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에 적힌 78 대 22
놋그릇 한 벌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붉은 기가 도는 황금빛 표면이 조명을 그대로 되비춘다. 그런데 방짜유기의 성분표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구리 78%, 주석 22%. 납을 넣지 않는 무연(無鉛) 이원계 청동이다. 2024년 보존과학회지 분석에서도 시중에 유통되는 현대 유기 16점 가운데 14점이 이 조성이었다. 전통 배합은 “구리 1근(斤)에 주석 4냥(兩) 5돈”으로 전하는데, 1근을 16냥으로 환산하면 78.05 대 21.95가 되어 오늘의 수치와 그대로 겹친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같은 배합을 ‘구리 1근에 주석 4냥’으로 적어 80 대 20이 되니, 기록은 출처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진 solanee · CC0 · Wikimedia Commons
진짜 문제는 22라는 숫자다. 현대 공학은 실제로 쓰는 청동 용기의 주석 함량을 10% 이내로 권한다. 주석이 많아질수록 깨지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방짜는 그 두 배가 넘는 양을 넣고, 그 덩어리를 벌겋게 달궈 망치로 두들겨 그릇을 만든다. 상식대로라면 첫 망치질에 산산조각이 나야 한다.
담금질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것도 강철이다. 달군 쇠를 물에 담그면 단단해지지만 그만큼 취약해져서, 대장장이는 뜨임(tempering)으로 굳기를 도로 풀어 준다. 방짜유기는 정반대다. 천천히 식히면 깨지고, 물에 급히 담가야 멀쩡하다. 여기에 오해가 하나 끼어 있다. 방짜를 두드릴 수 있는 것은 담금질 덕분이 아니다. 두드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고온에서만 나타나는 조직이고, 담금질은 형태를 다 잡은 뒤 식는 동안 벌어질 사고를 막는 마지막 조치다.
두드릴 수 있는 창은 798도에서 586도 사이
구리와 주석을 섞은 합금은 온도에 따라 원자가 줄 서는 방식이 달라진다. 같은 인원이 모인 방이라도 의자 배치에 따라 움직이기 편한 방이 있고 꽉 막힌 방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배치를 상(相)이라 하고, 어느 조성과 온도에서 어떤 상이 나타나는지 그린 지도가 상태도다.
구리-주석 상태도에서 β(베타)상은 약 798℃에서 586℃ 사이에 안정하다(2024년 논문은 799~586℃로 적는다). 이 구간의 β상은 소성이 좋아 망치질을 받아 준다. 열간 단조가 가능한 ‘창’이 이 온도대에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β상의 평형 조성이 주석 약 22.9wt%다. 방짜의 22%는 그 조성에 거의 그대로 얹혀 있다.

도해 · glu.kr 자체 제작 (개념도)
그러니 22%는 무리해서 우겨 넣은 양이 아니다. 오히려 저주석 청동은 고온에서의 가공성이 제한적이라고 야금학자 샤라다 스리니바산(Sharada Srinivasan)은 적는다. 주석을 잔뜩 넣은 것은 사고가 아니라 두드릴 창을 열기 위해 계산된 선택에 가깝다. 물론 대가가 있다. 주석 15wt%를 넘는 이원계 청동은 주조한 상태 그대로는 δ(델타)상 때문에 취약해져, 고대에도 드물게만 쓰였다.
식는 길이 갈린다 — δ상이라는 함정
δ상은 구리-주석계에서 손꼽히게 단단하고 취약한 금속간화합물로, 주석 약 32~33wt%에 해당한다. 단단하다는 말이 좋게 들리지만 그릇에는 재앙이다. 이 딱딱한 상이 조직 곳곳에 퍼져 있으면 망치를 맞는 순간 그 자리에서 금이 간다.
중요한 것은 δ상이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식는 도중에 생긴다는 점이다. 고온의 β상 덩어리를 천천히 식히면 두 번의 갈림길을 지난다. 586℃에서 β가 α(알파)와 γ(감마)로 갈라지고, 이어 약 520℃에서 γ가 다시 α와 δ로 갈라진다. 상온에 닿았을 때 남는 것은 α상과 그 사이를 메운 α+δ 조직이다. 그릇을 깨뜨릴 함정이 식는 동안 조용히 완성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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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랭은 이 갈림길을 지날 시간 자체를 빼앗는다. 담금질의 역할은 냉각 도중 취성의 원인이 되는 δ상의 출현을 억제하는 데 있다. 그 결과 바늘처럼 뾰족한 침상(針狀) 마르텐사이트 β상이 남거나 γ상이 잔류하고, 기계적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강철에서는 담금질이 취성을 불러오지만, 고주석 청동에서는 담금질이 취성상의 생성 자체를 막는다. 담금질 온도는 600℃ 이상의 β상 영역이 표준이지만 실제 유물과 제품은 급랭 시점이 제각각이어서, 586~520℃의 γ상 구간에서 물에 들어간 것도 관찰된다. β 영역이든 γ 영역이든 δ상이 생기는 공석 분해만 건너뛰면 목적은 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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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금질은 맨 마지막에 온다
공정 순서를 보면 이야기가 더 분명해진다. 그릇(반상기) 기준으로 방짜유기는 용해 → 네핌질 → 우김질 → 냄질 → 닥침질 → 제질 및 담금질 → 벼름질 → 가질을 거친다. 용해는 1200℃를 넘는 온도에서 하고, 녹인 쇳물을 물판에 부어 만든 둥근 덩어리를 ‘바둑’ 또는 ‘바데기’라 부른다. 네핌질은 보통 열한 명이 한 조가 되어 소나무 숯불에 바둑을 달구고 망치로 쳐 얇게 늘리는 작업이라고 전한다.
