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에 배추 한 통을 집어 들면 겉과 속이 확연히 다르다. 겉잎은 벌어져 젖혀져 있고, 안으로 갈수록 옅은 노란빛을 띠며 빽빽하게 겹친다. 같은 그루에서 난 잎인데 겉잎은 펼쳐지고 속잎은 감싼다.

사진: SarKaLay,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우연이 아니다. 잎 한 장의 윗면과 아랫면이 다른 속도로 자라 잎이 안으로 말리고, 그 잎들이 포개져 배추 ‘통’이 된다. 식물학은 이 과정을 결구(結球, heading)라고 부른다.
결구는 잎이 스스로 접히는 일이다
결구는 속잎이 안쪽으로 굽는 잎 내만곡(leaf incurvature)이 이어져 잎들이 겹치며 영양 저장기관인 결구체(leafy head)를 이루는 과정이다. Brassica rapa의 잎 굽음을 정리한 2023년 리뷰(Journal of Advanced Research 53:49-59)는 결구를 유전자·miRNA·식물호르몬·환경 자극의 상호작용으로 본다.
어느 잎부터 굽는지도 확인됐다. 배추 Chiifu-401-42의 잎(L1·L2·L3·L5·L7·L9)을 부위별로 해부해 RNA 시퀀싱한 2022년 연구는 7번째 잎(L7)이 안으로 굽는 속잎과 바깥으로 젖혀지는 겉잎의 경계에 놓인 전이잎이라고 보고했다.

사진: Josef Schlaghecken,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윗면과 아랫면이 다른 속도로 자란다
식물 기관은 아랫면(배축면)이 윗면(향축면)보다 빨리 늘어나면 위로 굽고(하편생장, hyponasty), 반대로 윗면이 더 빨리 늘어나면 아래·바깥으로 굽는다(상편생장, epinasty). 애기장대 잎자루 굽힘을 다룬 2011년 리뷰(AoB PLANTS)의 용어 정의로, 굽음의 방향은 양면의 성장 속도 차이에서 나온다.
2022년 Frontiers in Plant Science 연구에서, 결구기에 접어든 배추 잎맥의 아랫면 표피세포 옥신(IAA) 함량은 윗면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아랫면 대 윗면 표피세포 수의 비도 결구배추는 1.98, 결구하지 않는 청경채는 1.17이었다.
같은 연구에서 옥신 극성수송 억제제 NPA를 처리하자 잎은 7일 뒤 안쪽으로 말렸고, 연구진은 결구배추의 굽은 잎과 매우 유사하다고 기술했다. 저해제로 얻은 기능적 증거다.

도해 · glu.kr 자체 작도(Python·PIL). 세포수 비 출처: Yue et al., Frontiers in Plant Science 13:918112 (2022) · 굽음 방향 정의: Polko et al., AoB PLANTS 2011
결구에 실패한 배추들이 알려 준 것
설계의 정교함은 고장 난 쪽에서 드러난다. 화학 돌연변이원 EMS로 얻은 비결구 돌연변이 fg-1은 잎이 평평하게 자랐고, 결구 초기 IAA가 야생형보다 25.2% 낮았다. 표피세포 크기도 달라져, 로제트기에는 잎 아랫면 세포 면적이 잎끝과 중앙 가장자리에서 각각 57.7%·28.9% 컸고, 결구 후기에는 윗면 세포 면적이 같은 두 지점에서 26.1%·41.1% 작았다. 다만 이 면적 수치는 앞서 본 세포 ‘수’의 비와는 다른 지표여서 굽는 방향을 그대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지베렐린도 결정적이었다. 생합성 효소 유전자 BrKS에 점돌연변이가 생긴 nhm1 배추는 결구하지 못했지만 외생 GA3를 뿌리자 야생형으로 회복됐고, BrCPS1의 대립 돌연변이 nhm4-1·nhm4-2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BcpLH를 안티센스로 억제한 배추는 야생형보다 약 10일 일찍 잎이 굽었다.
속잎이 노란 이유
겉잎에 덮인 속잎에는 빛이 닿지 않는다. 2019년 Horticulture Research의 전사체 분석은 속잎이 노랗게 변하고 대부분의 광합성 유전자 발현이 감소하며, 광합성을 하지 않는 저장기관이 된다고 서술했다.
엽록소 대신 그 전구체가 쌓이는 ‘자연 황화’는 같은 결구 작물인 양배추(Brassica oleracea)의 결구체 속잎에서 보고된 바 있다. 속이 주황색인 배추는 원인이 다르다. 카로티노이드 이성질화효소 유전자 BrCRTISO가 기능을 잃어 프로리코펜이 쌓인 것이다.

