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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 8만 장이 어떻게 770년을 견뎠나 —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의 보존 설계

합천 해인사에는 나무판 8만여 장이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정확히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입니다. 이 경판들은 13세기 중엽에 새겨졌으니 어림 770여 년 세월을 견뎠습니다. 습기와 곰팡이, 좀벌레와 화재 앞에서 나무가 이만큼 버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입니다. 특별한 화학 처리도, 항온항습 기계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답은 하나가 아니라, 목판을 만든 방식과 그것을 모신 건물의 설계가 겹겹이 맞물린 데 있습니다.

판가에 빼곡히 꽂힌 팔만대장경 목판들
해인사 장경판전 판가에 빼곡히 꽂힌 팔만대장경 목판. 판과 판 사이가 떠 있어 공기가 통한다. 사진: Bernard Gagnon · CC0 · 출처 Wikimedia Commons

먼저 규모부터 — ‘팔만’은 과장이 아닙니다

경판 수는 흔히 81,258판으로 인용됩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이자 국가유산청이 널리 쓰는 수치입니다. 다만 매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국가유산청이 2000년 디지털 영상화와 2014년 종합보존관리계획 조사를 거쳐 집계한 값은 81,352판으로 전해집니다. 일제강점기에 새로 새긴 보각판을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81,137·81,258·81,352판으로 갈리며, 단일한 정본 수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팔만(八萬)’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경판 수에서 나왔습니다.

경판은 앞뒤 양면에 새겼습니다. 한 면에 세로 23행, 한 행에 14자로 한 면 약 322자, 양면을 합치면 약 644자입니다. 전체 글자 수는 어림 약 5,200만 자(널리 인용되는 정밀 수치는 52,330,152자)에 이르며, 1,514종 6,815권의 불교 경전을 담고 있습니다. 고종 23년(1236)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며 시작해, 남해의 분사대장도감과 함께 16년에 걸쳐 작업한 끝에 고종 38년(1251) 9월에 완성했습니다. 경판을 실제로 새긴 판각 작업은 대체로 1237~1248년으로 표기됩니다.

목판 자체의 비밀 ① — 나무 고르기

흔히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경북대 박상진 명예교수가 경판 시료 약 209점을 현미경으로 세포 형태까지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나무는 산벚나무로 약 64%였고 돌배나무가 약 14~15%로, 이 둘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습니다. 자작나무는 약 9%에 지나지 않았고, 그 밖에 거제수나무·층층나무 약 6%, 단풍나무(고로쇠 포함) 약 3%, 후박나무 등 10여 종이 섞여 있었습니다.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는 결이 곱고 단단해서 글자를 새기기에 알맞습니다. 나뭇결이 너무 무르면 획이 뭉개지고, 너무 억세면 칼이 나가지 않습니다. 새길 수 있으면서도 오래 버티는 균형점을 이 나무들이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목판 한 장의 크기는 길이(가로) 약 68cm 또는 78cm가 대부분이고, 폭(세로) 약 24cm, 두께 약 2.6~4cm, 무게는 약 3~4kg입니다.

한자가 새겨진 팔만대장경 경판 한 장과 마구리
경판 한 장. 한 면에 새긴 한자와 함께, 양 끝에 붙여 손잡이 겸 통풍 틈을 만드는 마구리가 보인다. 사진: Steve46814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바닷물에 담갔다는 이야기

‘판목을 바닷물에 여러 해 담갔다가 소금물에 삶아 진액을 빼고 그늘에서 말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합니다. 소금물에 삶고 찌면 나무 속 진액이 빠지고 건조가 안정되며 방충 효과가 있다는 개연성은 인정됩니다. 다만 ‘3년 침수·소금물 삶기’의 구체적 절차는 1차 사료로 확증된 사실이 아니라 ‘전해진다’는 형태로 서술되는 준전승에 가깝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무를 서서히 그늘에서 말려 뒤틀림과 균열을 줄이는 건조 관리가 목판의 수명에 핵심이었다는 점입니다.

