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을 만든 여성은 생의 마지막 몇 해를 그 기념일을 ‘없애려는’ 데 썼습니다. 미국의 애나 자비스(Anna Jarvis)는 1908년 첫 어머니날 행사를 조직해 오늘날의 어머니날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꽃집과 사탕 가게, 연하장 회사가 이 날을 ‘선물 사는 날’로 바꿔 놓았다며 불매와 소송, 항의로 맞섰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은 그 싸움에 대부분 들어갔고, 1948년 그는 거의 무일푼으로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뜻밖의 사실도 있습니다. 그가 1920~30년대 어머니날을 위협한다며 끝까지 막아선 것이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기리자는 ‘어버이날(Parents’ Day)’ 운동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뒤, 한국의 5월 8일은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꿉니다. 카네이션을 다는 한 장면 뒤에 숨은 두 나라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사진: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어머니의 기도에서 시작된 날
오늘날 여러 나라가 지키는 5월의 어머니날은 고대의 축제가 아니라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진 기념일입니다. 그 출발점에는 한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애나 자비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 앤 리브스 자비스(Ann Reeves Jarvis)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어머니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류에게 베푸는 비할 데 없는 봉사를 기리는 어머니의 날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날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스미스소니언)
앤 리브스 자비스는 그 자신이 지역 공동체를 돌본 활동가였습니다. 열세 자녀 가운데 넷만 어른이 될 만큼 전염병이 흔하던 애팔래치아 산골에서, 그는 1858년부터 ‘어머니날 봉사 모임(Mothers’ Day Work Clubs)’을 꾸려 가정에 약을 나누고 우유와 위생을 점검했습니다. 남북전쟁 때는 이 모임이 북군과 남군을 가리지 않고 아픈 병사를 돌보았고, 전쟁이 끝난 1868년에는 양쪽 가족이 다시 어울리도록 ‘어머니 우정의 날(Mothers’ Friendship Day)’을 열었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히스토리닷컴)

사진: Carol M. Highsmith · 퍼블릭 도메인(미국 의회도서관 하이스미스 아카이브) · Wikimedia Commons
앤 리브스 자비스는 1905년 5월 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애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이루겠다고 다짐했고, 2년 뒤부터 정치인과 기업인, 목회자와 언론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첫 공식 어머니날 행사는 1908년 5월 10일, 두 곳에서 동시에 열렸습니다. 한 곳은 어머니가 다니던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앤드루스 감리교회였고, 다른 한 곳은 애나가 살던 필라델피아의 워너메이커 백화점이었습니다. 애나 자신은 그래프턴 예배에 가지 않고 필라델피아 행사에서 연설했고, 그래프턴 교회에는 참석자들에게 나눠 줄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보냈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 Brian M. Powell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날짜와 상징에도 모두 어머니가 담겼습니다. 5월 둘째 일요일은 어머니의 기일에 맞춘 날이었고, 흰 카네이션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이었습니다. 애나는 이름의 철자에도 고집이 있었습니다. 복수형 ‘Mothers’ Day’가 아니라 단수 소유격 ‘Mother’s Day’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한꺼번에 기리는 날이 아니라, 아들과 딸이 저마다 자기 어머니 한 사람을 찾아가거나 편지를 쓰는 ‘개인의 날’이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브리태니커, 스미스소니언)

사진: Forest and Kim Starr · CC BY 3.0 US · Wikimedia Commons
국가 기념일이 되기까지
애나 자비스는 해마다 모든 주지사에게 편지를 썼고, 전직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작가 마크 트웨인처럼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1910년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처음으로 어머니날을 법으로 정했고 다른 주들이 뒤따랐습니다. (스미스소니언, 미국 의회도서관)
연방 차원의 인정은 1914년에 왔습니다. 미국 의회는 5월 8일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는’ 공동결의를 승인했고, 이튿날인 5월 9일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선포문 제1268호에 서명했습니다. 선포문의 실제 내용은 쉬는 날을 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무원에게는 모든 정부 건물에, 국민에게는 각 가정에 성조기를 내걸어 “우리나라 어머니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공적으로 표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윌슨은 어머니날을 ‘선포’한 사람일 뿐 ‘만든’ 사람은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 문서 프로젝트, 미국 의회도서관)

문서: 미국 국립기록원(NARA)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선물 사는 날’에 맞선 창시자
기념일은 너무 빨리, 너무 크게 성공했습니다. 애나가 정한 상징과 관습은 곧 광고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라는 권유는 연하장 산업을, 흰 카네이션은 꽃 산업을 키웠습니다. 애나는 이 날을 자신이 세운 운동의 소유물로 여겼습니다. 1912년 ‘어머니날 국제협회(Mother’s Day International Association)’를 법인으로 세웠고, 이름을 무단으로 쓰는 단체와 업자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냈습니다. (브리태니커, 스미스소니언, 히스토리닷컴)
