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자체에는 냄새가 없다
증류수 한 컵에 코를 대 보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 분자는 그 자체로 사람의 후각 수용체를 자극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래 마른 흙 위로 첫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맡는다. 냄새를 내는 것은 비가 아니라, 비가 건드린 것들이다.

사진: Mediopathin, Wikimedia Commons, CC BY 3.0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 “비 냄새”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한 단어로 뭉뚱그려 부르는 그것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사건이 시간차를 두고 코에 도착한 결과다. 비가 오기 전에 오는 날카로운 냄새, 빗방울이 지면에 닿는 순간 풀려나는 유분 냄새, 비가 그친 뒤에 올라오는 흙냄새는 물질도 다르고 만들어지는 장소도 다르다. 이 셋을 구분하지 않으면 어떤 설명도 반쯤은 틀리게 된다.

도해 · glu.kr 자체 작성(Python·PIL). 출처: Bear & Thomas, Nature 201:993–995 (1964) · Bear & Thomas, Geochim. Cosmochim. Acta 30:869–879 (1966) · Gerber & Lechevalier, Appl. Microbiol. 13:935–938 (1965) · Becher et al., Nat. Microbiol. 5:821–829 (2020) · Sahu & Lal, Geophys. Res. Lett. 33 (2006) · Ball et al., J. Agric. Food Chem. 72:15865–15874 (2024)
첫째 층 — 비가 오기 전, 코끝이 서늘해지는 냄새
먹구름이 다가올 때 코끝을 찌르는 서늘하고 금속적인 냄새를 오존으로 설명하는 것은 널리 쓰이는 해설이다. 다만 이 해설은 단정문으로 쓸 만큼 단단하지 않다. 측정으로 확립된 고리는 두 개뿐이고, 그 둘을 이어 붙인 지점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지를 나누어 보면 오히려 이야기가 선명해진다.

사진: The Modern Polymath, Wikimedia Commons, CC BY 4.0
첫째, 번개의 확립된 직접 산물은 오존이 아니라 질소산화물(NOx)이다. 슈만과 훈트리저(Schumann & Huntrieser)의 2007년 종합 리뷰(Atmos. Chem. Phys. 7:3823–3907)는 전형적인 뇌우 섬광 1회가 일산화질소 분자 15(2–40)×1025개, 질소 질량으로 약 3.5 kg을 만든다고 정리했고 전지구 배출을 (5±3) Tg N/yr로 추정했다. 오존은 이 질소산화물에서 광화학 반응을 거쳐 만들어지는 2차 산물이다. 그러니 “번개가 오존을 만든다”는 말은 한 단계를 건너뛴 서술이다.

사진: Konrad W. shannon5,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둘째, 뇌우의 하강기류가 상층의 오존이 풍부한 공기를 지표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실측된다. 사후와 랄(Sahu & Lal)의 2006년 관측(Geophys. Res. Lett. 33(10))은 2002년 가을 벵골만 선상에서 지표 오존이 최대 26 ppbv 상승하고 상당온위가 12 K 낮아지는 사건을 포착했다. 다만 이것은 열대 해양에서의 선상 관측 값이지 한국 육상의 값이 아니다. 사람의 오존 후각 역치는 미국산업위생협회(AIHA) 자료 기준 0.0076~0.03 ppm으로, 미 환경보호청의 지상 오존 환경기준(8시간 평균 0.070 ppm)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값이라 같은 축에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직하게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이 두 고리를 이어 붙인 “번개가 만든 오존이 하강기류를 타고 내려와 우리 코에 닿는다”는 설명을 직접 측정한 연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널리 쓰이는 해설이지만 아직 실측으로 닫히지 않은 회로다. 또 이 설명은 낙뢰를 동반한 대류성 강수에 한정되며, 한국에서는 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의 소나기와 뇌우 상황에만 해당한다.
둘째 층 — 빗방울이 닿는 순간, 돌에서 풀려나는 것
1964년 3월, 호주 CSIRO의 광물화학 연구자 I. J. 베어(Isabel Joy Bear)와 R. G. 토머스가 Nature 201권 4923호 993–995쪽에 짧은 논문 하나를 실었다. 제목은 “점토질 냄새의 본질(Nature of Argillaceous Odour)”. 두 사람은 이 냄새에 새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했고, 그것이 ‘페트리코(petrichor)’다.
모재의 다양한 성질 때문에 우리는 이 독특해 보이는 냄새에 ‘petrichor’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이는 바위나 돌에서 유래한 ‘이코르(ichor)’, 즉 희박한 정수(tenuous essence)로 볼 수 있다.