목판 자체의 비밀 ② — 마구리와 옻칠

글자를 다 새긴 뒤에도 손이 한 번 더 갔습니다. 경판 양쪽 끝에 경판보다 두꺼운 각목, 이른바 ‘마구리’를 붙였습니다. 마구리는 손잡이 구실을 하는 동시에, 판을 서가에 꽂았을 때 경판의 새긴 면끼리 맞닿지 않고 사이가 벌어지게 해 공기가 통하도록 했습니다. 나아가 네 귀퉁이를 구리판으로 고정해 나무가 세월에 뒤틀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경판 표면에 옻칠을 했습니다. 옻칠은 벌레 먹음과 부식을 막는 마감으로, 인쇄용 목판에 옻칠까지 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것으로 소개됩니다. 통풍이 되도록 사이를 띄우고, 뒤틀림을 쇠붙이로 잡고, 표면을 옻으로 봉한 것 — 이 세 가지가 목판 한 장 한 장에 담긴 보존 설계입니다.

목판 제작 다섯 단계 흐름도
목판 제작 과정 개념 도해 — 나무 고르기, 그늘 건조, 글자 새김, 마구리·구리판, 옻칠의 다섯 단계. 도해 · glu.kr 자체 제작(개념도)

글씨의 정밀함 — ‘한 글자도 안 틀렸다’는 진짜일까

수만 장에 걸친 글씨체가 마치 한 사람이 새긴 듯 거의 같다는 점은 자주 언급됩니다. 글씨를 담당한 이들을 약 1년간 훈련해 서체를 통일했다고 전합니다. 다만 ‘단 한 글자의 오류도 없다’는 것은 대중적 오해입니다. 실제 조사에서는 탈자와 오류가 존재합니다. 약 5,200만 자 가운데 발견된 오탈자가 극소수 수준이라는 점에서 정밀성이 대단히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완벽무결’은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이 판본을 한문으로 쓰인 대장경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하며, 일본이 근대 다이쇼신수대장경(1922~1934)의 저본으로 이 판본을 택할 만큼 신뢰받았습니다.

그리고 건물 — 목판을 모신 장경판전

목판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그것을 보관하는 공간이 습하면 결국 썩습니다. 여기서 시대 층위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목판을 새긴 것은 고려 시대(1236~1251)지만, 지금 목판을 모신 장경판전 건물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유네스코 등재 설명에 따르면 목판은 1237~1248년에 새겨졌고, 이를 보관하는 장경판전은 15세기에 세워졌으니, 목판과 건물 사이에는 약 두 세기의 시차가 있습니다. 현재 건물의 창건 연대는 불확실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 크게 중창되었고, 성종 19년(1488) 승려 학조가 왕실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광해군 14년(1622) 수다라장을, 인조 2년(1624) 법보전을 수리했습니다.

완성된 경판은 강화도에서 보관되다가 조선 태조 7년(1398) 한강 수로를 통해 서울 용산 지천사를 거쳐 그해 가을 합천 해인사로 옮겨져 지금까지 이곳에 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건물 외관
목판을 모신 장경판전 건물 외관. 목판은 고려 시대에 새겼지만 이 건물은 조선 시대에 지어졌다. 사진: SpongeFan0304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입지 — 산속에서 가장 좋은 자리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해발 약 655m에 자리합니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습한 남동풍을 피하고, 북쪽 산봉우리가 찬 북풍을 막도록 서남향으로 앉혔다고 전합니다. 사계절 햇볕이 고루 들고 자연 통풍이 잘 되는 자리를 고른 것입니다. 건물을 짓기 전에 ‘어디에 지을 것인가’부터 이미 보존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 전경
가야산 자락에 안긴 해인사 전경. 장경판전은 절에서 가장 높은 해발 약 655m 자리에 앉혀 통풍과 일조를 살렸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공공누리 제1유형 · 출처 Wikimedia Commons

살창 — 위아래를 뒤집은 창

장경판전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설계가 벽면의 살창입니다. 남북으로 나란한 두 주 건물(남쪽 수다라장·북쪽 법보전)의 앞뒤 벽에는 크기가 다른 창을 아래위로 냈는데, 앞면과 뒷면에서 그 크기 관계가 서로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국가유산청 서술을 기준으로 하면, 앞면(남쪽)은 아래 창이 위 창보다 크고, 뒷면(북쪽)은 위 창이 아래 창보다 크게 되어 있어 위아래 관계가 뒤집혀 있습니다. 이렇게 아래위 창의 크기를 달리해 실내로 들어온 공기가 한쪽으로 흐르며 자연스럽게 순환하도록 유도했다고 봅니다. 유네스코 등재 설명도 ‘두 주 건물의 남·북면에 크기가 다른 창들이 유체역학 원리를 이용해 통풍에 쓰인다’고 서술합니다.

