더 뜬다. 이 2차 무지개는 물방울 안에서 빛이 두 번 반사하고 나온 것이다. 반사가 한 번 더 일어나면서 빛의 일부가 새어 나가 더 어둡고, 나오는 각도도 달라져 약 51도에 걸린다. 결정적으로, 반사가 한 번 더 뒤집기 때문에 색 순서가 반대가 된다 — 2차 무지개에서는 붉은색이 안쪽, 보라색이 바깥이다(붉은빛 약 50.4도, 보랏빛 약 53.4도). 그래서 쌍무지개를 보면 두 무지개의 붉은 띠가 서로 마주 본다.

두 무지개 사이의 하늘을 자세히 보면 유난히 어두운 띠가 있다. 1차 무지개의 빛은 42도보다 바깥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고, 2차 무지개의 빛은 51도보다 안쪽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이(약 42도~51도)에는 물방울이 되돌려 보내는 빛이 상대적으로 적어 하늘이 어둡게 보인다. 이 띠를 처음 기록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이름을 따 알렉산더의 어두운 띠라 부른다.

도시 하늘에 뜬 두 개의 무지개, 밝은 1차 무지개와 그 바깥의 흐릿한 2차 무지개 사이로 어두운 하늘 띠가 보인다
1차 무지개 바깥으로 흐릿한 2차 무지개가 함께 떴다(독일 베를린). 밝은 1차와 흐릿한 2차 사이의 상대적으로 어두운 하늘이 ‘알렉산더의 어두운 띠’인데, 이 사진에서는 옅게 나타난다.
사진: Matt Biddulph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1차 무지개와 2차 무지개의 광선 경로 비교 도해. 1차는 반사 1회 약 42도, 2차는 반사 2회 약 51도이며 색 순서가 반대다
1차 무지개(내부 반사 1회, 약 42°, 붉은색 바깥)와 2차 무지개(내부 반사 2회, 약 51°, 붉은색 안쪽)의 비교. 두 무지개 사이 약 42~51° 구간이 알렉산더의 어두운 띠다.
도해 · glu.kr 자체 작성

무지개 안쪽의 옅은 줄무늬 — 빛의 파동성

드물게 1차 무지개 안쪽에 분홍·보라·연둣빛의 옅은 줄무늬가 여러 겹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이것을 보조 무지개(supernumerary)라 하는데,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설명한 굴절·반사의 기하학(기하광학)만으로는 이 무늬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줄무늬는 물방울 속에서 조금씩 다른 경로를 지난 빛의 파동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밝고 어두운 무늬를 만드는 것이다.

보조 무지개는 물방울이 지름 1밀리미터 안팎으로 작고 크기가 고를 때 잘 나타난다. 1804년 토머스 영은 이 무늬를 빛의 파동성으로 설명했고, 보조 무지개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빛이 파동임을 보여 준 첫 단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무지개 하나에 빛의 두 얼굴 — 광선처럼 곧게 나아가는 기하학과 물결처럼 간섭하는 파동성 — 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무지개 안쪽 가장자리에 분홍과 연둣빛 파스텔 톤이 옅게 겹쳐 보이는 보조 무지개
주 무지개 안쪽 가장자리에 옅게 겹쳐 나타나는 파스텔 톤(보조 무지개). 굴절·반사의 기하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빛의 파동성(간섭)이 드러나는 자리다.
사진: Mika-Pekka Markkane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일곱 빛깔이라는 약속

마지막으로, 무지개는 정말 ‘일곱 빛깔’일까. 물방울이 되돌려 보내는 색은 각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한다. 빨강과 주황, 파랑과 남색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은 없다. 무지개를 일곱 색으로 나눈 것은 뉴턴이었는데, 그는 음계의 조화에 빗대어 색을 일곱으로 헤아렸다고 전해진다. 즉 ‘7색’은 물리가 정한 경계가 아니라 사람이 붙인 문화적 약속에 가깝다. 실제 무지개는 셀 수 없이 많은 빛깔이 이음매 없이 흐르는 띠다.

무지개가 늘 42도에 뜨고, 사실은 완전한 원이며, 보는 사람마다 다른 무지개를 본다는 이 모든 성질은 결국 물방울 하나 속 빛의 경로라는 단순하고 정교한 기하학에서 나온다. 오래전 무지개는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약속의 상징으로 읽혔다(창세기 9장). 그 상징이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는, 물 한 방울에까지 이토록 질서정연한 설계가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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