공정 이름은 만드는 물건마다 다르다. 숟가락은 10단계로 나뉘어, 주조에 해당하는 ‘무질가락 만들기’에서 시작해 손잡이 만들기·초바닥 만들기·뽀갬질·우금질을 거쳐 담금질을 하고 ‘광내기’로 끝난다. 눈여겨볼 것은 위치다. 담금질은 10단계 가운데 7~9단계, 가열과 두드림이 모두 끝난 뒤에 온다. “담금질 덕분에 두드릴 수 있다”는 설명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가 공정표에 이미 적혀 있다.
간수(소금물)를 쓰는 대목은 오래 구전으로만 전해지다 실험으로 확인됐다. 순서부터 흔히 오해된다. 염수처리, 곧 간수에 담그는 일은 담금질과 같은 동작이 아니라 그 앞에 오는 별도의 공정이다 — 두드려 형태를 다 잡을 무렵 상온의 간수에 잠깐 담갔다 꺼내고, 그다음에 다시 달궈 찬물에 넣는 담금질이 이어진다. 2012년 보존과학회지 연구는 유기공방 재현과 실험실 조건 실험으로 간수의 역할이 굳기가 아니라 고온에서 표면에 생긴 검은 산화막을 벗겨 내는 것임을 밝혔다. 일을 하는 성분은 소금물 속 염소(Cl)이고 나트륨(Na)은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으며, 주석 22% 조성에서는 두드림 여부와 상관없이 염수 농도가 0.5% 이상이면 산화막이 제거됐다. 장인들은 간수가 ‘재질을 무르게 해 잘 깎이게 한다’고도 말해 왔는데, 연구진은 표면의 때가 벗겨지는 효과는 눈으로 확인됐지만 재질에 관한 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어 일그러진 형태를 다시 잡는 것이 벼름질, 산화막과 흠을 깎아 놋쇠 색을 내는 마지막 작업이 가질이다.

도해 · glu.kr 자체 제작 (개념도)
2018년 재현실험은 이 손놀림을 현미경 아래로 옮겨 놓았다. 주석 22%의 구리 합금을 700℃에서 약 10분 달군 뒤 꺼내어 약 20회씩 두드리는 열간 단조를 3차까지 반복하자, 1차에는 쌍정(雙晶)이 없다가 2차부터 인접한 α상이 서로 합쳐지며 쌍정이 나타났고 3차에서는 주조 당시의 조직이 대부분 사라졌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의 2회 단조가 유기공방 1회 단조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유물이 남긴 지문, 악기가 이어받은 기술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청동숟가락을 분석했더니 구리 77.96wt%, 주석 22.04wt%였고 납은 검출되지 않았다. 미세조직은 침상 마르텐사이트 바탕에 α상과 쌍정이 흩어진 모습이었다 — 조선의 숟가락에도 급랭 처리가 실제로 가해졌다는 직접 증거다. 고려시대 사뇌사의 절터(思惱寺址)에서 나온 청동 그릇들도 같은 계통이다. 생활 용기로 쓰인 단조품은 구리 80 대 주석 20의 무연 합금으로, 알파상과 담금질 조직이 관찰돼 열처리를 거친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자리에서 나온 의례용 주조품은 납이 20%가량 섞인 전혀 다른 합금이었다. 연구자들은 주석 22%에 두드림과 담금질을 더하는 이 기술의 등장을 이르게는 삼국시대까지 올려보기도 하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에 이르도록 청동기 제작에 변함없이 쓰였다고 본다.
더 인상적인 것은 메자국, 곧 망치 자국이다. 전통 공방의 숟가락과 유적 출토 청동숟가락 양쪽에서 같은 메자국과 손잡이 뒷면의 가로 접힘선이 관찰된다. 기록에 남지 않은 기술 체계가 손에서 손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 접힘선은 α상과 불순물이 몰린 취약한 자리여서, 고대 방짜숟가락에서는 바로 그 지점이 균열 부위로 발견된다. 완벽한 기술은 아니었다는 정직한 흔적이다.