사진: Wilfredor, Wikimedia Commons, CC0
새 이름을 만든 이유가 중요하다. 기존 용어 ‘argillaceous odour(점토질 냄새)’는 이 현상이 점토만의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데, 실제로 냄새를 품고 있던 모재는 점토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했다. 두 사람은 따뜻하고 건조한 조건에 놓였던 암석을 수증기 증류해 노란빛 유분을 얻었다. 건조기 동안 암석과 점토 표면에 흡착돼 있다가 물이 닿으면 풀려나는 이 유분이 페트리코의 실체다.
여기서 시점을 섞으면 안 된다. 1964년 논문은 그 유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정하지 않았다. 기원 문제는 2년 뒤 같은 저자들이 낸 「Genesis of petrichor」(Geochim. Cosmochim. Acta 30(9):869–879, 1966)에서 따로 검토됐고, 이 논문은 네 가지 메커니즘 — 점토·암석 표면에서 대기 기체가 촉매적으로 합성되는 경로, 대기 유기물의 흡착, 흡착된 화합물의 촉매적 변환, 미생물 활동 — 을 놓고 저울질했다. 흡착이 낮은 상대습도에서 최대가 된다는 서술도 여기 있다. “오래 가물수록 첫비 냄새가 진하다”는 체감의 근거가 바로 이 대목이다.
중간에 낀 1965년 논문 「Petrichor and Plant Growth」(Nature 207:1415–1416)는 예상을 뒤집었다. 이 물질은 씨앗의 발아를 촉진하지 않고 오히려 지연시켰다. 다만 한정어가 두껍다. 대상은 크레스·겨자·혼합 목초 세 종의 종자였고, 기질은 카올린화 화강암 같은 광물 모재 위 실험실 파종이었으며, 노출 조건은 60~75 °F(약 15.6~23.9 °C)에 상대습도 70% 미만으로 2~3주였다. 노출이 길수록 억제가 커졌다는 결과이지, 자연 상태의 밭이나 숲으로 확대할 근거는 이 논문에 없다.
오늘날 ‘petrichor’는 비 냄새 전체를 가리키는 우산 용어로 쓰인다. 그러나 원 정의로 보면 이 단어는 세 층 가운데 ‘암석·점토에 흡착된 유분’ 한 층만을 가리켰다. 구성 성분을 구체적인 지방산 이름까지 나열하는 대중 서술이 많지만 출처마다 목록이 엇갈려, 안전하게는 지방산·테르펜 계열이라는 수준까지만 말할 수 있다. 2026년에 공개된 프리프린트는 이스라엘 건조지 토양 코어를 재습윤시킨 실험에서 페트리코가 58종 휘발성 유기물의 복합 부케라고 보고했는데,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결과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 냄새는 어떻게 코까지 오는가
흙 표면에 붙어 있던 유분이 어떻게 공기 중으로 떠올라 몇 미터 위 사람의 코에 닿을까. 2015년 Y. S. Joung과 C. R. Buie가 Nature Communications 6권 6083번 논문에서 고속 촬영으로 답한 것이 바로 이 운반 문제였다. 논문의 축자 표현은 이렇다. “다공질 매질에 액적이 충돌한 뒤의 에어로졸 생성은 기포 형성, 기포 성장, 기포 파열의 3단계 과정이다.”

사진: Davide Restivo from Aarau, Switzerland,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빗방울이 마른 흙에 닿으면 액적이 퍼지는 속도가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속도보다 빨라, 액적 아래에 공기가 갇힌다. 갇힌 공기는 기포가 되어 액적 안을 떠오르고, 표면에서 터지면서 수많은 미세 물방울을 위로 쏘아 올린다. 이때 흙 표면에 있던 냄새 물질이 그 물방울에 실려 공기로 올라간다.