장경판전 벽면의 살창(격자창)
수다라장(修多羅藏) 현판이 걸린 장경판전 정면. 건물 벽에는 크기가 다른 살창(격자창)을 내어 공기가 통하게 했다. 사진: SpongeFan0304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장경판전 통풍 대류 원리 개념도
크기를 달리한 위아래 살창을 통한 공기 순환 개념 도해. 실제 세부 비율이 아니라 대류 원리를 나타낸다. 도해 · glu.kr 자체 제작(개념도)

바닥층 — 널리 전하는 이야기와 그 한계

장경판전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닥입니다. 흙바닥에 숯·소금·횟가루(석회)·모래·찰흙을 채워 넣었다고 전합니다. 유네스코 등재 설명 역시 흙바닥에 숯·산화칼슘(생석회)·소금·석회·모래를 채워, 비가 올 때 넘치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한 겨울에 이를 내보내 습도를 낮춘다고 서술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닥층이 습할 때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 내뿜어 습도를 스스로 조절한다’는 인과는 국가유산청·위키백과 등에서 일관되게 반복되는 통념이지만, 이 자동 습도 조절 효과를 대조군을 두고 정량적으로 실측 검증한 조사 보고서는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자동으로 습도를 조절한다’는 강한 표현은 널리 전하는 설명이되,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입증된 사실이라기보다 전통 지식에 대한 서술적 프레이밍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국가유산청이 장경판전을 ‘조선 대기과학 연구의 상징’으로 소개하는 것도 이런 기념적 서술의 성격을 띱니다.

정리하면, 장경판전의 보존력은 어느 한 장치의 마법이 아니라 높고 통풍 좋은 입지, 방향 잡기, 크기를 달리한 창을 통한 대류, 습기를 머금는 바닥이 함께 작동한 결과로 봅니다. 실제로 이 건물은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목판 보존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해 온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확히 무엇이 대단한가 — 과장을 걷어내고

여기서 흔한 오해 몇 가지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팔만대장경은 ‘세계 최초의 대장경’이 아닙니다. 목판 인쇄 대장경으로는 북송의 개보장(開寶藏, 971~983)이 먼저였고, 고려의 초조대장경(1011~1087)도 팔만대장경보다 앞섭니다. 초조대장경 경판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돼 있다가 몽골의 제2차 침입 때(고종 19년, 1232) 불타 없어졌고, 그 뒤 다시 새긴 것이 바로 재조대장경, 곧 팔만대장경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방어 가능한 위상일까요. 유네스코 등재신청서는 팔만대장경을 ‘아시아 대륙에 현존하는 유일하게 완전한 대장경’이자 ‘가장 오래된 완전한 불교 경전 정본’으로 서술합니다. 즉 ‘최초’가 아니라 ‘현존하는 가장 완전하고 오래된 한역(漢譯) 대장경 목판’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둘째, ‘한 장도 안 썩었다’는 것도 과장입니다. 유네스코 등재신청서는 ‘극소수의 마모된 판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 온전하다’고 명시하며, 산화된 나무 손잡이(마구리) 보수와 표면 세척 등 보존 처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정확한 방어선은 ‘약 770년간 대부분 온전히 보존되었고, 일부 마모·보수 사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유네스코의 두 등재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1995년에는 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인 ‘해인사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등재번호 737)으로, 2007년에는 경판 자체인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장경판전은 그에 앞서 1962년 국보(제52호)로도 지정되었습니다.

닫으며

팔만대장경이 770여 년을 견딘 것은 기적이라기보다 설계의 누적입니다. 결이 알맞은 나무를 골라 서서히 말리고, 마구리로 통풍 틈을 내고, 구리로 뒤틀림을 잡고, 옻으로 표면을 봉한 목판. 그리고 산속 가장 높고 마른 자리에, 방향을 가려 앉히고, 크기 다른 창으로 바람을 흐르게 하고, 습기를 머금는 바닥을 깐 건물. 어느 하나가 도맡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고안한 여러 겹의 대비가 함께 버텨 낸 결과입니다. 화려한 신기술이 아니라 재료와 자리와 바람의 성질을 읽어 낸 이 오래된 지혜가, 오늘날에도 나무판 8만 장을 조용히 지키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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