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만한 파도 위, 거대한 원반 모양의 물고기 한 마리가 마치 죽은 듯 옆으로 누운 채 떠 있다. 등지느러미 하나만 물 밖으로 삐죽 나와 흔들릴 뿐, 몸통은 미동도 없어 보인다. 이 물고기의 이름은 개복치(Mola mola). 몸길이가 최대 3m 안팎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이 거구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표류하는 모습은 인터넷에서 종종 ‘무기력함의 상징’처럼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표층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짧은 순간은, 개복치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에 직접 부착한 가속도계와 조명 카메라로 개복치의 하루를 추적한 연구는, 이 물고기가 낮 동안 몇 차례고 반복해서 어두운 심해로 내려가 사냥을 벌이는 활동적인 포식자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표층에서 옆으로 누운 자세는 무기력의 증거가 아니라, 차가운 심해에서 식어버린 몸을 다시 데우기 위한 전략적 휴식, 즉 ‘재가온(rewarming)’이었다.

사진 · National Marine Sanctuaries,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표층의 일광욕, 실은 재가온이다
2015년 학술지 Journal of Animal Ecology에 발표된 나카무라·고토·사토(Nakamura, Goto & Sato) 연구팀의 논문은 개복치의 이런 이중생활을 처음으로 직접 촬영해 입증했다. 연구팀은 개복치 여러 마리에 가속도계와 조명이 달린 카메라를 부착해 방류한 뒤 행동을 추적했다. 그 결과 개복치는 낮 동안 반복적으로 수심 50~200m, 수온 섭씨 12도 미만의 차가운 심해로 잠수해 관해파리류(시포노포어)를 사냥한 뒤, 다시 표층으로 올라와 몸을 데우는 패턴을 되풀이했다. 연구팀은 표층에 떠 있는 행동의 ‘주된 기능은 체온 회복, 즉 재가온’이라고 결론지었다.
개복치는 변온동물이라 몸속 온도가 주변 수온을 따라간다. 12도 안팎의 심해에 오래 머물면 근육과 신경의 반응속도가 떨어져 다음 사냥에 불리해진다. 표층에서 몸을 데우는 이 재가온 휴식은 다음 잠수를 위한 재충전에 가깝다. 실제로 촬영된 영상에는 개복치가 어두운 수심에서 관해파리류에게 다가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해 · glu.kr 자체 제작(연구 기반 개념도)
무엇을, 어떻게 사냥하는가
개복치는 오랫동안 ‘해파리만 먹는 물고기’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16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DNA 바코딩 연구(Sousa 외)는 이 통념을 뒤집었다. 연구팀이 개복치 위 내용물의 DNA를 분석한 결과, 실제 먹이 구성은 갑각류(연갑류) 약 37%, 경골어류 약 24%, 히드로충류(해파리류의 일부) 약 15%, 그리고 요각류·이매패류·두족류·복족류 등이 나머지 약 24%를 차지하는 ‘범세계적(cosmopolitan)’ 식성으로 나타났다. 해파리는 먹이 목록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었다.
같은 연구는 개체 크기에 따라 식성이 달라지는 성장단계별 변화도 확인했다. 몸집이 작은 어린 개체는 소형 갑각류와 작은 물고기를 주로 먹고, 몸집이 커질수록 자포동물(해파리류) 섭식 비중이 늘어난다. 몸이 자라며 사냥 전략과 먹이 폭이 함께 바뀌어 가는 셈이다.
거대한 몸을 지탱하는 구조
이런 다이빙과 사냥을 뒷받침하는 것은 독특한 몸 구조다. 개복치에게는 보통의 물고기가 가진 진짜 꼬리지느러미가 없다. 대신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뒤쪽에서 하나로 합쳐져 ‘클라부스(clavus)’라는 헛꼬리를 이룬다. 추진력은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드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배지느러미 또한 없는 것으로 보고된다.

사진 · Edgard Dias Magalhães,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몸을 감싼 피부도 예사롭지 않다. 배 쪽을 기준으로 두께가 최대 약 7.3cm에 달하며, 그 아래 젤라틴질 층은 약 90%가 수분이면서도 콜라겐과 엘라스틴 섬유가 그물처럼 얽혀 강도를 유지한다. 두껍고 질긴 피부와 젤라틴질 층은 심해의 수압과 저온, 그리고 포식자의 공격을 함께 견디는 물리적 방벽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 Nol Aders(수정: PaladinWhit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몸에 올라타는 손님들과 청소부
거대하고 느긋해 보이는 개복치의 몸은 다른 생물들에게도 매력적인 서식지다. 개복치라는 종 전체에서 지금까지 보고된 기생충은 40여 속(genera)이 넘는다 — 이는 개체 한 마리에서 동시에 확인된 수가 아니라, 종 전체를 통틀어 누적된 기록이다. 그만큼 개복치의 피부와 몸속 곳곳이 다양한 기생충에게 서식처를 내주고 있는 셈이다.
이 기생충을 없애주는 존재도 있다. 아르헨티나 대륙붕(파타고니아 해역)에서는 남방큰풀마갈매기(2016년 관찰)와 검은눈썹알바트로스(2019년 관찰)가 표층에 뜬 개복치의 몸에서 기생충을 쪼아 제거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기록됐다. 크기 차이가 큰 바닷새와 거대한 물고기 사이에서 성립하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청소공생 관계다. 바닷새뿐 아니라 몸집이 작은 물고기가 개복치 곁을 따라다니며 비슷한 역할을 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사진 · Wreckless Marin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세계 최중량 경골어류’라는 타이틀의 반전
개복치는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경골어류’라는 타이틀로도 유명했다. 1996년 일본 지바현 가모가와 인근에서 잡힌 무게 2,300kg, 전장 2.72m의 개체가 그 기록 보유자였다. 그런데 2017년 히로시마대 연구팀(Sawai 외)이 Ichthyological Research에 발표한 재기재 연구는, 이 개체의 머리와 턱에 있는 특징적인 융기, 둥근 클라부스 형태를 근거로 이 ‘기록 개체’가 사실은 개복치(Mola mola)가 아니라 근연종인 남방개복치(Mola alexandrini)였다고 정정했다.
이 발견은 단순한 정정에 그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2017~2018년) 니가드(Nyegaard) 등이 미토콘드리아 DNA와 형태 분석을 결합해 후드윙커개복치(Mola tecta)를 신종으로 기재했는데, 이는 개복치속(Mola)에 125년 만에 추가된 첫 신종이었다. 그 결과 개복치속은 최소 세 종 — 개복치(M. mola), 남방개복치(M. alexandrini), 후드윙커개복치(M. tecta) — 으로 다시 구분됐다. 이후 2021년경 포르투갈 아조레스 인근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2,744kg급 개체(역시 Mola alexandrini로 보고됨)가 새로운 최중량 기록으로 학술지에 보고되기도 했다.