도해 · glu.kr 자체 작성(Python·PIL). 출처: Joung & Buie, Nature Communications 6:6083 (2015) · Joung, Ge & Buie, Nature Communications 8:14668 (2017)
여기서 가장 흔한 압축 오류가 “약한 비일수록 냄새가 더 난다”이다. 논문은 강도별 발생량을 비교 측정한 것이 아니라 관측 여부를 말한다. 정확히는, 점토·사질점토와 비슷한 흡수 특성의 토양에서 약한 비와 보통 비에 해당하는 조건일 때 에어로졸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고, 모래에서는 물론 강한 비에 해당하는 조건에서도 관측되지 않았다. 강도 기준은 개별 빗방울의 충돌속도이며, 약한 비 4.0 m/s 미만·강한 비 7.0 m/s 초과라는 정의는 논문이 서머(Sumner, 1988)에서 가져온 것이다. 전형적인 빗방울 지름은 1~3 mm다.
“수백 개의 물 제트가 약 10 m/s로 약 20 마이크로초 안에 분출된다”는 인상적인 수치도 자주 인용되지만, 이 값은 토양이 아니라 박층크로마토그래피 판 — 논문이 흡수 특성은 비슷하되 균질한 이상적 토양 유사 표면이라고 규정한 시료 — 에 1.4 m/s로 충돌한 단일 액적에서 얻은 것이다. 실제 토양에서는 지름 수십 마이크로미터의 미세 제트로만 기술된다. 이 연구가 밝힌 것은 냄새 물질의 정체가 아니라, 냄새 물질을 공기로 올려보내는 운반 기제라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이 기제가 실험실 밖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은 뒤이은 현장 연구가 뒷받침한다. 왕 연구진(Wang et al.)은 2016년 Nature Geoscience 9권 433–437쪽에서 강수가 실제 대기 중에 토양에서 온 유기입자를 만들어 낸다고 보고했다. Joung과 Buie의 2017년 후속 논문(Nat. Commun. 8:14668)은 빗방울 하나가 토양 표면 세균의 0.01%(실측 범위 0.0021~0.16%)를 공기로 옮기며 에어로졸화 1시간 뒤에도 세균이 살아 있었다고 보고했는데, 이 역시 지름 2.8 mm 물방울을 0.6~1.7 m/s로 떨어뜨린, 세균을 인위적으로 접종해 말린 토양의 실험실 값이고 모래에서는 관측되지 않았다.
셋째 층 — 비가 그친 뒤의 흙냄새
비가 그치고 한참 뒤, 젖은 땅에서 올라오는 눅눅하고 진한 흙냄새는 앞의 둘과 또 다른 물질이다. 게오스민(geosmin)은 1965년 거버와 르슈발리에(Gerber & Lechevalier)가 방선균 배양액에서 분리해 이름 붙였다(Applied Microbiology 13(6):935–938). 페트리코 명명 이듬해에, 다른 저자가, 다른 시료에서, 다른 방식으로 얻은 별개의 화합물이다. 그러니 “페트리코 = 게오스민”은 틀렸다. 다만 반대로 둘이 아무 관계 없다고 하는 것도 과잉 교정이다 — 오늘날 비 온 뒤 흙냄새의 지배적 성분으로 게오스민이 꼽히는 것은 별개의 사실이다.

구조식: Calvero,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흰 배경으로 합성)
게오스민의 분자식은 C12H22O, 분자량 182.30 g/mol이다. 탄소 15개짜리 파르네실 이인산에서 출발하지만 반응 도중 아세톤이 떨어져 나가 탄소 12개가 되는 분해형 세스퀴테르페노이드라서, 그냥 ‘세스퀴테르펜(C15)’이라고만 쓰면 탄소수가 맞지 않는다. 사람은 이 물질에 놀랄 만큼 예민하다. 다만 숫자에는 매질과 경로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 여러 문헌을 종합한 값으로, 물에서 코로 맡을 때의 검출 역치가 4~10 ng/L다.

사진: Snuupo,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올림픽 규격 수영장(약 250만 L)을 통째로 이 역치 농도로 만드는 데 드는 게오스민은 상단인 10 ng/L로 잡아도 25 mg, 하단인 4 ng/L로 잡으면 10 mg이다. 각설탕 하나(약 4 g)의 160분의 1에서 400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호주 식수 지침은 게오스민과 2-MIB의 냄새 역치를 각각 10 ng/L로 적고, 정수장 유입수나 유출수에서 둘의 합계가 이 값을 넘으면 감시와 활성탄 처리를 강화하라는 운영 기준을 둔다. 흥미롭게도 맛과 냄새에 대해서는 건강 근거 기준값을 정하지 않는다. 흙냄새가 나는 물이 곧 오염된 물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위해가 아니라 민원이다.
반전 — 그 냄새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선균은 왜 이 물질을 내보낼까. 2020년 베허 연구진(Becher et al.)이 Nature Microbiology 5권 821–829쪽에 낸 논문이 지금까지 가장 구체적인 답을 내놨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냄새가 부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흙 속의 작은 절지동물이었다.