1922년에는 해마다 5월이면 흰 카네이션 값을 올리는 꽃집에 대한 불매 운동을 지지했고, 이듬해에는 과자 소매상 대회장에 들어가 항의했습니다. 1925년에는 카네이션을 팔아 기금을 모으던 ‘미국 전쟁 어머니회(American War Mothers)’의 필라델피아 전국 대회장에 들어가 항의하다 치안 방해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낸 한 성명은 상업 세력을 두고 “사기꾼, 강도, 해적, 공갈배, 유괴범, 그리고 탐욕으로 가장 훌륭하고 고귀하며 진실한 운동과 기념을 갉아먹는 흰개미들”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스미스소니언, 히스토리닷컴,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1934년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밑그림을 그린 어머니날 기념우표가 나왔습니다. 화가 휘슬러가 자기 어머니를 그린 유명한 초상을 옮긴 우표였지만, 애나는 이 도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우표에 ‘Mother’s Day’라는 말을 넣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발행된 우표에는 그 말 대신 ‘미국의 어머니들을 추모하고 기리며’라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우표: 미국 우정청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그 싸움의 대가는 컸습니다. 소송비로 물려받은 재산 대부분을 썼고, 1943년에는 어머니날을 아예 없애 달라는 청원까지 준비했지만 그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자녀가 없던 그는 1948년 11월 24일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의 요양원에서 8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리태니커, 히스토리닷컴)
창시자가 막아선 또 하나의 기념일, ‘어버이날’
애나 자비스가 가장 위협적으로 여긴 적은 꽃집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기념일이었습니다. 1924년 뉴욕의 자선사업가 로버트 스페로(Robert Spero)는 5월 둘째 일요일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기리는 ‘어버이날(Parents’ Day)’ 행사를 열었습니다. 아버지도 가정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자는 취지였고, 1926년 브롱크스 집회에는 4,000명이 모였습니다. 1930년에는 뉴욕주 의원 줄리어스 버그(Julius Berg)가 주 기념일에서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꾸는 법안까지 냈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애나는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이 법안을 “어머니를 반대하는 아들들의 작은 패거리”가 낸 “어머니에 대한 반대 법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모든 세월 가운데 하루, 한 해 가운데 하루 ‘어머니’라는 이름을 지니는 것이 어머니에게 결코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버그의 법안은 거듭 부결되었고, 어버이날 운동은 1940년대에 사그라들었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를 따로 기리는 아버지날이 자리를 잡아 갔습니다. 미국에서는 결국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각각 남았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어머니날 이전의 ‘어머니날들’
애나 자비스의 어머니날보다 앞선 시도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공화국 전투 찬가」를 쓴 시인이자 사회운동가 줄리아 워드 하우(Julia Ward Howe)입니다. 그는 남북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참상을 보고 1870년 ‘어머니날 선언(Mother’s Day Proclamation)’을 발표했습니다. 국적을 넘어 여성들이 모여 전쟁을 막고 평화를 논의하자는 호소였습니다. 1872년부터는 매년 6월 2일을 ‘어머니 평화의 날’로 지키자고 했고, 보스턴·뉴욕·필라델피아·시카고 같은 도시에서 1913년 무렵까지 이 날의 모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은 점차 사라졌고, 세계가 제1차 세계대전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들의 평화 호소도 잦아들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히스토리닷컴)

사진: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두 흐름은 서로 닿아 있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앤 리브스 자비스가 하우의 모임에 참석했다고 전합니다. 다만 성격은 달랐습니다. 하우와 앤 리브스 자비스의 날이 어머니들이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는’ 날이었다면, 딸 애나의 날은 자녀가 자기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개인적인 날이었습니다. 역사학자 캐서린 안톨리니(Katharine Antolini)는 결국 살아남은 것이 애나의 감상적이고 사적인 어머니날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히스토리닷컴)
나라마다 다른 날, 다른 뿌리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은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날짜와 유래는 나라마다 제각각이지만, 자신에게 생명을 준 이를 공경하려는 마음이 문화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 사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오랜 가르침처럼 이 마음이 사람 안에 본래 심겨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영국의 ‘마더링 선데이(Mothering Sunday)’는 미국식 어머니날과 뿌리가 다릅니다. 중세에는 사순절 넷째 주일(라이타레 주일)에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던 교구 교회와 어머니를 찾아가는 관습이 생겼고, 이것이 영국의 마더링 선데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날짜가 해마다 3~4월 사이를 옮겨 다닙니다. 이 전통이 희미해지자 1913년 영국 노팅엄셔의 목사 딸 콘스턴스 스미스(Constance Smith)는 미국에서 건너올 세속적인 어머니날이 교회 달력에 뿌리를 둔 옛 전통을 밀어낼까 걱정해, 마더링 선데이를 되살리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브리태니커, 크리스천투데이)