사진 · Erik van der Goot(제공: Marianne Nyegaard/FishBas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결국 오랫동안 ‘개복치’의 것으로 알려졌던 최중량 기록은, 유전자 분석과 정밀한 형태 비교가 쌓이면서 근연종의 것으로 다시 자리를 찾아간 셈이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개체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가려내는 이런 재검토는, 자연물을 향한 관찰과 분류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 정교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알에서 거인으로
개복치의 번식에 관해서는 오래전부터 회자되는 숫자가 하나 있다. 1920년대 조사(흔히 ‘Schmidt 1921’로 인용된다)에서 137cm 크기의 암컷 한 마리가 약 3억 개의 알을 품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다만 이 수치는 한 세기 가까이 된 오래된 추정치로, 현대 연구로 다시 확인됐다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게다가 1920년대에는 개복치속 내 종 구분이 지금처럼 정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실제로는 남방개복치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알 수 3억 개’라는 숫자는 지금도 개복치를 소개할 때 자주 인용된다.
비교적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부화 직후와 성체 사이의 극단적인 크기 차이다. 갓 부화한 개복치 유생은 몸길이가 약 2.5mm에 불과하다. 다만 이 시기의 유생은 가시가 돋은 둥근 형태로, 납작한 원반형인 성체와 체형 자체가 크게 달라 몸길이만으로 단순히 부피(무게)를 환산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이 작은 유생이 성체가 되기까지 몸무게가 최대 약 6천만 배까지 불어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성장 배율로 꼽힌다.

삽화 · Albert Günthe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계통, 그리고 이름
개복치는 복어목(Tetraodontiformes) 개복치과(Molidae)에 속한다. 1758년 린네가 처음 이 물고기를 명명할 당시 학명은 ‘테트라오돈 몰라(Tetraodon mola)’로, 복어속의 일종으로 분류됐다. 이후 해부학적 차이가 확인되면서 별도의 개복치속(Mola)으로 독립했다. 겉모습은 복어와 전혀 달라 보이지만, 목(目) 차원에서는 복어와 한 뿌리를 공유하는 근연 관계인 셈이다.
천적과 보전
거구인 개복치에게도 천적은 있다. 범고래와 상어류, 그리고 캘리포니아바다사자가 대표적이다. 특히 몬터레이베이에서는 가을철 캘리포니아바다사자가 어린 개복치의 지느러미를 물어뜯는 행동이 관찰된 바 있다. IUCN 적색목록은 2015년 평가를 기준으로 개복치를 ‘취약(Vulnerable)’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개체군 추세는 감소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마무리
파도 위에 축 늘어진 듯 보이는 그 짧은 순간만으로 개복치를 판단하면, 이 물고기가 갖춘 정교한 체온조절 전략과 사냥 능력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가운 심해와 따뜻한 표층을 오가며 몸의 온도를 관리하는 재가온 방식, 두껍고 탄력 있는 피부로 수압과 포식을 함께 견디는 구조, 그리고 겉모습이 비슷한 근연종들을 유전자 수준까지 파고들어 가려내야 할 만큼 정교하게 나뉘어 있는 분류 체계까지 — 익숙한 밈 뒤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생존 전략과, 그 설계를 하나씩 밝혀내는 정밀한 과학이 함께 놓여 있다.
참고 자료
- Nakamura, Goto & Sato (2015), Journal of Animal Ecology — 개복치의 다이빙·재가온 연구
- Sousa 외 (2016), Scientific Reports — DNA 바코딩으로 밝힌 개복치의 식성
- oceansunfish.org — Parasites and Predators
- Seco Pon 외 (2023), Symbiosis — 개복치와 바닷새의 청소공생 연구
- Wikipedia (English) — Ocean sunfish
- ScienceDaily (2017) — World’s heaviest bony fish identified and correctly named
- Nyegaard 외 (2018),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 후드윙커개복치(Mola tecta) 신종 기재
- Gomes-Pereira 외 (2023), Journal of Fish Biology — 2,744kg 개체 보고
- Guinness World Records — Most eggs produced by a fish in a single spawning
- 위키백과(한국어) — 개복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