사진: AJC1 from UK,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유인된 것은 곤충이 아니라 톡토기(Collembola)다. 스웨덴 알나르프의 삼림 두 지점에서 처리당 트랩 20개를 놓은 야외 실험에서 유의하게 더 많이 잡힌 것은 톡토기뿐이었고(카이제곱 19.389, 자유도 2, N = 57, P < 0.001), 같은 실험에서 곤충과 거미류는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야외 트랩의 미끼는 순수 게오스민이 아니라 살아 있는 S. coelicolor M145 군락이었다. 게오스민 단독의 유인 효과는 실험실 Y자관에서 총 투여량 1 ng으로 확인됐고(P < 0.001), 2-MIB 1 ng 단독은 유의하지 않았다(P = 0.061). 행동 실험 대상도 톡토기 한 종(Folsomia candida)이다.
이 논문이 실증한 핵심은 타이밍의 정교함이다. 게오스민 유전자(geoA)와 2-MIB 유전자가 각각 포자형성기 전사인자 WhiH와 BldM의 직접 조절을 받는다는 것은 같은 논문이 S. venezuelae에서 확인한 결과다. 그래서 냄새 방출이 포자를 만드는 군락에 국한된다. 즉 균이 아무 때나 냄새를 내는 것이 아니라 퍼뜨릴 포자가 준비되었을 때에 맞춰 내보낸다. 냄새를 따라온 톡토기는 군락을 먹고, 소수성 표피에 달라붙은 포자와 배설물이라는 두 경로로 포자를 옮긴다. 게오스민 생합성 유전자는 지금까지 해독된 Streptomyces 게놈 거의 전부에 보존돼 있고, 2-MIB 유전자는 그 절반쯤에서 발견된다.
저자들 스스로는 군집 맥락에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유보했다. 그러니 “포자를 퍼뜨리려고 냄새를 만든다”는 목적론적 단정 대신, 포자를 만들 때에 맞춰 내보내며 그 결과 포자가 퍼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서술이 정확하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비 온 뒤 맡는 그 냄새는 애초에 우리에게 보낸 신호가 아니라 흙 속에서 오가던 대화를 엿듣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왜 이토록 예민한가 — 통념이 뒤집히는 자리
여기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이 등장한다. 인류가 사막에서 물을 찾기 위해 게오스민에 극도로 예민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서사를 뒷받침한다고 인용되는 바로 그 논문이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볼 연구진(Ball et al.)이 2024년 인간의 게오스민 수용체 OR11A1을 처음 동정하고 여러 종의 대응 수용체(오솔로그)를 같은 조건에서 비교했더니(J. Agric. Food Chem. 72(28):15865–15874), 인간은 시험된 종 가운데 둔감한 축이었다.
세포 실험에서 측정한 수용체 반응 농도(EC50)는 캥거루쥐 0.24 µmol/L, 인간 27.97 µmol/L, 수마트라오랑우탄 80.97 µmol/L였다. 사막에 사는 캥거루쥐의 수용체가 인간 것보다 100배 넘게 민감했다는 뜻이다. 다만 이 값은 시험관 안 재조합 수용체의 반응 농도이지 사람이 냄새를 맡는 역치가 아니다 — 두 값은 50만~130만 배, 즉 여섯 자릿수에 가깝게 떨어져 있어 나란히 놓아 비교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논문이 인간에 대해 내세운 가설은 ‘물 찾기’가 아니다. 저자들은 OR11A1이 게오스민의 퀴퀴한 이취를 감지해 상한 음식이나 물을 경고하도록 진화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물 찾기 아이디어는 낙타나 코끼리 같은 다른 동물에 적용해 언급할 뿐이며, 인간에 대해서는 오히려 유보를 단다. 우리가 흙냄새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가 사람마다 갈리는 것도 이 가설 쪽에서 보면 덜 이상해진다.
세 겹의 신호가 하나로 겹칠 때
정리하면 이렇다. 비가 오기 전 코끝의 날카로운 냄새는 대기의 전기 현상과 하강기류로 설명되곤 하는 — 다만 앞서 보았듯 아직 실측으로 닫히지 않은 — 수 킬로미터 규모의 이야기이고, 비가 닿는 순간의 페트리코는 지난 몇 주간 암석 표면에 조용히 쌓인 유분이 풀려나는 표면 화학의 사건이며, 비 온 뒤의 게오스민은 흙 속 미생물이 포자를 퍼뜨리는 밀리미터 규모의 사건이다. 규모도 시간도 주체도 전혀 다른 세 사건이, 하필 한 번의 비에 맞춰 순서대로 코에 도착한다. 오늘 하나만 가져간다면 이것이다 — ‘비 냄새’라는 단일 물질은 없다.