사진: USDA(미국 농무부), Wikimedia Commons, 공개도메인
배추와 순무와 청경채가 한 종이라는 반전
Brassica rapa라는 한 종 안에는 결구배추(ssp. pekinensis)뿐 아니라 청경채(ssp. chinensis), 순무(ssp. rapa), 경수채·미즈나(ssp. nipposinica), 타아사이(ssp. narinosa)가 들어간다. 결구 연구가 배추와 청경채를 표준 대조쌍으로 쓰는 이유다. 같은 종 안에서 잎이 굽느냐 펼쳐지느냐가 갈린다.

사진: thebittenword.com, Wikimedia Commons, CC BY 2.0
여섯 종의 관계가 ‘U의 삼각형’이다. 기본 세 종은 배추 B. rapa(AA, 2n=20), 흑겨자 B. nigra(BB, 2n=16), 양배추 B. oleracea(CC, 2n=18)이고, 둘씩 만난 복합종이 유채 B. napus(AACC, 2n=38), 갓 B. juncea(AABB, 2n=36), 에티오피아겨자 B. carinata(BBCC, 2n=34)다. 배추의 A 게놈은 유채와 갓 양쪽에 들어가 있다.

도해 · glu.kr 자체 작도(Python·PIL). 관계 출처: U Nagaharu, Japanese Journal of Botany 7: 389–452 (1935)
삼각형에 이름을 남긴 우장춘(U Nagaharu)은 n=10인 배추와 n=9인 양배추를 교잡해 이미 자연에 존재하던 n=19의 유채를 실험적으로 만들어 내고 그 과정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했다(국가기록원). 그 논문의 서지는 Japanese Journal of Botany 7권 389–452쪽(1935)이다. 흔히 그의 업적으로 알려진 씨 없는 수박은 1943년 교토제국대학 기하라 히토시(木原均)의 기하라생물학연구소가 처음 시험 생산했다.

사진: Met.salis, Wikimedia Commons, 공개도메인
15~18℃라는 좁은 창
결구는 아무 온도에서나 되지 않는다. 농촌진흥청 농사로는 잘 자라는 온도를 18~20℃, 결구가 잘 되는 온도를 15~18℃로 제시하고, 12℃ 이하가 일주일 이상 이어지면 추대해 상품성을 잃는다고 안내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결구 적온을 15~16℃로 적는다.
한여름 평지는 이 창을 크게 벗어난다. 1991~2020년 평년값으로 서울(해발 85.5m)의 7월 평균기온은 25.3℃인 반면, 대관령 기상관측소(해발 772.57m)는 19.6℃로 5.7℃ 낮다. 대관령도 결구 적온보다는 1.6℃ 높지만 생육 적온(18~20℃) 안에는 든다. 고개 마루는 해발 832m이고, 농사로는 해발 800m 이상을 고랭지로 구분한다. 여름 배추가 고랭지에서 오는 이유다.
추위와 소금, 그리고 김칫독
“서리 맞은 배추가 달다”는 말은 저온 순화와 맞닿아 있다. 식물은 저온에 적응하며 가용성 당을 축적하고, 이 당은 삼투 균형과 빙점 강하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정량 자료는 배추와 같은 종(Brassica rapa)의 다른 아종에서 나왔다. 청경채와 같은 아종에 속하는 중국 채소 우차이(乌菜)는 주간 10℃·야간 3℃에서 10일을 보내자 주간 25℃·야간 18℃로 기른 대조구보다 가용성 당이 20.9% 많았다.
배추 자체는 단순하지 않다. 결구배추 ‘춘광’을 10℃에 1~3일 둔 연구가 보고한 것은 프롤린과 페놀화합물 증가였고, 중국 재래종 배추 ‘Linglong Yellow No.2(LY2)’를 6~15℃ 항온에서 30일 재배한 연구에서는 가용성 당이 오히려 15℃에서 가장 높았다.
소금이 하는 일은 삼투다. 생배추의 수분 95.40%는 15℃에서 6시간 절이면 소금물 1%에서 95.04%, 6%에서 92.42%, 10%에서 90.00%로 농도를 올릴수록 단계적으로 낮아졌다. 고장액에서 원형질체가 세포벽에서 물러나는 원형질분리와 같은 원리다.