방짜는 그릇만의 기술도 아니다. 징·꽹과리·좌종이 같은 조성과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꽹과리는 놋쇠를 원반 모양으로 주조한 뒤 두드려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고, 악기에서는 벼름질이 형태 교정이 아니라 소리를 잡는 ‘재울음’ 과정이 된다. 다만 급랭 조직이 소리에 유리한지는 문헌이 엇갈려 단정할 수 없다. 같은 청동이라도 성덕대왕신종은 두드려 만든 것이 아니라 통째로 부어 만든 범종이라 공정이 전혀 다르다.

사진 Sguastev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국가무형유산 ‘유기장(鍮器匠)’은 1983년 6월 1일 지정됐고(옛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두드리는 방짜유기와 붓는 주물유기를 함께 포괄한다. 평안북도 정주의 납청(納淸)이 방짜, 경기도 안성이 주물유기의 대표 산지다 — 흔히 헷갈리지만 ‘안성맞춤’의 안성은 주조 쪽이다. 방짜 부문 보유자 이봉주(1926년 평북 정주군 출생)는 1948년 월남해 납청 출신 장인들의 공장에서 기술을 익혔고, 1983년 보유자로 인정된 뒤 2013년 명예보유자가 됐다. 그가 평생 만들고 모은 작품이 기증되어 2007년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케랄라의 그릇, 아란물라의 거울
이 기술을 한국만의 것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남인도 케랄라에서는 주석 23%의 고주석 ‘베타 청동’ 그릇을 두드려 만든 뒤 담금질하는 전통이 20세기 말까지도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스리니바산이 1991년 팔가트(Palghat) 지역 파얀가디(Payangadi)에서 이를 처음 야금학적으로 기록했는데, 그 그릇에서도 담금질로 생긴 마르텐사이트 β상이 확인된다. 방짜와 사실상 같은 조직이다.
뿌리도 얕지 않다. 타밀나두 아디차날루르와 닐기리 구릉의 기원전 1천년기 무덤에서 나온 두께 0.2~1.0mm의 얇은 그릇, 10~12세기 촐라 왕조의 접시가 모두 주석 23~25%의 단조 후 급랭된 베타 청동으로 분석됐다. 인도 오디샤의 칸사리(Kansari) 장인들은 11세기부터 여러 명이 리듬을 맞춰 잉곳을 두드리고 반복해 달구며 그릇을 만들어 왔다. 네핌질과 구조가 거의 같다. 필리핀에서는 급랭된 고주석 청동 징이, 태국 반돈타펫에서는 선사시대 고주석 청동기가 보고됐다.

사진 Dhruba Jyoti Dek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국내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미얀마 바간 유적에서 나온 단조 고주석 청동기 13점에서 구리 76 대 주석 24 조성과 열간 단조 후 담금질 기법이 확인됐고, 급랭 온도대가 시료마다 달라 β 마르텐사이트·γ상·δ상이 제각각 나타났다. 방짜유기를 분석한 한국 연구자가 같은 기술을 미얀마에서 확인한 것이다. 기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바간 논문은 페르시아에서 시작해 인도를 거쳐 중국과 한반도로 전해졌다고 보고, 스리니바산은 인더스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남아시아 토착 전통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느 쪽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같은 케랄라 안에 정반대의 갈래도 있다. 아란물라(Aranmula) 금속 거울은 주석 32~33%의 델타 청동을 주조해 연마한 것으로, 두드리지 않는다. 방짜가 온 공정을 걸어 피하려 했던 δ상을 거울은 아예 재료로 삼는다. 단단하고 취약한 성질이 그릇에는 재앙이지만, 거울에는 경면 연마가 잘 되는 장점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Prasanth Prakash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오늘 하나 배운 것
방짜유기의 비밀은 무엇을 얼마나 넣느냐보다 어떻게 식히느냐에 있다. 위험해 보이는 22%의 주석은 두드릴 수 있는 온도의 창을 열기 위한 선택이었고, 마지막에 물에 담그는 동작은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식는 동안 그릇을 깨뜨릴 조직이 자라날 시간을 빼앗는 조치였다. 장인은 상태도를 그리지 않았지만 손과 눈으로 같은 결론에 이르렀고, 현미경은 수백 년 뒤 그 판단을 확인해 주었다. 오래된 기술을 신비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 잘 관찰하고 정확히 반복해 다듬은 설계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놀랍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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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per Tin Alloys: The Bronzes (구리–주석 상태도와 공석 반응, 델타상 특성) — Total Materia
- 신비한 청동기술이 녹아있는 방짜 (실용 용기의 주석 10% 이내 권장 기준) — KISTI 과학향기
- 국가무형유산 유기장(鍮器匠)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이야기: 유기장 이봉주 (그릇 기준 공정 순서와 납청 내력) — 국가유산진흥원
-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재현실 (이봉주 기증 작품과 1930년대 납청마을 유기공방 재현) — 대구방짜유기박물관
- 방짜 유기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성맞춤박물관 유기전시실 (안성 = 주물유기 제작과정 전시) — 안성시 문화관광
- 꽹과리 — 국악사전, 국립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