날짜의 다양성도 흥미롭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5월 둘째 일요일을 지키지만, 시리아·아랍에미리트·예멘 등 여러 아랍 나라는 3월 21일, 태국은 8월 12일, 아르헨티나는 10월 셋째 일요일, 러시아는 11월 마지막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삼습니다. 러시아의 어머니날은 1998년 대통령령으로 정해졌는데, 그 전까지 옛 소련에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어머니를 기리는 날의 구실까지 함께 맡았습니다. (브리태니커, 이즈베스티야)
한국의 5월 8일 —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한국의 5월 8일도 처음부터 ‘어버이’의 날은 아니었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55년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고, 이듬해인 1956년 5월 8일 첫 어머니날을 기념했습니다. 그 전에도 몇몇 단체가 어머니날 행사를 열고 있었는데, 국무회의 결정으로 국가 차원의 기념일이 된 것입니다. 정부가 밝힌 제정 이유는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모든 욕망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며 “특히 한국 어머니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희생적 정신은 세계만방에 자랑할 만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
전쟁이 끝난 지 몇 해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1950년대 어머니날에는 기념식과 함께 모범 어머니를 표창했는데, 상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도 시부모를 봉양하며 자녀를 키운 어머니, 세 명 이상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 열 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어머니 등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어머니날은 전쟁을 견딘 어머니들에게 나라가 건네는 위로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국가기록원)
‘어버이날’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73년입니다. 그해 3월 30일 대통령령 제6615호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어머니날은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이 전하는 개칭 이유는 “어머니날의 취지를 살리는 한편 조상과 어버이 전체에게 감사하는 날로 승화시켜” 조상과 부모, 웃어른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날로 삼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날을 지켜 오는 동안 ‘아버지의 날’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도 배경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이 변화가 1970년대 ‘충효 교육’ 강조와 맞닿아 있었고, 어머니의 책임보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가 강조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국가기록원, 국가법령정보센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구독). 본문의 연도와 사건을 한눈에 보도록 만든 연표입니다.
오늘날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은 어버이날을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며 “조상과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 보호와 관련된 행사”를 하는 날로 정해 두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날 각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기념식에서는 효행자를 표창한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의 한 딸이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으로 고른 카네이션이,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부모와 조부모의 가슴에 달리는 꽃이 된 것입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미국에서 애나 자비스가 끝까지 막아선 ‘어버이날’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한국에서 5월 8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나라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각각 따로 기리는 길을 택했고, 한국은 효와 경로의 전통 안에서 부모와 웃어른을 함께 기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다만 애나 자비스가 끝내 지키려 한 것은 이름보다 그 날에 담긴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바란 어머니날은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자녀가 직접 쓴 편지 한 장, 직접 찾아가는 발걸음으로 기억되는 날이었습니다. 기념일의 기원을 아는 일은, 그 마음이 있던 본래 자리를 되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
- Proclamation 1268—Mother’s Day, 1914 — 미국 대통령 문서 프로젝트(UCSB)
- Anna Maria Jarvis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 Mother’s Day: Topics in Chronicling America — 미국 의회도서관
- Mother’s Day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Anna Jarvis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The Tenacious Woman Who Helped Keep Mother’s Day Alive — 스미스소니언 매거진
- How Mother’s Day became its founder’s worst nightmare — 내셔널지오그래픽
- Why the Founder of Mother’s Day Turned Against It — 히스토리닷컴
- Mother’s Day Began as a Peace Movement — 히스토리닷컴
- The little-known story of the woman who rescued Mothering Sunday — 크리스천투데이
- The true story of Mother’s Day: how the holiday appeared in Russia — 이즈베스티야
- 이달의 기록: 5월 8일 ‘어버이날’ 제정 — 국가기록원
-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 국가법령정보센터
- 어버이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