사진: Joseph Steinberg,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다음은 젖산균 차례다. 절인 배추를 5℃에서 33일 발효시킨 2025년 실험에서, 스타터를 넣지 않은 대조 김치는 0~6일에 Leuconostoc citreum이 우세하다가 11일째부터 Weissella koreensis로 우점이 바뀌었다. 반면 Leuconostoc mesenteroides를 스타터로 넣은 김치에서는 이 균이 발효 후기에 우점했다. pH는 어느 쪽이든 발효가 진행되면서 계속 낮아졌다.
배추 한 통은 정교하게 설계된 조립품이다. 일곱째 잎 언저리에서 굽는 방향이 뒤집히며 잎들이 하나의 저장기관으로 접혀 든다. 김칫독에 들어가기 전에 배추는 이미 잎 한 장 한 장의 성장 속도를 조절해 스스로를 공으로 접어 넣은 셈이다.
참고 자료
- Tabusam J. et al., “Physiological Control and Genetic Basis of Leaf Curvature and Heading in Brassica rapa L.”, Journal of Advanced Research 53:49–59 (2023)
- Yue X. et al., “The Adaxial/Abaxial Patterning of Auxin and Auxin Gene in Leaf Veins Functions in Leafy Head Formation of Chinese Cabbage”, Frontiers in Plant Science 13:918112 (2022)
- Guo X. et al., “Series-Spatial Transcriptome Profiling of Leafy Head Reveals the Key Transition Leaves for Head Formation in Chinese Cabbage”, Frontiers in Plant Science 12:787826 (2022)
- Polko J.K. et al., “Petiole hyponasty: an ethylene-driven, adaptive response to changes in the environment”, AoB PLANTS 2011:plr031
- Li J. et al., “Characterization of Non-heading Mutation in Heading Chinese Cabbage (Brassica rapa L. ssp. pekinensis)”, Frontiers in Plant Science 10:112 (2019)
- Ren W. et al., “BcpLH organizes a specific subset of microRNAs to form a leafy head in Chinese cabbage”, Horticulture Research 7:1 (2020)
- Gao Y. et al., “The mutation of ent-kaurene synthase, a key enzyme involved in gibberellin biosynthesis, confers a non-heading phenotype to Chinese cabbage”, Horticulture Research 7:178 (2020)
- Gao Y. et al., “BrCPS1 Function in Leafy Head Formation Was Verified by Two Allelic Mutations in Chinese Cabbage”, Frontiers in Plant Science 13:889798 (2022)
- Sun X. et al., “Genome-wide transcriptome analysis reveals molecular pathways involved in leafy head formation of Chinese cabbage”, Horticulture Research 6:130 (2019)
- Kruk J., “Occurrence of chlorophyll precursors in leaves of cabbage heads — the case of natural etiolation”, Journal of Photochemistry and Photobiology B 80(3):187–194 (2005)
- Li J. et al., “Transcriptome Analysis of Orange Head Chinese Cabbage (Brassica rapa L. ssp. pekinensis) and Molecular Marker Development”, International Journal of Genomics 2017:6835810
- “Triangle of U” — Wikipedia(U Nagaharu, Japanese Journal of Botany 7:389–452, 1935 서지 포함)
- “우장춘” — 국가기록원 기록물 주제설명
- “우장춘이 씨없는 수박 개발? 日학자가 최초” — 문화일보
- “배추” 재배 정보(생육 적온·결구 적온·추대 온도) — 농촌진흥청 농사로
- “고랭지 배추 재배기술”(고랭지 해발 기준) — 농촌진흥청 농사로
- “배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Yuan L. et al., “Comparative Proteomics Reveals Cold Acclimation Machinery Through Enhanced Carbohydrate and Amino Acid Metabolism in Wucai”, Plants 8(11):474 (2019)
- Eom S.H. et al., “Plant Response to Cold Stress: Cold Stress Changes Antioxidant Metabolism in Heading Type Kimchi Cabbage”, Antioxidants 11(4):700 (2022)
- Zhang J. et al., “Global Transcriptome and WGCNA of Cold Stress Responses in Chinese Cabbage”, Genes 16(7):845 (2025)
- 이명기 외, “절임 방법에 따른 배추 조직 및 염도 변화”,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40(8) (2011)
- Lee J. et al., “Unravelling the key factors for the dominance of Leuconostoc starters during kimchi fermentation”, npj Science of Food 9:61 (2025)
- “대관령” 기후 평년값(1991–2020, 대관령 기상관측소 해발 772.57m) — 위키백과
- “서울특별시” 기후 평년값(1991–2020, 서울기상관측소 해발 85.5m)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