한국의 하늘에서도 이 세 층은 계절을 타고 겹쳐진다. 기상청 집계로 2025년 낙뢰는 약 10만 6천 회였고 여름철(6~8월)에 57%가 몰렸으며, 7월이 35,372회, 9월이 30,281회였다. 오존으로 설명되는 첫째 층이 실제로 개입할 여지가 있는 시기가 이 무렵이다. 반면 가을철 강수 평년값은 전국 266.1 mm에 강수일수 22.6일이다. 초가을에는 9월 낙뢰 30,281회가 보여 주듯 대류성 소나기가 적잖이 섞이지만, 10월과 11월로 갈수록 뇌우 없이 조용히 내리는 비의 비중이 커진다. 그런 비 뒤에 올라오는 것은 대개 셋째 층, 게오스민 쪽이다.
같은 비를 두고도 어떤 날은 서늘한 냄새가 먼저 오고 어떤 날은 흙냄새만 남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기의 전기, 광물 표면의 흡착, 미생물의 생활사라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세 층위가 각자의 원리대로 작동하다가 물 한 번에 맞춰 하나의 감각으로 겹쳐 온다. 그 겹침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세 층을 각각 뜯어볼수록 저마다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음 비에는 창문을 조금 일찍 열어 두고, 냄새가 몇 번 바뀌는지 세어 보시길 권한다.
참고 자료
- Nature of Argillaceous Odour — ‘petrichor’를 처음 제안한 1964년 원 논문
- Petrichor and Plant Growth — 페트리코가 발아를 ‘지연’시킨다는 후속 논문 (도입 문단 공개)
- Genesis of petrichor — 페트리코의 기원 메커니즘을 검토한 1966년 논문
- CSIRO — The smell of rain: how our scientists invented a new word
- Geosmin, an Earthy-Smelling Substance Isolated from Actinomycetes — 게오스민 명명 원논문(전문 공개)
- Developmentally regulated volatiles geosmin and 2-methylisoborneol attract a soil arthropod to Streptomyces bacteria promoting spore dispersal — 저자 최종원고 전문(무료)
- Geosmin … Activates Evolutionary Conserved Receptor OR11A1 — 인간 게오스민 수용체 동정(오픈액세스)
- Biosynthesis of the earthy odorant geosmin by a bifunctional Streptomyces coelicolor enzyme
- Aerosol generation by raindrop impact on soil — 빗방울이 에어로졸을 만드는 3단계 기제
- Bioaerosol generation by raindrops on soil — 빗방울이 토양 세균을 공기로 옮긴다는 후속 논문(전문 공개)
- Airborne soil organic particles generated by precipitation — 실험실 밖 현장 확인
- The global lightning-induced nitrogen oxides source — 번개의 직접 산물은 오존이 아니라 NOx
- NOAA JetStream — Thunderstorm Hazards: Damaging Wind (하강기류·돌풍전선의 물리)
- 기상청 보도자료 — 「’2025 낙뢰연보’ 발간, 낙뢰 여름철에 집중되고 충남 많이 발생」
- 호주 식수 지침(NHMRC) — 게오스민·2-MIB 냄새 역치 10 ng/L와 정수장 운영 기준
- PubChem CID 29746 (Geosmin) — 분자식·분자량·IUPAC명
- Sahu & Lal (2006) — “Changes in surface ozone levels due to convective downdrafts over the Bay of Bengal”
- PubChem CID 24823 (Ozone) — 후각 역치
- 기상청 보도자료 — 2025년 가을철 기후특성(가을 강수 평년값)
- Ghirardo et al. (2026, 프리프린트) — 건조지 토양 재습윤 시 방출되는 VOC 58종
- 미 EPA — 대기환경기준(NAAQS) 표: 지상 오존 8시간 평균 0.070 p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